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져버릴까봐 뚜껑을 열기조차 두려운 지나치게 발효된 막걸리병을 여는 일
딱 한 줄만, 써보자.
나이가 들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은 모른 척 해왔던 불편한 것들과 대면하는 일이 돼 버렸다. 몰랐던 주름을 발견하거나, 늘어난 흰 머리를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수심을 가득 안은, 누가 봐도 이젠 너무나 중년인 한 여성의 얼굴을 내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아무리 해를 거듭해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해결책은, 거울을 들여다볼 일을 최대한 피하는 거였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짧고 무책임하게 들리지만, 사실, 너무나도 과학적인 명제다. 인간이 가진 인지능력과 자원의 한계를 감안했을 때, 처리할 수 있는 정보만 처리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현명하고 효율적인 정보 처리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편함을 대면하지 않고 무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현명하고 효율적인 루트를 택했다.
오랜 시간 글쓰기를 하지 않고, 이곳에 발길을 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지난 시간 동안,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큰 이유지만, 사실 글쓰기를 통해 그동안 모른척하고 묻어왔던 내 안의, 내 주변의 불편한 것들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숱한 인고의 시간들을 거치면서, 내가 택한 방법은, 기록을 남기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진 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었다. 가급적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처럼. 공기중으로 흩어져 휘발되어 버릴 말들만 배설하듯 쏟아내 버리고는 곧장 쓰레기통을 비워버리듯,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았다.
그런데 문득, 이제 더는 피할 곳이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지점에 다달았다. 사방이 거울인 방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것 같은, 피하고 싶어도 더는 피할 재간이 없을 것 같은 막막한 상태. 나는 지금 너무도 무력하게, 그런 거울의 방에 놓여 있다. 오랜 시간 피해온 탓에 어디서부터 들여다봐야할지 도무지 엄두도 나지 않지만, 그렇게 이곳에 떠밀려 왔다. 아무래도 다시 무언가를 써내려가야 할 때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