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관찰하면 모든 것이 놀랍다. 하지만 아마도 육체적으로는 첫걸음마를 하는 순간, 정신적으로는 문장으로 말을 하는 순간이 가장 놀랍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말은 “엄마”, “아빠”, “맘마”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정도라 정말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분명 말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첫 발을 떼는 순간은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에 일어나서 보지는 못해 아쉽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봐온 입장에서 듣기만 해도 감동이 몰려온다.
빨고 싸는 것밖에 못하는 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을 전후로 해서 보통 걷는다고 한다. 차근차근 하나씩 익혀가는 과정에서 아기는 수도 없는 반복 하며 새로운 동작을 시도한다. 뒤집기 시작하고는 등만 대면 뒤집기 시작하였고, 다시 되집기가 가능해지니 떼굴떼굴 거의 굴러다닌다. 앉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본인도 모르게 누워있다 앉아 잠을 깨게 되는 경우도 있고,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기 시작한 후로는 계속해서 잡고 옆으로 걷는다. 너무 피곤해서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서 주저앉을 때까지 걷다가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면 그 집념이 느껴진다. 그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로 말이다.
앉기를 반복할 때 가끔 잡고 서게 시켜보면 발꿈치를 바닥에 잘 못 댄다. 아기를 위에서 잡아서 점프하게 할 수 있는 졸리 점프를 몇 달 빌려서 썼는데, 처음에는 무서워서 제대로 쓰지를 못하고, 아무리 해도 발꿈치를 바닥에 붙이지 못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이 녀석은 얼마 안 가 자연스럽게 발꿈치를 바닥에 대고 서기 시작했고, 쉴 새 없이 벽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잡는 기술도 느는데, 처음에는 정말 잡을 수 있는 것만 잡고 섰지만, 나중에는 냉장고나 벽 같이 매끄러운 표면을 잡고도 그냥 일어선다.
사실 아기가 걷기 한참 전부터 아기는 혼자 설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무언가를 잡고 일어선채로 장난감에 집중하여 두 손으로 장난감을 잡고 있을 때가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두 손을 떼고 일어서있는 녀석에게 놀라움을 표시하면, 그제야 본인의 손이 떨어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주저앉는다. “야, 너 안 잡고 서있을 수 있으면서 왜 못하는 척해?”라고 하며 다시 일으켜 세워 손을 떼려 하면 바로 주저앉는다. 이미 서 있을 능력은 있지만 두뇌가 인지하는 순간 중단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못할 것 같은 일을 할 때 미리 포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서울만하다.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손을 떼고 연약한(?) 두 다리로 서는 건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이 아닐까?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두 다리로 한 발을 내딛는 일은 정말 위대하다. 최조로 달착륙을 한 사람인 닐 암스트롱의 한 발이 대단하다고 해도, 수많은 연구자들의 피와 땀 위에 이루어진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혼자서 스스로 일 년 내외의 수련 끝에 이루어낸 일이지 않는가.
이족 보행이 가능한 로봇은 정말 최근에 이루어졌다. 내 기억으로는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보여준 충격적인 이족 보행이 거의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울산 다이내믹스가 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금도 놀라운 퍼포먼스를 가끔씩 보여주곤 한다. 과학이 생기고, 기계가 고도화된 지가 꽤 된 상황에서도 이족보행을 실행시키는 건 정말로 어렵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걷는 모습을 생각하면 대부분 한 발로 서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발로 서서 다른 다리를 스윙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울퉁불퉁한 바닥상태에 대해서도 알아서 잘 대처한다. 갑자기 멈춘다고 넘어지지도 않는다. 이 어려운 이복 보행 로봇을 만들어낸 기술의 발전도 놀랍지만, 수백만 년 전부터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이를 달성하는 인간도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