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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Dec 07. 2024

탄핵

일상으로의 초대

사실 저는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탄핵 요건이 되는 것인지는 제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기에 알 수 없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탄핵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심적으로는 충분히 요건이 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탄핵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두 번째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잘못된 선택을 이미 한 번 했고,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지도자를 뽑은 시민에게 책임이 있었고, 시민들은 이에 책임지려는 듯 적극적인 행동으로 탄핵을 지지하여 유혈 사태 없이 탄핵을 이루어 냈습니다. 지불한 대가는 많았지만, 높은 시민 의식에 의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볼 수 있고, 한 편으로 통수권자에 대해 더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뜻깊은 사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탄핵을 당할 만한 대통령을 뽑았다는 것은 더 큰 시민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선거운동 기간의 행보로 충분히 그럴만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속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뚜렷하게 본인의 소신을 보여주었고, 당선이 되자 소신 그대로 행동을 했습니다. 그가 당선되었을 때, 이제 탄핵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아무리 이상하고 해가 되더라도 이제는 선택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잘못된 선택을 한 시민들이 책임을 지는 방법은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버텨보는 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별 정치 사안에 그다지 관심도 없던 터라 그냥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계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 정도까지는 정말 조금도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제가, 술 마시다 소식을 듣고 도저히 생각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점이 너무 생뚱맞았습니다. 최소한 가짜 간첩이라도 한 명 잡아놓고 계엄을 선포했다면 이해했을 텐데, 이렇게 전조 없이 계엄이 선포된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저는 상황을 보면 놀라기보다는 이해를 하는 편입니다. 개별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잘 가지지는 않지만, 가끔 관심 있는 내용은 주변 정황을 살펴보다 보면 그 정치인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정황을 납득할 뿐이지,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의 행동을 이해 못 한 채 욕만 하고, 바보라고 조롱하는 건, 정작 제대로 정치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정치인은 저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여러 복잡한 관계에 따라 그런 결론을 낸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계엄은 정말 너무 밑도 끝도 없어서 한참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보다 보니 계엄은 나름 많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 한 국회의원이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말도 안 된다고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제가 그 얘기를 들었어도 비난했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난 계엄을 보고 그의 허술함을 조롱하며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바보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그리 대충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빨리 모여 표결을 끝내지 못했다면, 군사 통제가 조금 더 잘되었다면, 한 병사가 흥분해서 총을 쏘았다면 어지러운 형국이 나왔을 것입니다. 단 하나의 기폭제만 나와줬어도 갈라치기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휘둘려 파를 나눠 싸우고 이로 인해 성공적인 계엄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1세기에 그건 안 맞다고 말하지만, 수천 년 전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로만 보던 무서운 시대가 한순간에 올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정치 관련 기사와 댓글을 좀 보았습니다. 보면서 참 안타까운 것이, 지난 선거 때 그를 많이 뽑았다는 20대를 2찍, 2찍 거리며 조롱하는 내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실 두 번째 탄핵은 시민들의 더 큰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오히려 20대는 잘못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실상 이번이 첫 번째이고, 그전 정권이 가장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사실여부야 어쨌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강한 정의감에 조그만 불의를 보이는 정치인을 욕하곤 했으니, 그들이 제대로 경험한 첫 번째 정권인 전 정권을 극혐하고 비난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오히려 여러 사태를 겪고, 많은 교훈을 얻었음에도 그를 찍은 수많은 다른 연령대 사람들이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부겠지만, 너무도 심한 인지부조화를 겪는 20대들이 보여서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이재명을 뽑으라는 말이냐."라는 식으로 악마화된 이재명과 그전 정권을 탓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고, 이재명에 대해 호불호가 없는 편입니다. 공격받는 지점들을 자세히 알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악마화될 정도인가 하는 의심은 듭니다. 특히 대선 전의 그와 비교하면 답은 너무 뻔했습니다. 단지 너무 나이브하여 몰아가기에 당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주장하고 다른 말을 듣지 않는 건, 어쩌면 그들이 극혐 하는 소위 가스통 할배들과 닮아 있습니다.


소위 애국 보수라 칭하는 사람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인지부조화를 여러 번 겪으면서 아집이 농축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저는 극우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해서 애국하는 마음으로 나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누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이런 사태가 와도 힘들 뿐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이상 나이가 들면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그렇게 잘못하지도 않았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사람들은 더 나이 먹은 어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나이를 먹으며 부끄러운 어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들이 듣는다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귀를 열고 대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끌어들이며 발악하듯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생각해 보고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대화를 했으면 합니다. 지금 말이 통하지 않는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과연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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