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해야 한다
오래전에 읽은 책은 사실 기억이 거의 안 나지만, 한두 장면 정도가 강력하게 뇌리에 박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첫 부분이 기억나는 책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으로 추정되는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이 있고, 톰 소오여의 모험의 페인트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 톰은 말썽을 피운 죄로 주말에 담장에 페인트칠을 하는 벌을 받았다. 너무나도 페인트칠이 하기 싫은 톰은 꾀를 내어 친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페인트칠에 집중하고 있는 척을 했다. 친구들은 지나가면서 벌을 받고 있는 톰을 놀리려 했지만, 톰은 짐짓 즐거운 얼굴로 자신이 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설명하며,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친구들은 이내 마음이 끌려서 해보고 싶어 하였고, 톰은 빗발치는 요구에 돈을 받으며 일을 넘겨주었다.
대충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아기에게도 말이다.
아기는 본인에게 맞게 잘 만들어진 장난감보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별 볼일 없는 물건에 더 관심을 가진다. 기능을 쓸 줄도 모르는 핸드폰을 뺏으려 하고, 페트병만 보면 달려간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물티슈를 뽑으려고 호시탐탐 노려 내린다. 사실 이것들을 가지고 딱히 하는 건 없다. 한 5분쯤 가지고 있으면 이내 관심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기는 계속해서 어른의 물건을 노린다. 바닥에 돌돌이로 청소를 하고 있으면 달려와서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어른이 일을 하고 있으면 그것을 놀이로 인식해서 하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놀이와 일의 차이는 자발적이냐, 타의에 의에 하는 것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전혀 다르지 않다. 그 단순한 차이가 사람을 즐겁게도, 힘들게도 만든다. 가끔 회사 일에 중독된 듯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사실상 일을 놀이로 인식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톰 소오여의 모험 내용 대부분은 말썽쟁이 톰이 모험을 한다. 모험. 요즘 좀 잊힌 단어가 아닌가 싶다. 특히 취직을 하고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이룬 나에게 모험은 꽤나 멀어진 단어가 되었다. 톰 소오여의 모험이 세계 명작 안에 들어가는 이유는 그 모험이 성장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지나쳐 보이지만, 여러 가지 꾀를 내어 말썽을 수습하고, 큰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아기는 정말 말을 안 듣는다. 인간은 애초에 반항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라는 대로 잘하지 않는다. 청개구리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먹기 싫어하는 것도 어른이 먹는 것을 보면 먹고 싶어 한다. 톰이 페인트칠을 하며 낸 꾀는 아기에게 분명하게 적용된다. 생각해 보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모험이다. 사실 아기는 하루하루 모험을 하고 있다. 집 안에 전에 안 가본, 위험해 보이는 지역에 낑낑대며 들어가고, 못 올라가던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기 시작한다. 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분명하게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런 아기가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고, 실제로 상처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 모험을 못하게 하면 성장을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과잉보호가 안된다고 하는 것 같다. 불안해도 스스로 극복하고 해봐야 한다. 성장하려는 아기의 의지를 꺾으면 안 될 것 같다.
사실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는 예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요즘 과잉보호가 더 심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냥 우리나라가 더 잘살아져서 그런 듯싶다. 내가 어릴 때 역시 과잉보호는 문제였고, 부모는 생활 수준에 맞추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아이를 보호하려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 심한 배려는 통제가 되고, 성장을 막는다. 불안해도 어느 정도 놔줘야 한다.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지켜보고 받쳐줘야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능력이 뛰어난 리더가 있는 팀의 팀원들이 성장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면 훨씬 더 잘하고, 팀원에게 맡기면 성에 영 차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팀원일 때는 군계일학같이 능력을 발휘하지만, 팀의 리더가 되면 힘들어진다. 좀 놓고, 지켜보면서 뒤를 든든하게 지켜줘야 한다. 좋은 부모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