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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Sep 09. 2021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운동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갈림길에 들어선다.

취미로서 즐기는 수준으로 만족할 것 인가 vs 선수로서 인생을 걸어볼까

바로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생활체육으로 꾸준히  일주일에 두세 번 링크장에 가 정규(단체)나 소그룹 강습을 받고 훈련하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기간이 생긴다. 처음엔 적은 포인트 레슨과 훈련시간에도 쑥쑥 늘던 실력이 가끔 시간 날 때마다 링크에 나가서 하자면 영 성에 차게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그런데 기초반에서 같이 시작했던 나(우리 아이)보다 두 살이나  어린 하림이는 매일 두 시간씩 레슨을 받는다 하더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실력을 보인다.

분명 처음에는 가 더 잘했는데 자존심도 상하고, 분하기도 하고 아이는 너무 억울해진다. 엄마한테 나도 개인 레슨 시켜달라고 해야지. 아님 그냥 피겨를 관둬야 겟ㄹ당(이것은 의식의 흐름인 글쓰기와 더불어  피겨의 늪에 빠지는 레슨이 시작되는 과정이다)


 사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인의 실력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원어민과 주 3회 영어회화를 배우는 사람의 실력은 비교할 대상이 아닌 것과 같다.


생활체육으로 즐겁게 슬슬 하자라고 시작한 운동은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작은 목표를 하나씩 성공시키며 자연히 욕심을 내게 되어있고, 시합도 준비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위해 조금씩 운동시간을 늘리게 된다.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선수들의 일정을 소화해내어야 시합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빙상장이 드물다 보니 하키, 쇼트, 스피드와 빙상장을 나누어 써야 하고 걸음마 스케이터와 높은 수준의 스케이터가 함께 레슨을 받는 건 비효율적이고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팀별로 운영되는 새벽 대관도 타고 학교 다녀와서도 두세 시간 타고, 저녁 대관도 타다 보니 더 잘한다. 당연한 일이다.

재능이 있다는 코치의 말을 믿고 아이와 시합에 나가보니 그렇게 타는 선수들이 꽤 많기도 하고, 시간을 투자함에 따라 아이가 따라오니 욕심이 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고개가 갸웃해진다.


선수반에 들어와 많은 시간 스케이트를 타게 해 보니 꽤 잘 탄다 생각했던   '나 '또는'우리 아이'는  초. 중급 레벨에서나 그나마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두각을 보인 거였고, 끝이 어딘가 싶고, 앞으로 갈길이 더 멀다는 걸 알게되는 순간 어떤 부모는 바로 발길을 돌리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 그래 한번 가보자! 하며 아이를 독려하며 그 길을 걷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무리한 투자(또는 )를 하며 견디어 내기도 한다.


한 달 대관비로만 많게는 일, 이백, 레슨비도 백만 원 돈이 넘어가기도 하고, 시합을 준비하며 의상을 맞추기라도 하면 또 기백만원이 훌쩍 넘는다.

거기다 하네스, 지상훈련, 발레, 리듬체조, 연기 등의 보조 훈련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학생으로서 해야 할 많은 다른 것 을 할 기회비용 도 잃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또한 코치들마다 실력도 가르치는 스타일도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뭐하나 속 시원한 게 없고, 빙상장마다 운영방침이 다르기도 하고, 비합리적인 것이 있어도 코치들도 보통 계약직이기에 힘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뭐하나 물어보려면 묵묵히 가라는데 내가 너무 모르는 것 같고, 피겨는 개인 운동이니 부모들끼리 단합도 안되고, 암담하기만 한 피겨의 길이다.


가르치는 코치이다 보니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그 아이들은 보통 운동신경을 타고났고, 피겨에 흠뻑 빠져있으며  적은 시간의 레슨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저 재밌어서 스스로 연습을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아이들이 모두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니까,

정말 하기 싫은 이야기지만,

 운동신경은 없어도 부모들의 시간적, 경제적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 끝까지 살아남는 게 당연하게 되었고, 부모의 경제력과 비례하여 투자하는 시간이 곧 실력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모님을 졸라 수업을 받는 소수에서  새벽, 밤 대관을 추가하고 주말과 휴일 명절을 반납하고, 고된 훈련과 가벼운 몸을 만들기 위해 음식을 제한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지치는 아이들이 있다. 많은 아이들은 그쯤에서 포기하고, 지겨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하루 10시간을 해도, 피겨가 좋고,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은 부모가 끌고 가지 못해도 나라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선수들 개인별 혜택을 주고 , 뭐 늘 거론되는 빙상장을 늘리자는 이런 판에 박힌 소리가 아니다


엘리트 체육은 점점 축소하고 선진국형 생활체육 정책으로 간다고 한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선수 혹사가 불가피한 메달 위주가 아닌 과정 중심으로 간다고 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바라고 있고, 정말 좋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떻게'는 별로 없다.

현실 코치로서 와닿는 건 그저 선수들의 학습권을 위해 시합에 나가려면 학습량을 체크하고, 출석일수를 채워야 하며 주말 체육을 활성화한다고 해서 주말에만 빙상장이 와글와글하다.

(시합도 주말에 주로 열려, 선수들을 위해 시합장에 가면 시합에 나가지 않는 진정한 생활체육 당사자? 들의  수업을 보충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정책을 관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알까?


선수를 질책하는 사람들은 선수를 제일 사랑하는 부모이기도 한 것을,

올인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피겨판에서 죽어도 할 거라는 내 아이를 위해 집을 팔아 대관비와 레슨비를 대고 그래서 배팅하듯 아이에게 투자하고, 아이들이 실적을 못 내면 탓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살얼음판을 걷는 그들과 마주하면 과연 즐기며 설렁설렁 재밌게 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한번 들어보라 하고 싶다.


엘리트 체육을 굳이 끌어내리지 말고, 생활체육의 수준을 힘껏 올리자.


비싼 레슨이 아닌 단체 강습에서도 당당히 대회를 나갈 수 있는 수준과 여건을 학부모들은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국공립시설 아이스링크도 일반 대기업,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시설과 더불어 경쟁력 있게 탄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운영해야 하며, 최소한 교육현장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코치들은 매 순간 임해야 한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경제적 여건과, 시간적 여유, 아이와 코치의 역량이 모두 맞출 수 있는 현실을 위해 어느 정도는 지자체와 학교에서 개입해주고 관리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나에게 왼쪽과 오른쪽을 정확히 택하라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피겨 관련 책을 써보자는 제의를 받았고, 두려워 고민하던 나에게 팔리는 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고, 이도 저도 아니고 중간이면 무색무취라며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는 나의 태도를 지적했다.


무슨 정치도 아니고 생활체육, 아님 엘리트 체육 하나만 택해서 옳다 그르다를 선택해야 한다니

마음 깊숙이 반발감이 요동쳤다

아니 이게 정치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게 정치 맞는구나. 정치는 곧 우리 생활이구나

하지만 한쪽으로만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이건 절대 양보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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