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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노들 May 07. 2020

저는 약하고 또 강합니다

"너는 알고 보면 진짜 정적인 사람인데."


친한 언니가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고민거리가 있어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주 보진 못해도 마음으로 의지가 되는 언니.


어릴 때부터 늘 에너지를 바깥에 두고 살아왔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쪼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최대한 바쁘게 살았다.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면 생의 초반기에 거의 대부분을 써 버린 것일까. 언제부턴가 그런 부산함이 버거웠다.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한 게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은 삶이 지겨웠다. 바깥에 쏟는 시간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데 써야 했다.


그렇게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뒤늦게 사춘기를 또 겪는 사람처럼 자꾸만 물음이 생겼다. 외향적인가 내향적인가, 너무 많은 가면을 쓰고 사는 걸까, 내 진짜 모습은 뭘까, 찾을 수 있을까. 그즈음 요가를 시작했던 건 행운이었다. 30대를 준비하며 이제는 생존을 위해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운동 삼아 시작했던 게 지금은 삶의 태도와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이 됐다.


첫 요가 수업이 아직도 생생하다. 체험 수업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동네 요가 스튜디오를 갔는데, 마침 그 시간에 열린 게 ‘아딜리브리아 요가’라는 수업이었다. 아디다스에서 만든 요가로, 스포츠 브랜드에서 만든 요가답게 근력을 많이 써야 했다. 나는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땀범벅이 되어 반쯤 넋을 놓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혼이 나간 채로 일 년 치 수강료를 결제했다. 요가를 하는 시간만큼은 몸을 쓰며 동작을 따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요가를 하는 순간마다 의외의 내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남들 다 하는 자세는 혼자 안 돼서 선생님을 웃게 만들고, 시간을 오래 들여야 가능한 자세는 또 쉽게 되고. 마음이 어지러운 날엔 균형이 쉽게 흐트러졌고, 어려운 동작이 많은 수업에서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애를 쓰고, 겨우겨우 끝에 와서야 마침내 온몸을 이완하는 사바사나를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매 시간 나는 약하고 또 강했다.


"몸이 참 정직하다."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지금 안 되는 것은 그냥 안 되는 것이고, 거기서 조금만 내 범위를 벗어나 과하게 힘을 쓰면 다음날 바로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그 정도의 고통이 되면 한 며칠을 쉬어야 한다. 요령을 부려 키운 힘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맥없이 무너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거기서 아주 조금씩만 매일 나아가면 몸도 그만큼 차근차근 자리를 내준다. 힘이 부족했던 곳에는 단단함이 차고, 똘똘 뭉쳐있던 곳은 부드럽게 풀린다.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는다.


몸의 정직함, 다시 말하면 나의 가능성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매일같이 하면서, 부단히 노력하고 또 애써 노력하지 않는 나의 삶 역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무엇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걱정하며 한 인간을 납작하게 만드는 대신 다양한 나 자신을 끌어안고 좌충우돌 우당탕탕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낀다.


언젠가 자연과 가까운 곳에 작은 요가 스테이를 열고 싶다. 그렇게 관절이 튼튼한 귀엽고 명랑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야지.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 만무한 이 소망을 마음에 품고, 많이 울기도 하고 또 그만큼 많이 웃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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