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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벤따 Sep 02. 2019

물 부족 국가, 독일

사람들은 왜 물병을 들고 화장실로 가는가

베를린에 온 지 2주쯤 지나던 때였다.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별안간 목이 말랐다. 주변에는 정수기나 음료 자판기가 없었다. 동네 도서관이 주변 지리를 잘 알았는데, 가장 가까운 마트 걸어서 7분 거리였다. 섣불리 14분을 걷는 수고를 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여기 물 마실 수 있는 데가 있을까?"


한국인 친구 S는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프랑스 친구 J는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화장실'이라고 대답했다. J와 겨우 두어 번 본 사이였던 나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부라리며 'toilet?'하고 되물었다. (미국에서는 toilet은 화장실보다 변기를 뜻하는 말로 쓰지만 영국식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서 toilet은 화장실을 뜻한다.) J는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Yes, toilet!' 하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화장실 가서 대체 무슨 물을 마시라는 거야? 뭔 소리야?'


지진이 났을 때 화장실로 대피하는 게 좋다고 들은 적 있다. 마실 물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화장실 물이라는 것은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실 수 있는 물이 아닌가?


결국 나는 눈 부라리기를 그만두고 7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서 물을 샀다. 물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J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었는데 누군가 물병을 들고 들어왔다. 물병을 헹구는가 싶더니 받은 물을 버리지 않고 병뚜껑을 닫고는 쌩 나가버렸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하마터면 못 알아챌 뻔했다. 다행히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서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 J가 인종 차별한 것이 아니었어!'


부끄럽게도 나는 J가 나를 무시해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 뒤로 깨달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화장실 물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수기가 우리나라처럼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어서(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 먹는 물을 제외하고는 정수된 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세 번째는 그래서 나도 화장실 물을 먹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내 습관과 신념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한동안 목이 말라도 절대 화장실을 찾지 않았다. 너무 목이 마를 때는 물을 사서 마시거나, 참을만하면 참았다. 생각보다 내가 물을 많이 마신다는 것 또한 깨달았을 즈음 나도 물병을 하나 사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을 나서기 전 부엌 싱크대에서 물을 받았다. 하지만 점점 책이 많아지고 가방이 무거워지면서 집에서부터 물을 받아가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필터가 달린 물병을 사서 목이 마를 때마다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마시게 되었다. 화장실에서 물을 떠가는 게 익숙할 즈음부터는 필터조차 필요 없게 되었다.


이젠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물까지 마시고 화장실을 나온다.


아, tmi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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