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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벤따 Oct 08. 2020

재채기가 뭐길래

24년 만에 알게 된 비밀

베를린에서 갓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내 실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학원을 두어 달 다니며 기초 문법과 회화를 훑고 왔지만, 어디 두어 달 들여다본 풍월로 의사가 소통되랴.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따라 구텐 모르겐, 구텐 탁, 구텐 아벤트 하기도 벅차서 내 인사는 언제나 유창하게 할로! 할로가 다였다.


같은 반 친구들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프랑스, 폴란드, 그리스, 모로코, 이스라엘 등에서 온 우리가 모국어 없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옹알이뿐이었다. 카드에 적힌 단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중성인지 씨름하며 관사 der, die, das를 남발하고 있노라면 뭉근한 전우애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로의 독일어가 짠하고 딱한 생활을 한 달 여쯤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들이 나의 전우가 맞나 의심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여느 때처럼 귀로는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며, 눈으로는 공책을 보고, 손으로 필기를 하던 그 순간에 하필 선생님의 음성이 멈췄고 나는 고작 왼손으로 코를 긁으며 선생님을 쳐다봤다. 이윽고 선생님은 시원하게 재채기를 했고, 재채기가 끝나기 무섭게 모두는 외쳤다.


"Gesundheit! [게준ㄷ하이ㅌ]!"


아무렇지 않게 "Danke!" 하고는 수업을 계속하는 선생님의 모습까지도 나에게는 무척 이질적이었다. 더불어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묘한 배신감이 들었는데, 독일어는 나만큼 하면서 어떻게 나 빼고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원어민스러운 합창을 하냐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Bless you'라고 하는 것처럼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하는 인사말 같은 것이 있는 나라가 꽤 많았다.


한국인으로서 겨우 재채기 가지고는 관심은커녕 콧방귀도 안 뀌지만, 동시에 그 모습이 괜스레 상냥해 보였던 나는 그 인사말에 동참하기로 한다. 그로부터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면 너무 늦지 않게 게준드하이트를 외쳤다. 방심하면 때를 놓치기 때문에 마치 찌찌뽕 외칠 때의 반응속도로, 하지만 여유로운 태도로 자연스럽게 외쳐야 하는 것이다.


이만큼 노력을 기울였으면 남이 재채기할 때뿐 아니라 내가 재채기할 때도 뭔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핵심은 누군가가 건넨 다정한 '게준드하이트'에 당황하지 않고 '당케'로 보답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한 번도 고맙다고 인사할 수 없었다. 나에게 '게준드하이트'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는 재채기를 하는 게 외롭고 소외감이 드는 행위가 됐다. 제레미가 아무도 못 듣게 재채기를 했을 때에도 알아채고 'Gesundheit!' 해주는 섬세한 선생님은 이상하게 내가 팔꿈치 안쪽에 얼굴을 파묻고도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한 재채기에는 반응이 없었다. 두 번 연속으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친구와 마트 계산대에 서 있었다. 재채기를 두어 번 했고 친구는 심심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요놈 딱 걸렸다'는 심정으로 물었다.


"너 왜 Gesundheit 안 해?"

"Gesundheit는 재채기할 때만 하는 말이야!"


억울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친구의 말은 다소 뜬금없었으나 대답이 끝나는 순간 우리 둘은 동시에 번뜩이며 뭔가를 깨달았다. 친구는 내가 한 것이 재채기라는 것을, 나는 내 재채기가 기침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말이다.


24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내 재채기 소리의 비밀을 알게 된 나는 혼자서 재채기 다운 재채기를 해보려고도 노력했다. 방에서 혼자 엣-취, 에엣-취이 하다가 문득 '독일어 R 발음'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대신 마음껏 재채기를 쏟아낸 뒤 친구들에게 묻는다.


"방금 그거 재채기게 기침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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