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내 이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세편집위원회 Jul 03. 2024

<138호>여름호를 펴내며

편집장 예인


 오랜만이네요. 138호 편집장 예인입니다. 반년 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인사에 이어질 말로 부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밝히자면, 이 인사가 편집장으로서는 마지막 인사가 될 거 같습니다. 더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자면 저는 이번 학기가 4-2입니다. 5-1까지 하게 되었으나 어쨌든 졸업반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연세’ 대학교와 <연세> 모두에서의 끝이 다가온다는 걸 인식하니, 당연했던 공간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번 여름 호는 바뀐 점이 많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이번 호는 책도 조금 커지고 글도 많아졌습니다. 계간지인 <연세>가 반년 만에 새 책을 낸 이유는, 어떤 사정으로 이번 봄 호만 건너뛴 것이 아니라, <연세>가 반연간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4번 내던 책을 2번으로 줄이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생각은 아닙니다. 계간을 포기하자는 논의는 수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대학생으로서의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3개월에 한 번씩 책을 내기란 항상 힘에 부치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이 글을 쓰는 것과 <연세>를 발간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주제를 선정하고 취재와 논의를 거쳐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책을 디자인하고 광고를 넣어 비용을 마련하고 마지막으로 인쇄와 배포까지 하는 지난한 과정이 여러분 손에 잡힌 한 권의 <연세> 아래에 감춰져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아니, 정보의 해일이 매 순간 밀려오는 세상에서 읽힐 책을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양질의 글도 파묻히기 십상인 상황에서 어쨌든 우리 연세편집위원회는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맥락 하에 <연세>는 6개월 간격의 반연간지로 과감히 전환됐습니다. 덜 자주 나오더라도 더 읽을 만한 책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호 편집위원들의 글을 읽어 보니, 저는 잘 한 선택이라고 확신합니다. 독자분들께서 직접 뒷장을 넘겨 제 믿음이 옳음을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의 질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번 호에는 새로운 것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세 사진전’부터 ‘길거리 인터뷰’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연표를 엽니다’까지. 긴 글의 연속에 지칠 독자 분들이 가볍게도 보고 읽으실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 한 걸음은 바로 ‘안과 밖’을 구분 짓고 구분 지음으로써 다시 연결하고자 하는 투박한 내딛음이기도 합니다. 네, 뜬금없이 이번 호의 제목을 언급하고 이상한 설명을 덧붙였는데요, 이번 호의 제목은 바로 ‘안과 밖’입니다. 이 책에서는 많은 글이 각자의 방식으로 안과 밖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어디든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제목 같은데요, 여러분에게 ‘안과 밖’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면서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안과 밖으로 구분되나 더 이상 안이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나’라는 공간입니다.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대사가 한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만, ‘너’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여러분 모두가 안과 밖으로 나뉠 수 없는 단일한 ‘나’를 체험하고 계실 거라 확신합니다. 따라서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안’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밖’은 자연스레 '나‘의 밖, 바로 이 세상 전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순수한 밖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강의실이 되었든 맑은 하늘이 되었든 나의 밖은 언제나 밖을 경험하는 나를 경유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나의 밖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잊고 일상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나의 밖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나만이 남습니다. 가던 장소만을 가고 보던 것만을 보고 읽던 글만을 읽고. 오로지 내 ’안‘에서만 살아갈 뿐입니다. 히키코모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밖’은 항상 나를 경유함으로, 따라서 ‘나’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오직 ‘나’만이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키코모리가 방에서 나오듯 나의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번 호에 등장하는 ‘나의 밖’이 무엇인지 소개하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연세대학교가 있겠습니다. ‘아사일’(아시아 사립대 1위)답게 큰돈을 굴리는 학교입니다. 그 돈으로 주관하는 여러 사업이 있겠고요. 또 학교에는 쓰레기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정리하는 청소 노동자도 있고요.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권의 가치를 믿고 그것에 온 힘을 싣기도 하고요, 꼭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어쨌든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겁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을 응원합니다.) 그들이 쓰는 글도 있을 테고요. 글 하면 또 연세편집위원회죠. 학생회관 311호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편집실을 나서면 백양로에 삼삼오오 걸어 다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양로에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기꺼이 찍혀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백양로의 동쪽에는 의과대학과 세브란스 병원이 있는데요. 그곳에는 의사도 있고 환자도 있습니다. 아 물론 의대생도 있고요. 의대생이 있으니, 그들이 책을 빌리는 의학도서관도 따로 있습니다. 잘 살펴보시면 연세대학교 근방에 도서관이 참 많습니다. 

 

 조금 시야를 넓혀 볼까요.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의(不義)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도저히 가만히 살 수는 없게 되어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죽거나 집을 떠나게 된 이들도 있고요. 자신이 평생을 살던 집에 갑자기 불이 났는데, 문이 밖에서 잠겨 있어 산채로 불에 타 죽은 이들도 있습니다. 아주 짧은 문장으로 이번 호를 소개해 봤습니다. 이상하게 소개했다고 다른 편집위원들이 절 혼내지는 않을까 걱정되네요. 한두 문장만으로 최대한 짧게 써봤는데도 제법 깁니다. ‘나의 밖’에 이토록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풍경부터, 사회에 만연하지만 전혀 체감되지 않는 일들까지 말입니다. 이 중에서 제 글을 읽기 전 여러분이 오늘 이미 인지했던 것이 얼마나 있나요? 있기는 한가요? 아무것도 없거나 아주 적은 수만 인지했다면 그건 여러분의 밖이 여러분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주어지는 일만 관성대로 해내는 삶은, 물론 그것만으로도 고되지만, ‘밖’에 있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낯선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오로지 ‘나’만이 남습니다. 이때는 내가 ‘나’를 인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안과 밖이 온통 나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온 세상을 지배하는 ‘나’를 밀어내고 밖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고통을 감내하며 ‘나 아닌 밖’을 겨우 쳐다볼 때, 그곳엔 완전히 새롭고 낯선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낯선 세상은 단지 낯선 대상에 머무를래야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나’라는 경로를 거칠 수밖에 없고 ‘나’를 거치는 순간 그 모든 것과 나는 ‘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 세상에 살아가는 ‘나’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요약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름 호의 제목은 ‘안과 밖’입니다. 책 내내 ‘나 아닌 밖’을 보려는 시도로 가득합니다. 독자분들이 밖을 낯설게 보려는 편집위원들의 소중한 시도와 만나는 순간! 네, 게임 끝입니다. ‘우리’가 되신 겁니다. 감이 오시나요? 좀 준비가 되셨을까요? 사진전을 다시 보셔도 좋고 첫 글인 ‘학교와 돈 프로젝트’를 읽으셔도 좋습니다. 조금 민망한 칭찬이지만 정말 기가 막힙니다. 더 이상 시간 지체시키지 않겠습니다. 136, 137, 138호 편집장 예인이었습니다.             


마음을 모아,      

편집장 예인 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137호>사과해서 죄송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