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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Feb 09. 2024

<137호>기고-거주가능한 지구

편집위원 초록

짙은 초록배경 위애 하얀 정사각형이 있다. 독일 우표가 찍혀있다. 가운데에 'Die Erde Bewohntbar(거주 가능한 지구)'이 적혀있다.

     


타지에서 부치는 편지     

연세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편집위원 초록입니다. 저는 지금 독일 바덴-뷔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의 튀빙겐(Tübinge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어요. 인구가 10만이 채 안 되는데 그중 3분의 1은 대학생인 작고 재미난 도시랍니다.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버디(교환학생 적응을 도와주는 현지인 학생) 친구와 카페에 간 적이 있었어요. 강변에 앉아 음료를 마시려고 테이크아웃을 하는데, 너무 당연스레 재사용컵을 내주더군요. 식당에서도 남은 음식을 가져갈 수 있게 다회용기를 구비해두고요. 일회용기에 담긴 음료를 살 땐 음료값에 병 보증금(Pfand)이 포함되어 있어, 마트에 있는 기계에 빈 병을 넣으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쿠폰으로 반환해줍니다. 길가에 물건을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문화도 있어요. 저도 거리에서 따뜻한 겨울부츠를 주워서 요긴하게 신는답니다. 

재사용컵

참, 9월엔 기후행동 시위를 크게 했어요. ‘기후는 맥주와 같다. 따뜻해지면 망한다!’라는 피켓을 보고 한참 킥킥거렸습니다. 또 재미있던 것들을 공유해드릴까요? Act now, or be fried later(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나중엔 구워진다), There is no job on dead planet(죽은 지구에 일자리는 없다), Planet over profit(돈보다 환경). 그리고 이런 것도 있었어요. Es gibt keinen grünen Kapitalismus(친환경 자본주의는 없다). Klimakampf heißt Arbeitskampf(기후투쟁은 노동투쟁이다). 음,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할게요.

“녹색(친환경) 자본주의는 없다”라고 쓰인 기후행동 슬로건

한번은 같은 주의 도시인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 놀러갔어요. 프라이부르크의 브봉(Vauban) 마을은 에너지자립, 마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마을에서 직접 만드는 것으로 유명해요. 이런 환경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겠구나, 생각하게 하는 시민공동체의 힘을 느꼈답니다. 이곳 생활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몇 자 적습니다. 이런 곳도 있다고. ‘불편하다’, ‘비현실적이다’라고 상상했던 많은 것들이 이미 생활이 된 곳도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꿈꾸고, 실현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인류의 최전선프라이부르크

(좌)바덴-뷔템베르크 및 근교지역 지도. 빨간 점선 안이 바덴-뷔템베르크. (우)프라이부르크 지도. 빨간 점선 안이 브봉마을.(그림출처: 구글지도)


(독일발음으로는 ‘바우반’이나 어원이 프랑스어라는 점, 한국 방송 등에 ‘브봉마을’로 소개된 점을 고려해 글에서는 ‘브봉’이라고 표기함.)

제가 사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쯤 가면 프라이부르크라는 도시가 있어요. 이곳의 브봉마을을, 저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급진적인 에너지실험, 그리고 사회실험을 하는 곳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떤 곳인지 한번 살펴보시겠어요?      

    알프레드 되블린 광장에서 여정을 시작해볼까요. 광장은 수요일마다 장이 서는 마을공동체의 중심입니다. 그 바로 앞의 Haus 037, 즉 브봉마을 37번지는 마을 커뮤니티센터 겸 어린이집 겸 협동조합 사무실 겸 공동주방 겸 레스토랑으로 쓰이고요. 길 건너엔 패시브하우스 주거단지가 있어요. 패시브하우스란 단열시스템을 통해 냉난방에 쓰이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건물형태인데요, 일반적인 건물의 90%, 신축 건물의 75%까지 냉난방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하죠. 

패시브하우스

이 패시브하우스 단지 외에도 이 동네 집들은 다들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이고 있어요. 집안에서 쓰는 전력을 생산하고, 어떤 건물들은 그 이상을 만들기도 해요. 소비하는 전력보다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건물을 ‘플러스에너지하우스’라고 부릅니다. 세계최초의 플러스에너지 하우스인 ‘헬리오트로프’ 역시 이곳에 있어요. 이 이름은 해바라기처럼 해를 따라 움직이는 식물들에서 따왔어요. 지붕에 달린 태양광 패널이 회전하며 햇빛을 포착하고 그늘을 만들며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세 배를 만들어내거든요. 

(좌)프라이부르크 주택 전경 (우)헬리오트로프

큰길로 나가볼까요. 태양의 배(Sonnenschiff)라는 건물은 최초의 상업용 플러스에너지하우스라고 하죠. 단열시스템은 물론이고요, 옥상에는 녹지가 있고, 층별 안내에 각 사무실이 생산하는 전력이 몇 개의 전등을 밝힐 수 있는지 표시해둔 게 재밌었습니다.

(좌) 태양의 배(Sonnenschiff)층별 안내 (우)태양의 배(Sonnenschiff)

마을엔 차가 전혀 다니지 않아요. 대신 짐수레를 단 자전거들이 많지요. 마을의 차들은 공용차고에 모두 주차되어 있고, 공유자동차 서비스도 활발합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마을 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열병합 발전소가 있어요. 천연가스와 목재를 사용해 난방과 생활을 위한 전력을 생산하죠. 그 바로 옆엔 뭐가 있는지 아세요? 바로 청소년공원이랍니다. 점점 상상하게 되었어요. 여기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자랄까?

마을 화력발전소(우)와 청소년공원(좌)

내 집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이 있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겠지요. 집안에 에어컨이 없는 아이들도 있겠고요(독일의 여름은 한국만큼 덥진 않답니다). 자가용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마을 발전소 옆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떠올려봅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원전이나 대규모 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들과는 에너지에 대한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이곳 아이들은 에너지는, 환경은 ‘나의 일’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있을까요?      

프라이부르크엔 직주근접(직장과 주거공간의 근접성 보장), 안전한 자전거도로와 인도, 플러스에너지하우스, 공용주차장 등 에너지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인프라가 있었어요. ‘지속가능한 삶’이 ‘삶’을 저해하지 않게 만드는 수많은 고려가 보였지요. 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욕구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쾌적하고도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렇지만 실은, 원전과 자동차가 더 편하죠. 더 값싸고, 편리하고, 익숙해요. 일회용컵도, 플라스틱 빨대도, 손쉽게 쓰레기를 만들고 버리는 생활형태도. 

궁금해졌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제도를 갖추게 되었을까요? 갑자기 ‘음료수 값에 공병 비용을 포함해 더 비싸게 받겠습니다. 반환할 때 돌려받으세요’ 하는데, ‘우리 마을에선 앞으로 자동차를 끌고 다닐 수 없습니다’ 하는데, 사람들은 왜 동의했을까요? 이들은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을까요? 

              

사회적 합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가 그렇듯, 바덴-뷔템베르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바덴-뷔템베르크는 EU, 연방정부, 지방정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들이 연쇄적으로 만들어낸 변화의 귀결입니다. EU는 2019년 그린 딜(Green Deal)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천명하며, 탄소중립·신재생에너지·자원순환 등 다양한 분야의 규제와 합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방정부는 2000년대에 플라스틱 등 1회용 재활용 용기(PET) 점유율이 높아지자 그 점유율 감소를 위해 2004년부터 반환보증금을 도입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글에선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환경정책을 추진하는 지방정부’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활발한 시민사회’라는 두 가지 흐름에 주목해볼까 합니다.     


1. 바덴-뷔템베르크 주의 안정적 정치리더십  

바덴-뷔템베르크의 지방정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녹색당(Green Party)의 성장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70년대 이후 독일 전역에서 녹색당이 의회에 진입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갔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덴-뷔템베르크 주는 녹색당의 정치적 기반이 견고합니다. 현재 녹색당은 지역 의회 내 제1당이고, 녹색당의 빈프리트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이 2011년부터 주 총리를 역임하고 있죠. 크레치만 정부 1기 녹색당-사민당(SPD) 연립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달리 원전과 화력발전소를 적극적으로 감축하고, 풍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에너지 분야에 시민참여를 독려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크레치만 정부의 풍력발전소 건설에 주목합니다. 풍력에너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각광받는 대체에너지이지만, 풍력발전소를 지으면 그 지역의 경관이 파괴되고 지역 동식물들이 피해를 보는 양면적인 속성이 있죠. 전문가들은 크레치만 정부의 풍력발전소 건설이 경관보호 등 지역보존목표보다 기후위기 대응에 우선순위를 둔 정책결정이었다고 분석합니다. 

현재 3기에 접어든 크레치만 정부는 ‘지속가능한 바덴-뷔템베르크(Nachhaltiges Baden-Württemberg)’를 위한 정책으로 다음의 여덟 가지 세부 목표를 제시합니다.     

>성공적 에너지 전환(Energiewende erfolgreich gestalten)

>지역경관 보호(Erhalten, was uns erhält)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구현(Wegbereiter für nachhaltige Mobilität)

>생물다양성 보호(Die Artenvielfalt bewahren)

>친환경 소비자주의 강화(Starke Verbraucherinnen und Verbraucher)

>농촌지역활성화(Starker Ländlicher Raum)

>지속가능한 농업과 삼림(Zukunftsfähige Land- und Forstwirtschaft)

>기후보호 목표 달성(Zielstrebig für den Klimaschutz)

(괄호 안은 원어, 원어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의역함-필자)

기후보호와 관련한 정책들을 좀 더 살펴볼까요?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바덴-뷔템베르크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65% 이상 감축하고, 2040년까지 기후중립(Klimaneutralität)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합니다. 2023년 2월 통과된 기후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법률(Klimaschutz- und Klimawandelanpassungsgesetz Baden-Württemberg)에서는 에너지, 산업,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탄소배출 감축량을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2030년까지 에너지 부문은 75%를, 건설 부문은 49%를, 폐기물 처리 부문은 88%를 감축해야 합니다(1990년 기준). 각 부문의 탄소배출량은 주에서 만든 탄소배출량 측정기준(Klima-Maßnahmen-Register; 약자 KMR)에 따라 측정됩니다. 통일된, 포괄적인, 지속적인 기준으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기후보호 기금을 마련하고 냉난방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후변화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들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을 보건대, 바덴-뷔템베르크에서 환경보호는 ‘예측 가능성이 크다’라고 하겠습니다. 정부의 의지는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목표가 설정되어 있죠. 환경 규제는 법으로 제정하여 강제성을 높이고, 명확한 수치로 목표치를 제시합니다. 재정지원에도 적극적이고요. 

예측가능하면 신뢰가 생깁니다. 개인, 단체, 기업과 같은 행위자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바꿔야 하겠구나!, 또는, 바꿔도 되겠구나! 하는 명확한 동기를 부여하죠. 바덴-뷔템베르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치 리더십은 명확한 방향을 설정했고, 지역사회의 호응을 얻으며 바덴-뷔템베르크를 그들이 설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2. 프라이부르크의 역동적 시민사회

이번엔 다시 프라이부르크로 가볼까 합니다. 프라이부르크 브봉마을을 오늘의 모습으로 만든 건 주민공동체의 역할이 컸습니다. 브봉마을 이곳저곳에 마을의 건축물과 마을공동체를 소개하는 안내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태양광 시대로 출발(Aufbruch ins solare Zeitalter)’라는 제목의 안내문을 대신 읽어드릴까 합니다. 이 글은 프라이부르크 환경운동의 기원을 70~80년대 반(反)원전운동에서 찾습니다. 학생, 주민, 포도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모두 프라이부르크 근교 카이저스툴(Kaiserstuhl)산과 라인(Rhine)강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계획을 반대하고 나섰죠. 갑론을박이 오가던 중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납니다. 이후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반원전 에너지자립도시를 선언합니다. 

브봉마을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개발됩니다. 이 지역은 본래 프랑스군 주둔지였는데, 1990년 독일 통일과 프랑스군 철수 이후 프라이부르크에 편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봉포럼’(Forum Vauban; 주민 커뮤니티 겸 이익단체로 이후 보봉주민연대; Der Stadtteilverein Vauban으로 개칭됨)와 S.U.S.I(Selbstorganisierten Unabhängigen Siedlungsinitiative; 주민주도형 공동주택 개발) 프로젝트가 설립되었습니다. 수년간의 주민협의 끝에 나온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이란 기조 아래 새로운 1998년부터 3단계에 걸쳐 2009년 보봉 생태주거단지 38만 헥타르가 완성되었습니다. 지역 출신의 건축가 Rolf Disch가 태양의 배, 패시브하우스 등의 설계를 도맡았죠. 건설과정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민공동체는 지속가능하고 사회참여적인 마을을 조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군대 막사로 쓰이던 건물들이 프라이부르크 학생조합과 S.U.S.I 프로젝트의 손을 거쳐 저렴한 공동주택으로 탈바꿈했죠. 제가 방문했을 땐 공동주택 외벽에 30주년 기념행사 플랜카드가 붙어 있더군요. 마을공동체는 지금도 커뮤니티센터와 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공동주택에 붙어있는 플래카드 “주거연대 프로젝트 30주년/스스로 만드는 저렴한 주택”(필자 의역)

Die Erde Bewohntbar(거주가능한 지구). 그들은 플러스에너지하우스 홍보문의 제목을 그렇게 지어놓았습니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 우리에게 무엇이 더 좋은가? 함께 고민하고, 우리 마을을 함께 바꾸어나갈 수 있는 마을공동체. ‘더 좋은 삶은 무엇인가?’ 일상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이웃, 그 역동적인 마을공동체가 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을요. 

그날, 독일 친구와 다회용컵에 레모네이드를 마셨던 날, 저는 그 친구에게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정말 다들 다회용컵을 쓰는 거야? 왜 이 정책을 시행한 거야? 너는 이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다들 동의한 거야? 왜? 왜 다들 다회용컵을 쓰는 거야? 친구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그게 환경에 좋으니까….’ 아, 이 얼마나 맥이 탁 풀리는 인과관계란 말입니까. 그런 말이야 누구든 하죠.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친구가 말한 ‘원인’은 사실 바덴-뷔템베르크의 환경의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그 뻔한 대답은 바덴-뷔템베르크의 ‘사회적 합의’의 방증이었을 겁니다. 안정적 정치 리더십과 역동적 시민사회, 그리고 다양한 층위에서 협응해온 행위자들이 이루어낸 사회적 합의 말이죠.       

   

좋은 삶을 살 권리     

제가 갔었던 기후위기 시위현장에는 기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환경의제는 반전평화, 노동, 분배 등의 의제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피켓에는 Klimakampf heißt Arbeitskampf(기후투쟁은 노동투쟁이다)라고 쓰여있어요. 피켓을 많이 가져온 다른 시위 참가자에게 건네받았지요. 지멘스, 도이체방크 등 대기업과 은행 등을 호명하며 야유하기도 했는데, 저는 이름만 겨우     아는 회사들이라 머쓱하게 입만 벙긋거렸죠. 

기후위기 시위에 참여한 초록

브봉마을 협동조합은 반원전운동을 함께하는 활동가와 농민의 공동체로 시작해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들고, 커뮤니티센터, 공동육아, 협동주택, 장애인 고용 등 다양한 사회영역에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린 시티 호텔 브봉은 이들이 자랑하는 마을 자산 중 하나예요. 마을의 엄격한 환경기준을 만족하는 건축물인 것은 당연하고, 직원의 절반 이상 장애인을 고용하지요. 

환경의제는 환경의제로 끝나지 않아요. 환경의제는 “좋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촉구합니다.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자꾸 고민하다 보면, ‘우리’라는 말이, ‘삶’이라는 말이 자꾸만 입 끝에 남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그것들 사이에 다른 말들을 넣어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지?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더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의 삶을 위해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지? 환경의제는 그 자체로도 좋은 토론거리이지만, 저는 이곳에서 이 의제가 “좋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더 넓은 질문의 물꼬를 트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고민하게, 나아가게 만드는 것을요. 어쩌면 꼭 환경의제일 필요는 없겠지요. 눈앞의 편리한 삶, 당장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삶과는 다른 ‘좋은 삶’, ‘옳은 삶’을 고민하게 하는 어떤 주제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겁니다. 다만 저는 믿습니다. 한 주제의 ‘좋은 삶’, ‘옳은 삶’에 대한 공동체의 논의가, 그 공동체가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가 더 넓은 사회적 삶에서의 좋음과 옳음을 고민하게 하리라는 것을요. 

그린시티호텔 브봉 전경

추신오늘의 우리들에 부쳐     

글을 쓰던 중 뉴스를 접했습니다.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철회했다고요. 여러분들은 생활에서 이 이슈를 얼마나 감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절망스러우신가요? 지긋지긋한 종이빨대가 사라져 오히려 즐거우신가요?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쓸 수 있는 게 편리하면서도 일회용 컵이 잔뜩 쌓인 쓰레기통 앞에선 마음이 불편하신가요? 

바덴-뷔템베르크 모델을 무작정 따라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불가능해’, ‘실행하기 어려워’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생활로 해내고 있는 동네를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이곳에서 생활하고 여러분께 들려드릴 이야기를 고민하면서 제가 얻은 깨달음을 말씀드리고 싶었고요. 환경보호를 위한 공동체의 사회적 합의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확고한 비전을 지닌 정치 리더십과, 스스로의 삶에 변화를 모색하는 역동적인 시민사회와, 크고작은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합쳐져 비로소 얻어진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사회적 합의들이 모이면, ‘좋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우리의 생활에 자리잡으면, 우리는 더 많은 영역에서 토론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요. 그때쯤엔 다회용컵쯤이야 대단한 불편 따위로 느껴지지도 않을 테지요.      


참고문헌

 https://passivehouse.com의 ‘What is Passive House’ 문서 번역(23.11.16)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본 분관「독일 빈 용기 반환보증금(Pfand) 제도 개요」18.06.22(23.11.19)

Hörisch, F., & Wurster, S. (2019). The Policies of the First Green-Red Government in the German Federal State of Baden-Württemberg, 2011–2016: A Fuzzy-Set Qualitative Comparative Analysis of Different Policy Sectors. Politische Vierteljahresschrift, 60(3), 513–538.

바덴-뷔템베르크 공식홈페이지>>Design BW>>Sustainable BW(2023.11.20.) https://www.baden-wuerttemberg.de/de/bw-gestalten/nachhaltiges-baden-wuerttemberg 

바덴-뷔템베르크 환경부 보도자료 “Klima-Maßnahmen-Register”(2023.11.20)

https://um.baden-wuerttemberg.de/de/klima/klimaschutz-in-bw/klima-massnahmen-register-kmr

바덴-뷔템베르크 공식홈페이지 보도자료 “Das Klima effektiv schützen” https://www.baden-wuerttemberg.de/de/bw-gestalten/nachhaltiges-baden-wuerttemberg/klimaschutz

박길용. (2017).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市)의 협력적 거버넌스 참여과정 분석 : 보봉(Vauban)생태주거단지를 중심으로. 한독사회과학논총, 27(1), 31-57.

브봉마을 마을 안내문 “Active neighbourhood with a diverse range of living accomo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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