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의 비책

by 평범한 직장인

휴가 2주간 아기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엄마, 아빠, 애기였다. 아기는 끊임없이 주변에 있는 사물, 동물을 엄마, 아빠 애기에 대치시키며 말한다. 큰 물건을 보면 엄마라 하고 더 큰 물건을 찾는다. 더 큰 물건을 가리키며 아빠라 하고 이번에는 작은 걸 찾는다. 작은 걸 찾고 가리키다 본인의 가슴에 손을 대며 애기라 한다. 이렇게 아기는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크기에 대한 지식을 뽐내고 있었다.




크기 구별은 완전하게 하고 있고, 말만 잘 못한다 뿐이지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기도 하고 있다. 인지 능력도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이 질문을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어떤 아기라도 거쳐야 하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바로 이거다.


아기는 생각보다 길게 고민을 하더니 엄마라고 답한다. 뭐, 좋다. 예상한 일이었다. 휴가를 나오자마자 일주일 동안 엄마를 버리고 아빠껌딱지로 있었던 첫 번째 휴가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처음부터 엄마에게 안기려고 하는 걸로 봐서 그럴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좋다"라는 가치판단을 이해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여기까지는 말이다.




"그럼 아빠가 좋아? 재희가 좋아?"

기습 질문에 아기는 조금 당황하는 듯하다. 재희는 어린이집에서 아기와 잘 노는 여자아이다. 귀엽게도 재희 얘기를 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돈다. 기침과 사랑은 숨기지 못한다고 하는데 아기의 표정에 마음이 드러나는 건 너무 당연하다. 딸 아빠였다면 눈에서 불꽃이 튀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들 아빠라서 그런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아빠라 대답해야 하는 이 녀석이 한참을 고민을 하는 것이다. 속으로 '요놈 봐라.'라고 생각하면서 재차 대답을 재촉했더니, "엄마"라고 하면서 킥킥거리는 것이었다. 아주 현명한 회피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후 모든 애매한 대답에는 엄마를 외쳤다. 그리고 본인도 본인의 답이 마음에 드는지 한참을 웃어댄다.




대답은 놀라웠지만, 이거 좀 충격이다. 아빠는 엄마는 물론 재희, 선생님, 심지어 할머니보다 덜 좋은 존재인가 보다. 사실 이럴 거 같아서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가 최고란다."라고 주입식 교육을 시켰지만 모두 무용지물이다. 결국 엄마를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이때 생각했다. 다음 휴가 때는 엄마가 절대로 주지 않는 맛있는 음식을 처음 경험 시켜주겠다고 말이다. 다음번엔 요 녀석의 마음을 좀 더 사로잡아 봐야겠다. 기대해라, 애기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