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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Jan 15. 2023

내가 있어야 할 곳

퇴사일기

핸드폰 시계를 보고 일어난 시간은 8시 45분이다. 아마 침대에서 꿈틀거리는 동안 5분이 흘렀을 테니 정신이 깨어난 건 8시 40분쯤일 거다. 그런데 갑자기 40'분', 45'분' 이런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다.


어제는 차 한잔 사과 반 개 밥 한 끼를 먹고 물과 보리차만 삼켰다. 오늘은 두 번째 코로나로 격리를 시작한 지 4일째 아침이다. 첫날과 둘째 날 이비인후과에서 지어 준 약을 꼬박꼬박 먹었다. 약은 소염제, 스테로이드 제제, 진통제 등 아침과 저녁은 총 5알, 점심은 4알이 들어 있었다.

이틀 째인 금요일에는 병가를 내고 집안에서 세끼를 꼬박 먹고 약도 총 14알을 먹고 추가로 내가 먹는 칼슘 비타민제와 프로작 1 캡슐을 추가해 총 16알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부터 뱃속이 신호를 보내왔다. 불편하다고 그만 먹으라는 신호였다. 생각해 보니 위에게 미안하다 갑자기 그렇게 많은 약을 털어 넣으면 위는 쉴 수가 없다. 다른 곳(육체)은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없이 쉬게 해 주면서 위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사실 처음 걸렸을 때보다 증상이 덜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약을 먹으면 더 아파지는 일은 없겠지 와 혹시 모를 불안함에 그 많은 약들을 삼켰다.

이비인후과 선생님별로 처방이 확연히 다른 것이 집 근처 동네에서 같은 날 확진을 받은 가족들은 아침과 저녁약이 3알이고 추가로 타이레놀도 넣어주었다고 한다. 나는 타이레놀 성분의 약을 약국에서 추가로 구매했다.


오늘은 속이 그래도 비어 있어서 편한데 살짝 위속을 누가 자극 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빈속에 알마겔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늘 마시던 도라지 모과차를 한잔 타서 방에 들어왔다. 알마겔은 아직 내 책상 위에 있다.


어젯밤에는 네이버알고리즘으로 록 밴드 보컬이자 비건에 대한 글을 쓰는 한 사람이자 운동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학벌과는 상반되게 그는 현재 먹고사는 일에 진심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세바시라는 강연 프로그램에서 15분 정도 비건으로 살게 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잠이 들어서인가 아침에 일어나 잠깐 요가 매트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을 하는(혹자는 이것을 명상이라고 한다)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어디에 있을까

-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 지금은 모든 게 too much다.

-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은 여기가 아니다.

- 적에게 쫓기는 피난민 처럼 그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가고 있다.

- 내 몸이 말해 준다


불과 1년 새 코로나에 2번 걸렸고 척추 측만증과 우울증이 있으며 몇 개월 전부터 급체를 하면 심한 두통이 나타난다. 토를 해야만 증상은 완화되고 1달 새에 나는 2번 이나 먹은 저녁을 게워냈다. 그리고 작년에는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몇 번 갔었고 생리주기마다 피부에 찾아오는 단단한 염증으로 피부과에 가서 염증 주사를 맞는다. 최근에는 목뒤가 뜨끔 뜨끔 하거나 날개뼈와 골반 통도 있어서 도수 치료도 몇 차례 받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PT를 30회 끊어서 다니고 있으며 냉동실에는 닭가슴살이 10팩 이상 잠들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소화에 좋다는 소화효소를 샀고 약국에서 소화제를 구비해 두었다. 또 남편이 산 일본 제약회사의 소화제도 우리의 식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써놓고 보니 이게 다 무슨 짓거리인가 싶다

회사건 외근을 나가서 건 집으로 잔뜩 스트레스를 품고 들어와 이것저것 먹고 속이 안 좋아 잠을 설치고 속이 불편해 토를 하고 소화가 안 돼 약을 먹고 낮에 먹은 커피로 요란한 꿈을 꾼다.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와 씨름하며 얻은 어깨와 목을 위해 병원에 다니고 근육량을 늘려보겠다고 닭가슴살을 사 놓고 일주일에 2번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하고 다음 날 쑤신 몸을 이끌고 어그적 어그적 걸어다니며 일을 한다.

면역력은 올라갈 기미를 안 보이고 이 틈을 타 코로나 바이러스가 2번이나 내게 침투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잘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닭고기나 양고기가 먹고 나서는 더 깔끔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비건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그럴 결심도 결단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일이 너무 이상한 것은 인지했다. 작년 내 시간의 상당 부분이 먹으면서 즐거웠고 먹고 나서 힘들었다. 그리고 이따금 반나절 금식을 하면 다시 편해졌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보 같달까.


원래는 이런 내용을 쓰려던 건 아니었다. 아침에 9시 전에 눈이 떠져서 뿌듯했고 그 바람에 자세를 잡고 명상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지금 여기가 아닌 거 같다. 미래의 나는 작가였고 내 진짜 직업은 작가인 거 같다. '작가'란 내게 있어서 그저 멋있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읽고 자란 책들 속에서 작가들은 어떨 때는 나를 응원해 주었고 밑도 끝도 없이 나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또 내 슬픔을 대신 써 주었고 내 불행을 작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 그들은 너무나 또렷하게 머리를 쿵하고 흔들어 주기도 하였고 나는 그런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아직도 문장들에 연필로 줄을 친다. 때로는 뼈를 때리는 말을 해주기도 하고 정말 지혜를 축약해 놓은 말을 해주기도 한다. 마음에 새겨보려고 연필로 줄을 긋는 거 같다.


어릴 때부터 읽었던 책을 나열하면 어느 정도 될까 갑자기 그런 생각도 명상을 하면서 떠올랐는데 언젠가 시간이 있으면 그 목록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이유와 목적은 그저 내가 확인하고 잠깐 뿌듯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먼 훗날 문장 속일 것이다.

어느 문장에서 나는 격렬하게 누군가를 안아주고 다른 문장에서는 슬프게 화를 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하는 일을 그냥저냥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일'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애정이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시간을 괜찮게 보내고 싶다.

행복도 멀지만 불행도 멀게

그렇게 당분간은 아니 몇 년은 그렇게 지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기 위해 조금씩 쓸 것이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 날 내가 책 속에 있었으면 한다.


다 쓰고 읽어보니 이런 미친 생각의 흐름이 또 없다. 제목을 바꿀까 하다 그냥 둔다. 음 가끔은 그래 이런 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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