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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Jun 02. 2024

개 식용 금지법, 왜?

너, T발 C야?

아마도 내 세대 사람들은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워낙 옛날 배우라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이었지만 말입니다. 분이 갑자기 한국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를 먹는다고 해서 야만인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분노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다 보니 개 식용 금지법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 같고, 사람들도 아주 크게 반발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견 인구도 많이 늘었고, 강아지를 가족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아지를 키웠었고,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고, 보낸 이후 새로운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좋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부족한 단백질을 채우기 위해, 80~90년대 까지는 독특한 맛과 보양식으로의 용도로 개고기를 소비했지만, 이제 충분히 맛있고 몸에 좋은 먹거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견 인구가 급증하면서 굳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전환되면서 개고기를 파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러다 차차 소멸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개 식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것, 또는 찬성을 하는 시위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를 갑자기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개고기 금지 법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 반대를 할 것입니다.




영향력이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은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유명인, 샐럽이 이런 의견을 낼 경우 갖가지 갑론을박이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그중에는 분명 "강아지가 불쌍하지도 않나, 야만인!"이라는 브리지드 바르도와 비슷한 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이런 의견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가축들은 안 불쌍한지? 이로 인해 타격을 받은 개 식용 업자들은 불쌍하지 않은지?" 등 많은 반대 논리가 있을 수 있으나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논리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 문제입니다. 강아지의 불쌍함에는 공감하면서 사람을 야만인 취급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상태에서 대등한 토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입법의 영역에 감성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단지 감성적인 이유로 결정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인간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가장 인간답지 않게 만드는 요소 역시 공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대익 교수님의 책 '공감의 반경'에는 이런 세태에 대한 분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감은 자신과 가까울수록 커지기 마련입니다. 개 식용 금지법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 가장 큰 요인은 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의 반경 안에 들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공감의 반경을 늘리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으며, 사람들마다 다른 공감의 반경은 서로 충돌을 자아냅니다. 때문에 공감을 바탕으로 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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