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관대한 마음은 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옵니다.
저는 헬스장을 참 좋아합니다.
아침 6시면 헬스장에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헬스장에서는 주로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신문도 봅니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땀 흘리며 운동도 하고 신문도 보면,
하루를 뜻깊게 시작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사우나까지 하면 기분이 더 좋습니다.
얼굴까지 뽀송뽀송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분 좋은 시간도 잠시..
저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을 마주치곤 합니다.
바로 헤어드라이기 앞입니다.
헤어드라이기 앞에는 “헤어드라이기는 머리만!! 제발 머리 이외에 다른 부위는 사용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샤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나이가 지긋하신 한 어르신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김정운 교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헤어드라이기로 애먼 곳을 열심히 말립니다.
그분 뒤에서 헤어드라이기 사용을 기다릴 때에는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머리 말릴까?’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말리시는 분은 애교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지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음에 만나면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신문의 한 칼럼을 읽게 되었고,
그 칼럼을 통해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 (이은혜의 마음 읽기 _ 중앙일보)‘
그 어르신에게 “헤어드라이기는 머리만 말리셔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카운터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그럼 그 어르신은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만 말릴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어르신에게 말해서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만 말린다 하여
저의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르신을 헬스장이나 사우나에서 마주칠 때마다 불필요한 감정소모가 발생할 것이고,
어르신이 많은 아파트 커뮤니티의 특성상 저는 ‘나이도 어린 건방진 사람’이 되어 있을 확률이 클 테니깐 말이지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어르신의 행동을 바꾸려 하지 말고,
저의 생각을 바꾸자고 말입니다.
이제는 그 어르신이 애먼곳을 말리던,
다른 분이 발가락을 말리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헤어드라이기로 제 머리를 말릴 때 무언가 모를 찝찝함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괜한 감정싸움이 되어서 제가 마음 편히 헬스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타인에게 관대한 생각을 가지니,
저의 마음도 보다 편안해졌습니다.
올해 봄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흡연하던 4층 아저씨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감정을 빼고 가볍게 말하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하나씩 비워가며, 제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우나 헤어드라이기로는 머리만 말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