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보다는 공정
다시 이상 사회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앞에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는데, 기본적으로 “더 좋은 제도”라는 것의 기준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여기서는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부터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리주의 측면에서 보면 이상적인 사회의 전제는 “모두에게”가 붙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은 상태를 이상 사회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약간 더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사회를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기본적인 가치로 존중되고 있지만, 이런 인식이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나 언사를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고, 갑질에 관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차마 사회 분위기상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고 표현을 못할 뿐이지,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무시를 당하는 부류 역시 은연중에 위축되어 인정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평등이라는 말이 강조되는 것 역시 역설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도 남에게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을 보면, 남과 다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좋은 사회가 온다고 모두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미래 소설에 나오는 상황을 빌려 보자면, 자녀는 인공 수정으로 생기게 하고, 남녀 간 섹스는 단지 놀이로 하고 싶을 때 절차를 거쳐 자유롭게 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상적이지만 주인공은 그 사회를 벗어나려 하며, 그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 사회를 이상 사회라고 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충족된 사회는 어찌 보면 아무 의욕이 없는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이 없어진 사회는 재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종족 번식과 연관돼 있는 섹스의 욕구는 인생에 어쩌면 20~30대를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살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이 가장 의욕적으로 위대한 발명, 발견을 하는 시기도 보통 이 시기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요즘 결혼을 안 하는 사람이 많은데, 즐겁게 사는 것 같지만 막상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먹고살기 힘들어 결혼을 하지 못한 경우를 배제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그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져왔던 결혼, 출산, 양육이라는 이벤트가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봅니다. 인생에서는 꾸준히 새로운 이벤트가 있게 됩니다. 태어난 이후의 경험은 모든 것이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기를 보내고, 취직이라는 새로움을 맞이하기 위해 대학 생활을 보냅니다. 늘 새로운 일이 생기기 때문에 인생에 외로움과 의미 없음을 느끼는 순간이 적어집니다. 취직을 하면 보통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느라 정신없는 삶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 자식을 다 키우고 나서 삶의 허무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만, 여러 모임을 만들어 놀러 다니는 등의 새로운 이벤트가 꾸준히 생기게 됩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어온 이벤트 중에 20~30년 치 이벤트가 빠지게 되면서 근원적인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독신 자체가 많아져 보편화되고 있지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진화는 생각보다 느리고, 이에 맞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은 꽤나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돌아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보면 유토피아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런 고통이 없는 사회는 허무할 것이며, 남보다 잘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사회는 모두의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한, 서로에 관계를 만들고, 상처 입고, 성장하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회가 가장 인간 본능에 충실한 사회일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가장 큰 권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현대 사회는 어찌 보면 이상 사회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 인간의 본성 때문에 문제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어쨌든 불합리한 강자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게 이상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물질적인 문제입니다. 생활이 어렵다면 누구도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와 복지 수준에서 굶어 죽을 정도로 어려운 경우는 드뭅니다. 아무리 능력이 없고 일을 안 해도 최소한의 삶은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고,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하면 물질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가난하게 살더라도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문제가 적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회의 부당함에 따라 가난하게 살게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면 사회를 이상적이라고 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이 이상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가장 큰 요인은 공정성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경쟁적으로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어 하지만, 그런 욕구를 어떤 노력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 분노를 느낍니다. 최저 수급을 받는 정도로 먹지 못하는 비싼 음식을 먹게 해 준다고 하면, 그 순간은 행복하겠지만, 다시 불행해질 것입니다. 어쨌든 남보다 앞서 나가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남보다 잘날 수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남보다 잘날 자격이 있게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합리한 개입으로 공정하지 못하게 남보다 처지게 될 때 가장 크게 분노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보다 능력도 없어 보이는데 좋은 부모를 만나 자신을 무시하듯 하는 사람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특혜를 입은 사람 때문에 입시나 취업에 떨어진 사실이 드러났을 때 분노합니다. 또한 이러한 부조리가 밝혀져 법정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음에 극도로 분노하게 됩니다. 제도만으로 보면 현대 사회는 이상 사회에 가까워 보이지만 분명 개선할 부분은 많아 보입니다.
공정성에 대해 초점을 맞춰놓고 생각해보면 개선 방향이 보이는 듯합니다. 우선 출발선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사회는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을 한다고 배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자의 재산을 뺏는다거나, 자식들을 다 같은 보육원에 맡기어서 똑같이 시작하게 한다는 등의 생각은 또 다른 불공정을 낳을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상속세를 내게 하지만, 갖가지 방법으로 피해 가는 사람이 많은 실정이며, 상속세 자체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출발선이 생긴다면 사회에 대한 불만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공정성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제도는 분명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같은 죄에는 같은 처벌이 되는 기본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 대한 과징금은 항상 의문을 갖게 합니다. 불법을 통해 얻은 추정 수익에 반도 안 되는 추징금을 걷는 것을 보면, 과연 어떤 기업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직책에 있을수록 많은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사건이 터지고 나면 몰랐다는 등의 이유로 자신의 아랫사람을 보내 버립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지는 사회가 된다면 더 공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견제가 없는 권력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는 그 집단의 사람들이 나쁘다고 보기가 어려우며,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요인이 큰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3대 권력 기관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견제를 하고 있지만, 무언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하게 됩니다. 최소한 입법부와 행정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민의 견제를 받게 되지만, 사법부는 절대적입니다. 사법부의 판결은 절대적이고, 일반인이 알기도 어려우며, 불만을 가져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공정하게 한다고 3번의 재판을 하지만 모두 법조인이 다루게 되며, 이는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모든 국민이 각자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권력 기간에 관여를 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직접 민주주의도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 국민이 권력 기관을 견제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다소 추상적으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더 많은 사항이 필요할 수도 있고,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적인 사회라고 하면 고정적인 제도나 완성된 운영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으로 제시를 하고, 제도에 따라 반영이 되고, 부작용이 수정을 할 수 있어서 공정함을 느끼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은 확고하고 구체적인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제도가 있어야 하며, 시민은 그 제도를 나름의 기준을 통하여 평가할 수 있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의 잘못에는 크게 분노하고 비판하지만, 본인의 가벼운 생각과 행동의 잘못을 누군가가 지적한다면 소시민의 위치를 강조하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는 제도만으로 이상적이게 되지 않으며,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싫다면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정치인의 수준은 시민의 수준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개개인의 선택과 수준에 따라 사회의 수준이 정해진다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현대 사회는 상당히 이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