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득 찬 세상
(전편에 이어..)
야훼는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바다와 땅을 나누고 식물과 동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만든 것은 어떤 존재였고, 다른 모든 것은 짝이 있었으나 그 존재는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 존재는 야훼에게 자신에게도 짝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고, 야훼는 그 존재를 둘로 나눴다. 그중 하나가 잇쉬, 다른 하나가 잇샤이다.
야훼는 자신이 만든 동산에 그 둘이 살 수 있도록 했고, 특이한 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하나는 생명나무,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야훼는 굳이 굳이 이 두 나무를 만들어놓고, 절대로 이 나무에서 나는 열매는 먹지 말라고, 이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루는 뱀이 잇샤에게 찾아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가리켰다. 저 나무의 열매들이 탐나지 않냐고!
처음에 잇샤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먹으면 죽는다고 야훼가 당부했다면서 뱀의 제안을 거부한다.
뱀은 물러서지 않고 이야기한다. 저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되고 눈이 밝아져서 야훼와 같이 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잇샤가 자세히 보니 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해 보이고, 무엇보다 그것을 먹으면 지혜롭게 될 것 같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잇쉬에게도 권한다.
눈이 밝아진 잇쉬와 잇샤는 그들 스스로가 발가벗은 것을 알아차렸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혜가 생겼고, 선악을 알게 되었다. 야훼는 자신들의 피조물이 명령을 어긴 것을 보고 남은 생명나무도 탐할까 싶어 동산에서 내쫓는다. 그리고 잇쉬와 잇샤는 세상에 나가게 된다. 비록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땅을 일구는 노동의 고통도 겪어야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새와 같이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기독교인이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신화를 재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도 잇샤가 왔다. 가장 먼저 잇샤가 내게 가져온 열매는 바로 성소수자였다. 당시 철저한 개신교인이었던 내게 성소수자라는 존재는 가엾이 여겨 마땅한 존재였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이성애자로) 존재였다. 신이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했던 선악과와 같이 교리의 명령에 따라 다뤄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레비나스의 말대로 타자의 얼굴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자의 얼굴은 내게 절대적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성소수자라는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물자 눈이 밝아졌다.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과 억압을 공부하게 되었고, 투쟁의 현장에 나가게 되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도 매년, 이 도시 저 도시 찾아다니며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알을 깬다는 것은 곧 나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부숴나가는 것이었다. 모든 것들이 무너졌고, 공허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세계는 다시 하나둘씩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라는 선악과를 시작으로, 장애인 노동자 아동 여성 이주민 등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모든 존재로 내 세계를 채워갔다.
텅 빈 원자는 결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원자의 중심 한가운데에 질량을 가진 원자핵이 있고, 그 주변에 전하를 가지고 자리한 전자의 상호작용도 존재한다. 특히 그것으로부터 모든 물리적, 화학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
비록 이 세상은 비어있지만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기쁨일 수도, 사랑일 수도, 어쩌면 고통일 수도 있다. 이 텅 빈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한다.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사랑을 주고,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서 라야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