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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Jul 06. 2023

여행의 목적

퇴사일기

영화, 헤어질 결심이 끝날 무렵 흘러나오는 "안개"라는 노래가 묘하게 좋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내내 노래가 계속되었다.

결국 노래도 끝이 났다.

어차피 할 게 없는 비행기 안에서 조금 더 영화의 감상에 둘러싸여 있기로 했다. 약간의 섬세함이 필요했다. 최대한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영화를 막 보고 난 느낌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기도 했고, ost를 듣고 있는 동안은 계속되는 느낌이었으므로 나는 몇 번이고 비행기 의자에 붙어있는 화면을 누르고 눌렀다.

이상한 노래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졌다.


며칠 전부터 짐을 쌌지만 여행 전날이 되어서야 모든 물건들이 캐리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기내용 가방으로 가져갈 크로스 백안에 손톱깎기를 넣고 에코백에는 스케줄러 겸 다이어리와 펜 한 자루를 챙겼다.


비행기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비행하게 되면  잠자기 좋은  때가 온다. 모든 좌석에 수면등과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조명될 때 나는 다이어리를 꺼낸다. 뭔가를 끄적이기 꽤 좋은 시간이다. 다이어리가 없으면 핸드폰 메모장에라도 끄적여 놓는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볼만한 영화도 없고 책도 읽기 싫고 잠도 더 오지 않을 때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끄적이는 것만큼 시간이 잘 가는 것이 없다.


2022년 4월 11월, 퇴사 17일 전 가는 괌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이런 글을 끄적였더랬다.


-나는 손톱깎기를 작은 크로스백에 넣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발톱을 깎을 시간이 없었다. 그랬다. 발톱은 저절로 자라난다. 몹쓸 생각들이 차오르는 동안 발톱도 자라고 있었다.

한가로이 발톱이 깎을 생각이었다.

바다를 보면서 깎는 거다. 다른 것들은 안중에도 없이 곧 쓸모없어질 끝내 깎여나갈 발톱 깎는다 라는 상태에 집중하고 싶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다 보면 의미 없는 일이 몹시 하고 싶어질 때가 있나 보다.

모든 게 의미 있다고 주절 인다. 

가 하는 일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이라고

모두가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저 의미를 찾겠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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