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러울 정도로 맑은 날이 길게 이어졌다. 땅을 일구는 사람들은 말라가는 농작물을 보며 한숨을 쉰다. 그러나 다행히 지난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싫어하는 쪽이다.
내가 자란 곳은 제주도에서도 비가 많이 오는 남쪽 지역이다. 내리는 양도 엄청나지만, 바람도 강해서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다. 학교에 도착하면 실내화로 갈아 신고, 운동화를 벽에 비스듬하게 세워놓아 말리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너무 싫었다.
비가 좋아진 것은 어른이 되고부터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과는 다르게, 어른이 된 후로는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덕분에 비 오는 날의 운치를 깨달아가고 있다.
비 오는 날 창문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평소와 다르다. 유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수채화처럼 세상의 형체와 색을 흐릿하게 바꿔나간다. 빗소리는 모든 소리를 품어 아늑한 정취를 준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비 오는 날의 추억이 있다.
어느 여름날, 도서관에 갔다. 책을 읽다가 쉬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가려고 1층 출입구로 갔더니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감히 나서지 못하는 강한 비였다. 하늘을 보아하니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나는 비속을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전거를 타면 4~5분이면 도착한다. 그 사이 조금 젖는다고 큰일 날 것도 없다.라고 생각해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출입구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눈이 ‘진짜 가려고?’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어리석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굵은 비가 피부를 때렸다. “아야 아파”를 연발하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자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방금 전 나랑 똑같은 꼴을 하고서. 언니도 금방 그칠 비는 아니구나 싶어 뛰어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언니가 옷을 갈아입는 그 짧은 시간에, 언제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날이 맑게 개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봤다. 둘 다 아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비 갠 뒤 맑아진 상쾌한 웃음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