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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Nov 25. 2021

의미를 찾아서

INFP라서

첫 번째 직장인 모 대학병원을 3년 9개월 만에 그만두고 한 달 동안 나와의 시간을 갖었다. 어디서 읽어서도 누가 좋다더라 여서도 아니었다. 살려고 그저 살아보려고 혼자 애를 썼다. 2013년 초여름이었고 백수가 된 나는 아침마다 토익 스피킹 학원에 앉아있었다. 영어 공부를 해보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3교대 근무도 그만두었겠다 나는 정말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아니 규칙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거기에서는 모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 각자의 이유로 학원에 앉아있었고 나는 그 틈에서 이상한 곳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얼굴은 숨기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영어 문장을 듣고 있었다. 몇 년 만에 편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었다. 어떤 비난도 감정도 없는 문장들이었다. 

퇴사 후 3개월이 지나자 슬슬 퇴직금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도 없이 퇴직금을 통장에 넣어놓고 그냥 필요한 것을 사고 학원을 다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던 거 같다. 가난이 닥쳐오기 전에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간호사들이 자주 찾는 취업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공고 중에 삼교대 근무와 대형병원은 걸러냈다. 걸러내고 남은 공고 중 대형 검진센터가 눈에 들어왔고 이력서를 보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아무래도 병원보다는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면접을 보았는데 크게 어려움 없이 채용이 되었고 다른 직장인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아침에 매일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무직이라면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는데 오전에 가서 두어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설문지 조사, 신체계측, 피검사, 엑스레이 검사, 시력 검사 등을 하고 공가를 쓸 수 있는 날이다. 검진센터에서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다면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검사를 받는 대신 매일 동일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안내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전 7시 반까지 서울 중심에 있는 검진센터로 출근을 했다. 검진센터에서 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날그날 맡은 구역에서 검진자들을 기다린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서서 시력 검사를 어느 날은 하루종일 손에 힘이 풀릴 정도로 혈압만 측정했다. 어느 날은 키와 몸무게를 하루 종일 체크하는 일을 하였다. 대형 검진센터라 매일 몇백 명의 사람들이 검사를 하러 왔다. 

그때까지 한 번도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던 터라 그렇게 많은 회사원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참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 검진을 하러 오는구나 생각했다. 지금처럼 AI스피커가 활성화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 우리 집 AI스피커처럼 맡은 구역에서 검사하는 항목에 따라 하루 종일 똑같은 말을 수백 번 말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OOO님, 혈압 측정하겠습니다. 팔을 올려주세요. 혈압 110/80으로 정상입니다. 다음 검사는 시력 측정입니다. 저쪽으로 가서 대기해 주세요" (X 200번) 

검진센터에도 팀장급이 있었는데 그분은 채혈하는 업무를 하고 일반 검진 외에 추가 검사가 누락되지 않도록 체크하는 역할을 하였다. 간호사 면허증으로 3년을 넘게 일을 하면서 매일 같이 하던 채혈도 검진센터에서는 더 이상 나의 Job이 아니었다. 한 주가 흘렀을까, 다시 나의 의미에 대한 열망이 슬금슬금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매일 오전 일찍 일을 시작해서 보통 6시 전에 일이 끝났고 집에 가서는 남아있던 조금의 에너지를 공고 게시판을 훑는 데 사용했다. 퇴사 전에 취득했던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눈에 들어왔다. C 모 병원에서 코디네이터를 채용한다는 공고였다. 고민할 새도 없이 갖고 있던 이력서를 수정하여 제출하였다. 며칠 뒤 면접 일정이 잡혔고 면접 예정일은 평일 오전 검진센터를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면접 일정을 확인한 다음 날, 내 기억이 맞다면 토요일이었다. 검진센터는 주 6일 근무로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시행하고 있었다. 병원이었다면 수선생님보다 위에 계신 간호 부장님 급의 검진센터 장에게 나는 대책 없이 내일 근무를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친절하게 이유도 말씀드렸다. 진실을 이야기한 대가로 그날부로 나는 다시 백수와 동시에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그리고 퇴근시간에 며칠 안된 낯선 동료들의 서늘한 눈총을 받으며 입고 있던 유니폼을 락커에 고이 걸어두고 검진센터를 나왔다. 

합격할지 불합격할지도 모르는데, 출근한 지 한 달도 안되어서 다른 곳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당장 내일 출근을 못한다고 말한 무모한 사람치고는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으리라. 한번 그만두는 게 어렵지 두 번째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사실 3교대 병동 간호사 업무와 비교하자면 검진센터 직원의 일은 업무량과 난이도가 낮았고 밤을 새울 일도 이상한 일로 혼이 나는 일도 없었다. 문제는 내게 있었는데 나는 반복적이고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쉬운 업무, 내가 아닌 누구라도 가능한 일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유형이었다. 그걸 깨닫는데 2주가 걸렸고 최근 안 사실인데 MBTI에서 INFP유형은 소명감 따위가 있어서 그것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살면서 진작에 알았어야 하는 것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검진센터에서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행복한 나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만 하루에 잘 해내고 나면, 혼이 날 일도 없고 비슷한 또래의 동기들과 점심시간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하면서, 일찍 퇴근하여 시내에서 친구도 만날 수 있고,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주말에는 취미생활로 모임에도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주섬주섬 다시 그놈의 이유를 찾으러 갔다. C 모 병원의 코디네이터 채용 면접은 2차까지 이어졌고 최종 면접은 높은 분과의 1:1 면접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헤어스타일에서 흡사 스튜어디스의 이미지를 풍기는 한 명의 경쟁자와 병원 옆 사무실 건물로 올라가 대기하였다. 고급 주택 같기도 한 사무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여기가 강남 한복판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제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라고 알려주길 바랬다. 

면접이 끝나고 경쟁자와 어설픈 인사를 하고 정장구두 속 아픈 발을 끌고 집으로 가는데 코트로 들어오 바람이 유독 찼다. 간절히 붙길 바라면서 긍정적 시나리오와 부정적 시나리오 속을 오가며 집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나는 그곳에서 의미를 찾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정말 찾고 싶었는데 말이다. 몇 년 뒤 뉴스에 나온 그곳의 소식은 내가 그때 간절히 원하던 것이 반드시 좋은 길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게 나를 탈락시켜 준 그곳에 감사하며, 때로는 의미를 찾던 길에서 한 발짝 나와 세상을 보아야 할 때도 있다고 그 경험이 내게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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