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다
인터넷 댓글의 영향은 날로 증가하여, 국가 기관에서 댓글을 조작하는 일까지 발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댓글을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댓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댓글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며 하는 연예인에 대한 가십거리, 정치인에 대한 비판 등은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술자리에서 상사에 대한 험담이 안주가 될 정도로 직장인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댓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얘기들이 글로 남게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확산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조차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플을 잘 보면 무언가 본인의 댓글이 주는 영향력에 뿌듯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리가 보이는 듯합니다. 사실 누가 볼지도 모르는 글에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같은 내용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을 인터넷에 풀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유명인들이 악플에 반응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일까지 생겨도 악플을 계속 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 인터넷 채팅이 한참 유행을 했었습니다. 당시에 채팅을 하면 인격이 변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할 때는 상대방의 표정과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말을 조심해서 하게 되는데, 얼굴을 보지 않는 채팅방에서는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해져서 일상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심한 욕을 하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채팅 방은 싫으면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더욱 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댓글은 그보다 더한 익명성이 보장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욕구가 모두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로 무작정 악플을 규제하기에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리 부작용이 있더라도 인터넷 댓글 문화는 확실히 과거 특정 집단의 정보 독점 및 제한된 정보 공유로 인해 여론을 통제하는 문제를 많이 완화시켰습니다. 합리적인 악플 규제를 하다 보면 결국 정치권은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재갈을 물리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연예인이 되면 어느 정도 악플을 견디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사실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며, 연예인이 많은 돈을 버는 대가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관심을 많은 받는 연예인이 더 성공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참을 필요는 없으며, 본인들의 심한 악플에 대한 고소는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선처하는 일도 없어야 재발 방지도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대중들도 심한 악플에 대한 반감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선처를 해줄수록 저 악플이 사실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선을 넘은 악플에 대해 단호하게 계속 대처를 하다 보면 점점 더 나은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처벌 수위도 높아져야 합니다. 수위가 상위 5%의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심한 정도의 댓글이라면, 정말 강력하게 처벌을 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처벌받을 가능성도 매우 낮고, 처벌을 받아도 간단히 벌금을 내는 정도인 상황에서 악플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안 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하지만 물론 이런 정도의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규제를 해도 매우 일부의 악플이 처벌을 받을 것이며, 그 과정이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심한 악플을 다는 사람은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지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요즘 신문 기자들도 기레기라는 말을 들으며 역량에 의심을 많이 받지만, 그래도 나름 모니터링이 되고 고발을 당할 수도 있기에 나름 논리적으로 기사를 풀려합니다. 하지만 악플은 사실이 아니라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자신이 극렬하게 주장했던 일이 사실이 아님을 알더라도 자신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불 킥한다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이 한 말이나 쓴 글에 대해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를 딛고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플러들은 본인이 쓴 글을 자신의 플랫폼에 두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잘못 생각했음을 알게 되더라도 흘려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지 못한 채 계속 자신의 이상한 생각을 굳혀가게 됩니다. 악플에 의해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도 크지만, 악플을 쓰는 당사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답답한 삶을 살게 되는 것 또한 안타깝습니다. 누구에게 공개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쓴 모든 글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담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어느 순간 자신이 과거에 쓴 글을 보고 본인에 대한 부끄러운 고찰을 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과거 대학 시절 휴학을 하고 한 학기 정도 집에서 빈둥거리며 폐인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가장 많이 들어가서 본 사이트가 디시인사이드였는데, 그 생태 구조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디시가 확장되면서 각종 갤러리가 개설되고 유행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자연스럽게 쓰는 짤방이라는 단어는 시작이 디지털카메라 사이트라 게시물에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게시물을 삭제하는 대서 짤림 방지를 위해 올리던 사진을 뜻했습니다.
디시 사이트가 커지자 점점 게시물의 양이 많아지고, 많은 유저들은 본인의 글을 더 많이 노출시키고 싶어 더 자극적인 내용을 만들게 됩니다. 가장 반응이 좋은 글은 일간 베스트, 여기서 파생된 사이트가 많은 물의를 일으킨 일베입니다, 가 되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디시는 정말 최소한의 규제 만을 하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심한 욕설, 선정성을 지닌 게시물만 잘라내게 됩니다. 어찌 보면 정말 무질서한,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엄석대가 사라지고 난 후의 교실 풍경처럼 혼돈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보수 세력이 진보 세력에 말하는 것 중에 진보 정권이 잡으면 나라가 혼란하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는 이런 풍경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혼란하기만 할 것 같은 공간은 놀랍게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서로를 신나게 비방하며 상처 받는 공간에 면역이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웬만한 비방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추세가 이어지자 비방이 점점 줄어들고, 오히려 신박한 비방을 하는 경우에 칭찬을 하며 놀게 되었고, 무작정 비방을 할 경우에 너무 상투적이라고 오히려 비난을 듣게 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본인들이 찌질함을 인정하며 나름 혼란 속에 안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물에 잉크를 넣으면 무질서하게 퍼지다 균일하게 안정화되는 것처럼, 필요한 부분의 최소한의 규제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창의적인 글들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웬만한 글로는 눈에 띄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이기 때문에 상당히 공을 들였거나 번뜩이는 글들이 생기면서 많은 유행어를 만들고, 사이트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좀 점잖은 어른들이 보면 눈살을 찌푸릴 만한 디시인사이드를 보며 그런 무질서한 사이트가 내는 엄청난 잉여력과 창의력에 감탄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문제가 많은 인터넷 문화지만 무작정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집단에 의해 여론을 만들기 위한 조작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여론이 말도 안 되게 왜곡되는 사회적인 문제가 있음은 물론, 이러한 문화 속에서는 개개인의 놀라운 창의력 역시 발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단지 인터넷은 정치적인 싸움만 이루어지는 장점 없이 문제만 많은 공간이 될 것이며, 특정 정치 세력을 밀어주는 언론과 다를 바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