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우고 나를 그려봅니다

by 가현달

몸이 아파 지은 약봉투에서

프린트된 이름을 지웁니다

이름은 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저려 이것저것 구입한

영수증의 카드번호를 도려내봅니다

나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 속 부끄러운 생각도

이렇게 지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흔적을 지우고

렇게 나의 이름을 지워봅니다


지저분한 이면지에 내 마음을 끄적입니다

몇 글자 적다 보면 어느새 글이 되어갑니다

이 작은 단어 하나에 내가 담겨있음을 알고는

너무 놀라 웃어봅니다


이름을 지운 약봉지 위에 내 얼굴을 그려봅니다

아픈 주제에 웃고 있는 게 어이없지만

나는 이름을 지우고 나를 그려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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