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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더 잘하고 싶은데, 욕심을 버려야 할까요?



뇌 영양제, 이뇨제, 항생제, 소염제, 위장약. 

이건 또 무슨 조합일까. 

처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몰라서 묻게 된다.


“어떤 일로 진료받으셨어요?”


“손이 떨려서 왔어요. 

파킨슨병일 수 있다고 하시던데… 

혈액검사랑 소변검사도 해봤어요.”


각종 수치가 적혀 있는 검사 결과지를 보여주신다. 

손님들이 보기에 익숙하지 않은 

영어 약자들과 숫자들이 빼곡하다. 


사실 나도 기본 정상 수치를 다 외우고 있지는 못하는데, 

다행히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부분이 굵게 표시되어 있었다. 

암호문 같은 이 표를 

누군가 꼼꼼히 같이 살펴봐 준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지 않을까 싶어 

찬찬히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소리 내 읊어본다.


“크레아틴 수치 낮은 거 말고는 크게 문제는 없으시네요. 

간 수치도 괜찮으시고… 

단백질을 좀 보충해 주시거나 

근육을 더 쓰시면 회복되긴 하는데… 

그런데 손이 떨리셨다고요?”




간혹 어떤 분은 기관지염 약을 드시다가 

부작용으로 손 떨림을 경험하시기도 한다. 

여쭤보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주민등록번호를 보니 아버지뻘의 나이다. 

뇌출혈로 쓰러지시기 전, 

밤에 간혹 떨려오던 아빠의 손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분은 혈압도 별문제 없으시다고 한다.


“우리가 약간 불안감을 느낄 때, 

긴장 반응에 따른 물질 때문에 

간혹 손이 떨리는 경우도 있어요. 

불안을 느낀다는 건,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는데… 

요즘 부담스러운 일이나, 

책임이 무거워졌다거나, 

목표로 한 게 좀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 

혹시 드신 적 없으세요?”


“그런 게 있긴 있어요. 

제가 색소폰 연주를 잘하고 싶은데… 

이게 참 잘 안되더라고요.”


“와! 색소폰을 하세요? 너무 멋있으세요!”




나는 마음을 파악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경험하며, 

이에 대한 실제적인 사례들과 처방을 알고 싶어서 

유튜브 황심소 채널을 챙겨보고 있다. 

마침 황심소 라이브 상담에 나왔던 

색소폰 연주자의 사례가 문득 떠올랐다. 

혹시 비슷한 상황이면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는 뭘 하든 잘하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기왕에 하는 거 잘하고 싶어요. 

그런데 욕심을 버려야 되는 거겠죠?”


“잘하고 싶으신데… 왜 욕심을 버려요?”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나이도 있는데, 그게 원하는 만큼 되겠냐고. 

욕심을 버려야 편해진다고요.”



바라는 것이 손에 닿지 않는 괴로움을 토로할 때,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상황이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다 내려놓으라는 조언을 받게 된다. 


나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현재 나에게 관련 있고 좋은 의미가 있다면, 

추구해서 얻을 수 있다면, 

인생이 더 살맛 날 것이다. 


아마도 버려야 하는 욕심은, 

자기 인생의 목표나 본질과 동떨어진 욕심, 

자신의 마음에 없던 

주변에 의해 자극되거나 휘둘린 욕심 아닐까? 


어떤 게 버려야 할 욕심인지 추구해야 할 욕심인지는, 

나와 관련이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리고 세상이 어떻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것들을 무시한 욕심은 한 때, 

상상하는 달콤함을 줄지 모르겠지만, 

끝끝내 나를 공허하게 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나를 책망하게 한다.


그것을 열망, 욕망, 바람, 꿈, 

뭐라고 표현하든지 간에 

우리는 주어진 삶의 시간을 활용할 권리나 의무가 있다. 


현재 나의 상황과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조각내어, 

작은 목표들로 채워나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 모습에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그 길이 불확실해서 지금 불안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이뤄야 할지 모르니까.”


“맞아요. 좋은 말씀이시네요.”


“잘하고 싶으면, 

어떻게 무엇을 해야 잘할 수 있는지를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루지 못하면 못 하는 대로, 

무기력해지잖아요. 

특히나 선생님처럼 열정적인 분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포기하고 다 내려놓으면 더 힘드실 것 같아 보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뭔가를 알고 있는 척, 말은 간결하게 나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모색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무작정 시간만 많이 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교습하시는 분들도 섣불리 안 알려줘요. 

돈을 내고 상급, 더 상급으로 올라가야 

조금씩 조금씩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줘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물어봐도, 

솔직하게 말을 안 해요.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알기가 참 어렵네요.”


황심소 라이브 상담에 출연하신 색소폰 연주자도 

비슷한 얘기를 하셨다. 

주변 분들은 잘한다고 격려와 지지를 힘껏 해주지만, 

솔직히 어떻게 들리는지 뭐가 문제인지 

지적해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연주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의례적인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비슷한 연주 실력에 머무르며 세월을 보낼 수도 있다. 


물론 주변의 응원이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될 때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벽을 넘을 수가 없나 보다.




“선생님은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어떤 연주를 하고 싶으세요?”


나라고 별수 있나. 

조심스레 주워들은 것을 흉내 내본다. 

이렇게 질문을 던져 놓으면, 

그분께서 나름대로 생각하실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를 해볼 뿐이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톤이요.”


우연일까. 

그 출연자 분과 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라이브 상담에 참여하신 분도 

원하는 톤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셨다고 표현하셨었다. 


어림짐작하건대, 색소폰에서 톤은 

어쩌면 우리가 입고 있는 옷차림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때로 보이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자신의 내면의 동기와 마음을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 

몸을 가졌는지 탐색한 후에, 

보다 더 적절하게 원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이 본질이 아닌, 

현상적인 부분에 관심을 둔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 

마음의 아픔을 보기보다 

몸의 아픔에 더 주목하는 것도 한 예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살펴보기는 어려워한다. 

그래서 손쉽게 병원을 찾고, 

약국에서 약을 받으신다. 


혹시 이것도 마찬가지 상황 아닐까. 

조심스레 말씀을 드려본다.




“어떤 색의 옷을 입을지 보다… 

내 몸이 어떤지 살펴보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시면서 

몸을 먼저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어떤 옷을 걸치더라도 

그게 묻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마침 약 분배기에서 약이 나왔다.


“일단 오늘 약은…”


살짝 민망해진다. 

왜 색소폰 연주를 더 잘하고 싶은 분이 

항생제와 뇌 영양제를 드셔야 하는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몸의 염증반응이 있으실 수도 있다. 

아마 수여대 맞은 편의 그분도 

아리송하게 느끼고 계시지 않을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해보기로 했다.


“환경의 문제와, 생리적인 문제, 

그리고 마음의 문제가 있다고 할 때, 

병원은 주로 생리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곳이에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오늘 이 약을 드리게 되는데요.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마음을 중심에 두고… 

환경은 선생님께서 연습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어떤 자극을 어떻게 받고 계시는지, 

직접 파악해보셔야 할 거예요. 

몸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이 

표현되는 상황으로 이해하셔도 돼요. 

중요한 건, 

선생님께서 지금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에 있어서 

도약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시다는 것 같아요.”




내가 이해하는 상황은 이렇다. 

근대와 현대로 접어들면서 

각 분야가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었다. 

각각은 나름 효율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단절되는 부분들이 생겼다. 

각자의 영역에 대한 경계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통합해서 고려할 부분들이 흩어져 버린 것 같다. 


대표적으로 

우리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우리 마음의 문제에 대해 밀접하게 반응하는 

신경계와 호르몬에 작용하는 약물의 처방 권한이 

다른 전문의에게도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 


그에 상응하여 문턱이 더 낮고, 

친밀감을 손쉽게 형성할 수 있는 약국에서는, 

사람들을 아픔에 이르게 하는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함께 더 살펴보는 활동을 해본다면 어떨까.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얘기들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다음에 또 들러서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이크! 나는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분께 

내가 무슨 아는 척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겸손하고 점잖게 대해주셔서 

너무 긴장을 풀어놓고, 

방송을 흉내 내며 떠들었나 보다.




“아, 제가 뭐라고… 

저는 제가 봤던 좋은 방송을 보고, 

도움이 되실 것 같은 내용들을 전해드렸을 뿐이에요. 

나중에 제가 봤던 방송이 

유튜브에 올라오게 되면 링크 전해드릴게요. 

그걸 직접 보시면서 

선생님께서 훨씬 더 도움을 받으실 거예요.”


"네, 그럼 부탁합니다."


흔쾌히 연락처를 남겨주신다. 

아마도 내가 귀동냥한 것 이상으로 

그의 입장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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