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
KTX를 타고 출장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승무원이 어떤 어른분께 승차권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그 어른은 종이에 적힌 좌석번호를 보여주었습니다.
승무원이 말했습니다.
“종이에 적힌 좌석 번호 만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자리도 아니에요.”
승무원의 안내를 들은 어른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제 곧 광명역에서 친구들이 탑승해요. 여기가 다 우리 자리예요.”
저는 슬슬 그 대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일행이 예약한 본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될 텐데, 왜 아직 타지도 앉은 일행 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잠시 후 기차가 광명역에 도착하자,
몇 명의 친구분들이 기차에 탑승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느라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할까?
라고 생각하며 신문을 읽고 있는데,
마치 저에게 들려주는 듯한 신문 칼럼이 있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583
퇴근길 지하철은 혼잡합니다.
다들 지치고 피곤하지요.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지하철로 계속 밀려들고,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안쪽으로 계속 밀려납니다.
그러다 보면 들리는 차갑고 큰 목소리.
"밀지 마세요!"
"제가 민 거 아니에요! 저도 밀리는 거예요!"
"아! 짜증 나!"
사람을 밀면 안 되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밀려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사람은 내 공간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밀면 안된다.'라는 규율로 상대방의 행동을 나쁘게 평가하면 어떻게 될까요?
없었던 공간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들 비좁게 가고 있는데, 나만 넓게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위의 칼럼을 읽으며, 지난 저의 행동들도 되돌아봅니다.
매너 또는 에티켓이라는 이름하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평가한 것은 아닌지 말이지요.
그리고 저 또한 누군가에게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봅니다.
위 칼럼을 읽고 KTX에 탄 어른들을 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반갑게 정을 나누는 모습이 되려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계속 목소리 높여 떠드신 것도 아니었고,
그 반가운 분위기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칼럼을 읽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저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관대해지니, 저의 스트레스도 상당 부분 없어졌습니다.
되려 제가 편안한 마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타인에게 관대하면,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