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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살 일기 11화

파견을 앞두고

찬란하게 반짝이던 눈동자여

by 평범한 직장인

이놈의 직종은 갑자기 해외 파견을 가서 몇 년을 있곤 한다. 그리고 지금,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파견을 곧 간다 하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애도 아직 어린데, 회사가 너무 하네." 하지만 사실 우리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일이긴 하다. 주변 회사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참 웃프다. 출산 때 잠시 휴가를 나왔다 현장으로 복귀하는 경우도 많고, 돌잔치를 못 보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비행기가 뜨지 않아 출산 후 거의 일 년간 휴가를 못 나간 친구가 바로 옆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파견 중에 결혼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한 친구는 2주간의 휴가 동안 아들과 재미있게 놀고 복귀하려니까 아기는 우리 집에 또 놀러 오라고 했다더라. 오랜 파견 동안 못 돌봐왔던 딸이 아빠한테 화가 나면 다시 이라크로 가버리라고 해서 상처를 받았다고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회사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고 휴가 기간이 4개월 이후 2주에서 3개월 내에 2주로 바뀌었고, 과거에는 휴가를 눈치를 보며 갔는데 이제는 의무가 되었다. 때문에 11주 근무 후 2주 휴가를 갈 수 있다. 최근에는 파견을 안 가려고 갖가지 방법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회사에서 골머리를 앓더니 오랜 기간 파견을 안 다녀온 순으로 번호를 매겨 우선순위로 파견을 보내는 방안이 나왔다. 이미 장기간 파견을 여러 차례 다녀온 나는 순번이 뒤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결국 파견을 가는 것으로 결정되어 버렸다.




이번 파견은 참 거절하고 싶었다. 원래 나는 그동안 파견을 거절해 본 경우가 없었다. 거절하여도 싶은 이유는 너무 뻔하다. 아기의 성장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오히려 파견을 가면 내 시간이 많아지고 여유가 생긴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은 회사가 편할 정도로 퇴근 후에는 거의 쉬지 못하고 육아에만 매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계산해 보면 금전 적으로도, 나의 안식을 위해서도 파견이 훨씬 좋음에도 가기 싫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녀석은 참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파견을 가면 나보다도 와이프가 더 고생을 하게 된다. 어린이집을 보낸다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는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같은 직장을 다니는 터라 이해는 해준다. 나 역시 가고 싶어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러고 보면 참 사람 일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많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와이프가 육아 휴직을 할 때 상식으로는 일을 하지 않는 와이프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맞아 보였지만, 막상 내가 하루만 혼자 아기를 봐도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옛날 남자들은 육아를 거의 안 했으니 여자가 집안일하며 힘들다 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만약 와이프가 나와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이렇게 파견과 출장이 잦은 경우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경험을 해보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심지어 악마화하는 것은 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11주 후의 아기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난번 1주일 출장 후에 잠시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아마도 눈에 띄게 성장한 이 녀석이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자주 보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이 일기는 계속 쓰고 싶다. 어차피 쓰고 바로 발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 전에 써둔 내용을 발간하기도 하니, 휴가 전까지 5~6개의 에피소드 정도만 적립해 두면 되고, 휴가 기간 동안에 더 많은 시간 아이를 보며 관찰할 수 있을 테니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뭐, 안되면 마는 거고 말이다. 하지만 파견 생활 동안에도 아이 생각은 계속할 것이고 그 마음을 기록해 둔다면 오랜만에 봐서 불쑥 성장한 아기가 더 반갑게 느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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