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필명에서도 드러나듯이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렇게 가난하지도, 아주 부자도 아닌 집에서 태어나서 평범하게 자라서 대학을 들어갔고, 현재는 직장에 들어가 10년이 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약간 뒤처지기도, 앞서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평범하게 삶을 산 것 같고, 이러한 평범함은 저에게 공기처럼 당연했습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죠.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세포 분열을 하며 뭐가 생기고 어쩌고 하다가 아이가 성장하고 출산을 하게 되는 걸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당시에는 당연하겠거니 하고 시험에 나올지 말지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거의 생명이 생기자마자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난다는 것을 직접 듣고 알게 되니 그 신비를 조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내 몸에서 뛰는 심장은 거의 생겨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뛴다는 생각을 하니 대단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네요. 심장이 쉬지 않고 뛴다는 것은 몰랐던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검사가 매우 많습니다. 아마도 제가 태어날 때 이렇게 많은 검사를 하지는 않았겠죠. 아이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정밀해진 검사로 안심이 되면서도 더 정밀해진 걱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미 잘 갖추어진 통계자료를 통해 내 아이의 머리 크기가 며칠 더 빠르고, 다리 길이가 며칠 더 빠르게 크고 있는지를 병원에 갈 때마다 알 수가 있다 보니, 벌써부터 혹여나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왕이면 머리가 작고, 그럼에도 머리가 좋았으면 좋겠고 다리는 길었으면 좋겠다는 과도한 바람이 머리를 스쳐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혹여나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큽니다.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런 부모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걱정이 됩니다. 물론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도 똑같은 귀한 생명이지만, 이 사회에서 키우는 어려움, 아이가 받을 괴로움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힘들것을알기에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하지만, 절대 내 아이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모순된 부모의 마음인 듯싶습니다. 아이에게 벌써부터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마음도 있지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닌 간절한 바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문득 평범하게 살아온 제 인생이 참 어려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이상 없는 몸으로 태어나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크게 사고 치지 않는 평범한 중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대학을 즐기다 군대를 다녀오고, 남들보다 약간 늦게 졸업을 하면서 취직을 하고 돈을 열심히 벌어 와이프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것. 하나하나 전부 평범하지만, 아이가 이 과정을 겪을 것을 생각하니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람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뛰는 심장이 멈추지나 않을까 걱정이었고, 이후에는 손가락, 발가락이 10개가 아닐까 봐 걱정을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남들보다 작을까 봐 걱정이 되었고, 잘생기고 똑똑했으면 하는 바람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바람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 바람은 더욱 커질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과의 괴리로 갈등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신비로운 존재는 일상 속에 스며들어 점점 감흥 없는 하루를 이어가게 되겠지요. 벌써부터 그런 일상을 그리기에는 당장 앞으로 닥친 육아가 걱정이지만 말입니다.
아주 오래전 입자 10억 개 중 한 개의 비율로 반입자를만나지 못해 사라지지 않게 됨으로써 우주의 물질이 만들어지고, 뭉쳐져서 별이 만들어졌다가 생명을 다해 초신성 폭발을 하게 되면서 복잡한 원자들이 만들어졌으며, 별의 잔해로 인해 태양계와 지구가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화학 작용에 따라 생명이 탄생하여 진화하여 인간이라는 종이 대를 이어가는 와중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상상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내 아들로 태어난 우주가 이 글을 언젠가는 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