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퇴사일에 2022년의 나는
퇴사 1년 후
"1년 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1년 전 2021년 11월 18일은 가장 오래 다녔던 직장을 나온 날이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마지막 야근을 하고 어두운 곳에서 번쩍이는 빌딩 사진을 찍고 나온 나이다.
며칠 전 11월 18일, 나는 수하동의 한 횡단보도를 건너며 현 직장 동료들과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오늘 11월 18일이네, 작년에 퇴사한 날이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새 직장생활을 올해 1월부터 시작했다. 지금 회사 건물에서 이전 회사 빌딩이 보일 만큼 가깝다.
가끔 원래 회사 근처에서 다녔던 밥집도 걸어간다.
물리적인 위치는 별 차이 없으나, 그동안 많은 것이 . 꽤나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
이래서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나보다
이전 회사에서는 글로벌 제약회사의 과제도 받기 힘들었다. 혹 그런 과제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능력자로 여겨졌다. 과제 배정 자체가 차별을 유발했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경력자로서의 대우도 절하되었다.
급여의 차이는 있었으나 1년도 안된 주니어들과 한 직급으로 묶여 CRA라는 단어 속에서 움직였다. 그들과 같이 일하면 정작 어려운 기관을 담당하면서 배려는 없었다. 년차가 있으니 당연한거 라고 여겨졌다.
작년 이직 준비 시 온라인 면접을 3차까지 보고 떨어진 P 모 기업은 이제는 가고 싶지 않다. 면접관들은 나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끝내 바꾸지 못했다.
이후 멘탈이 털려 있는데 헤드헌터의 부추김으로 비슷한 레벨의 회사 (나름 워라벨이 있다고 들음)2곳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받고 조금 더 끌리는 곳으로 이직을 확정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했었다.
집에서는 1시간 남짓 거리의 회사였는데 출근 첫날 많은 정보를 듣고 노트북을 갖고 퇴근했다. 불과 퇴사 후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고 전 회사에서의 업무와 사람들에 치여 치유되지 못한 멘탈과 마음을 이끌고 다음날 재택을 하고 있는 나에게 에 현 회사에서 온 합격메일이 마치 나를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하루 만에 장문의 메일과 함께 노트북을 퀵으로 보냈다.
그리고 2달 남짓 쉬는시간을 갖고 지금 회사에 출근하여 10개월째 다니고 있다.
정말 어이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면접날 부터 난 이 회사의 건물이 좋았다.
조금 다니다 보니 역에서 회사 지하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고 그 역시 좋았다.
CRA로서 내가 받은 가장 높은 급여를 받고 다니고 있다. 물론 내 년차에 몇천 더 받는 사람들도 많을것 이다.
첫 달에 2년짜리 노예계약을 위한 사인온 보너스도 받았다.
1년 다니고 그만두면 다시 뱉어내야 하는 이상한 돈이긴 하지만 받을 때는 좋았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관리자가 적다. 그 점도 좋다.
면접 날도 유령회사로 착각할 만큼 조용한 분위기도 좋다.
1년 사이에 나는 글로벌 과제만 하는 CRA가 되었다.
팀즈(Teams)로 다른 나라의 CTM들과 회의도 하고 스터디 팀과의 메일은 거의 영어로 쓴다. 종양내과 과제를 처음 맡게 되었고 주사제제 IP도 처음 다루고 있는 중이다.
이전 회사를 나오기 위한 몸부림은 몇 번 있었다.
거지 같다고 욕하면서 실제로 거지같이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거지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큰 회사들로 높은 급여를 받고 나가는 동기들과 후배들을 보내주면서 한없이 부러웠지만 아닌 척 했다.
속으로는 스스로를 굉장히 모자란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다.
어느 회사로 가야할 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퇴사 결정 전까지 밤마다 전 회사와 이직 사이의 장단점을 저울질했다.
그렇게 나가고 싶었으면서 막상 나가려니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유투버가 말했다 지금 손에 쥔 그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고....
전 회사에서 나에게 기초적인 양분과 기본기를 잡아주었고 구분 없는 업무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해준건 맞다. 몇몇 좋은 사람들과 멋있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런데 나는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했다고,아이가 있다고, 나이가 삼십대 중반을 넘어간다고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몇가지 좋은 기질 중 하나인 청개구리 기질이 나를 자꾸만 도발했다.
나도 저 정도는 그들처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유리병에 잡혀온 실험실 벼룩처럼 뚜껑에 수도 없이 머리를 부딪히며 나나가려고 노력했다.
보기 좋게 떨어진 P사, 잘 떨어진 C사,
면접일이 안 맞아 못 갔으나 나중에 안 좋은 내용으로 뉴스에 나온 A사 ,
전화와 CV만으로 떨어졌던 몇 개의 회사.
5년간 수차례 머리를 박고 떨어졌지만 나는 다시 점프를 했다.
모두가 이제 더 이상 뛰지 않겠지 하고 안심했을 때,
보기좋게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는 드디어 유리병을 나올 수 있었다
유리병을 나온 지 1년, 나는 잘 살아있고 잘 살려고 노력 중이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고 새로운 뚜껑과 한바탕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