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랬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건에 대하여
작년 5월부터, 제대로 된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매일을 바쁘게 살았다. 시간도 30분마다 기록하고, 매일과 매주 피드백하고, 자소서도 일주일에 3개씩 내고, 계속 피드백받고, 면접도 가고, 중소기업 컨설팅 회사 최종 합격도 받아보고. 근데 첫 직장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 시작하고 싶었고, 이런 식으로 대기업에 내보지도 않고 중소에 들어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10월부터는 3달동안 대기업만 냈다.
다 떨어졌지만 괜찮았다. "한 곳만 걸려라" 하는 심정이었다.
정말 한 곳이 걸렸다. 월척이었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1위에 독점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졌고, 앞으로도 미래가 유망한 산업이며, 최근 대기업의 자회사로 들어가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 서류 합격 이후 인성검사에도 합격했고, 면접은 한 번만 붙으면 되는 거였다. 정말 붙고 싶은 마음에, 해당 회사에서 운영하는 오픈채팅방에서 한 지원자가 면접 스터디를 모집하기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함께 3번 정도 만나서 면접을 준비했다.
스터디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가장 절박하다는 거였다. 한 곳 넣었을 뿐인데 바로 붙은 분도 있었고,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붙었거나, 서울대 석사라서 갈 곳이 많은 분도 있었다. 제일 절박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제일 가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속상하기도 했지만, 절박한 만큼 분명히 붙을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준비했다. 자료도 가장 좋은 자료를 찾아갔고, 툭 치면 툭 나올 정도로 달달 외웠다. 자연스럽게 말하는 면접 스킬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내용에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경험이, 이 한 번의 면접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난 경험들에서 피드백하고 배웠던 모든 것을 적용했고, 150%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했다.
면접 이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불합격이었다.
슬프기는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도리어 슬픔과 괴로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걸 감당할 수 없어서,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후 일주일동안 슬픔은 분절적으로 왔다. 그 모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달래려 최대한 애를 썼던 기억만 있다. "나중에, 그때 거기 못가서 다행이다, 라고 말할 날이 오겠지, 정말로?"하고 절망적으로 울거나.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대기업 올인 전략을 바꾸라는 신호에 불과한거 아닐까?"하고 조금 나아졌다가. "나한테 왜이래, 정말? 내가 뭘 그렇게 부족했어? 뭘 그렇게 잘못했어?"하고 울다가, "근데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지는 않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지.."하고 씁쓸하게 웃었다가.
그러던 중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회가 생겼다. 언니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팀장님이 계셔서, 이력서를 넣어볼 수 있을 거라는 것. 직무는 현재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유망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관련 실력이 하나도 없어 엄청난 고생이 예약되어 있고, 하지만 분명히 HR보다는 커리어 쌓기 좋을 거라는 일.
가장 고민되는 건 내가 HR로 직접 일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나와 맞을지 괜찮을지 모르고, 사실 내가 이상한 환상만 잔뜩 가지고있을지도 모르는 일. 직무를 이렇게 (상대적으로) 쉽게 바꿔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길로? 이렇게 갑자기? 그래도 되나? 어떡하지?
애초에 내가 HR을 왜 하고 싶었을까? 원래는 HRD를 하고 싶었다. 나는 원래도 내가 속한 구성원을 도와서 역량을 성장시키는 일을 좋아하고 뿌듯해했고, 사기업에 취직하려고 보니 그게 HRD였다. 그런데 HRD는 신입으로 취직하기가 훨씬 어려워서 HR을 생각했고, 괜찮아 보였다. 조직구성원이 일에 더 몰입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에 관여하는 일. 그래서 OKR이나 성과관리제도, 리더십 교육이나 코칭에 관심이 생겼었다.
물론 그게 어느 부분은 가능하고 어느 부분은 안되겠지만, 생각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냉정한 세계라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런 꿈이 생겨서 HR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나도 안다. 그게 허황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흔들린다. 취업도 잘 안되고, 내 꿈은 허황된 것 같고, 그러면 당장 온 이 기회를 잡는게 낫지 않나. 꿈을 좇는 건 배가 불러서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소리를 스스로에게 하는 건 너무 괴롭다. 당초 꿈꾸던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이미 박살이 났고, 인사담당자 자체에 대한 꿈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추진력과 자기 확신이 삶의 원동력인 나에게, 방향성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종범 작가의 버스킹 영상을 봤다.
슬픔이 분절적으로 왔다는 건, 내가 내 생각보다도 더 슬픈데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일주일도 안됐는데 생각보다 빨리 괜찮아졌네, 나 조금 더 강해졌구나 생각했다. 빨리 극복하고 싶기도 했다.
그랬는데, 아니었다. 트라우마를 겪고 극복하려고 분투하며 스스로 상처내는 이종범 작가에게, 정신과 의사가 그랬다고 한다. "누가 그렇게 정면승부 하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자신 말고는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보자마자 속에서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나도 그랬다. 주변에선 다 힘들면 좀 쉬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3일이면 극복하고 이제 해야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3일도 마냥 놀았던 건 아니었는데. 불합격 결정이 나고 나서, 그동안 미뤄뒀던 할 일들을 차곡차곡 했는데. 나 그동안 안놀았는데. 나는 이제 그만하면 충분히 놀았으니까, 이제 자소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정도 빠르게 하고. 이제 더이상 흔들리지 말고. 흔들리긴 왜 흔들려? 자기 확신도 없는 놈. 나약한 놈.
이종범 작가는, "도망쳐도 돼, 라고 주변에서 아무도 말 안해줄거에요.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일주일만에 조금 내려놓고 편하게 엉엉 울었다. 도망쳐도 된다고, 진심으로 내가 나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나. 도망칠 바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했지. 그건 그 상황을 넘겨내고 극복할 수는 있는 방법이었지만, 속상하고 힘들었던 나를 진짜 달래고 위로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직무를 바꿀지 말지 마음 속에서 결정이 안나니, 힘이 자꾸 쭉쭉 빠진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동아리 업무, 자소서, 책읽기 등 전부 HR과 관련된 일인데. 직무를 바꾸게 되면, 그건 무용지물이 되잖아. 그러니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무를 바꾸지 않게 되면, 이 시간은 낭비가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여기서 도망쳐봤자,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인데. 어디로 도망쳐? 내 마음이 감옥인데.
사실 아직 결론은 안났다. 최종 합격에 실패했고, 고통스럽고, 직무 변경의 기회가 왔는데, 나는 이 고민하는 시기를 제일 괴로워하는 인간이고, 그건 꿈을 바꿀지 말지에 대한 문제라, 비전으로부터 일상의 추진력을 얻는 나에게는 그냥 일상적 행동 자체가 어려워지는 일이고, 그래서 시간 낭비하는 것 같고 뭘 잘 못하겠고, 그런 내가 마음에 안들고... 그냥 그런 상태다. 이 매거진의 이름은 호기롭게 '인사 담당자가 되고싶어'라고 지었는데. 다음주부터 다른 직무로 바뀌는거 아냐? 아니면 계속 인사담당자 제목으로 남아있게 될까? 정말 모르겠다. 다음 글을 쓸 때 쯤에는 답을 알게되면 좋겠다.
이후 인사담당자로서의 길을 택하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HR 직무를 준비한 뒤 몇 달 뒤에 스타트업의 HR 담당자로 취업을 완료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추후에 또 글로 올려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