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찢어진 청바지, 선글라스에 구릿빛 피부와 백팩을 멘 외국인이다. 히치하이킹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나 일어날 것 같지 한국에서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카카오 택시를 부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최악의 경우 24시 카페나 맥도널드에서 첫차를 기다리면 된다. 히치하이킹을 할 필요가 없다.
딱 이런 이미지... Dmitry Shulga on Unsplash
아침먹고 찻집에서 쌍화차를 마시는데 카페 주인과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해미읍성에서 연등 축제가 열린다는 거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준비한 행사로 1년에 한 번 있는 큰 연등 축제라고 했다.
나는 큰 흥미가 없었지만 M은 좋아할 것 같아서 연등 축제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M은 눈을 반짝이면서 꼭 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해미 읍성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도 앱을 보니까 부석사에서 해미 읍성은 1시간 40분이 걸린다길래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바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정 안되면 택시를 잡자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거였다. 실시간 정보는 물론, 막차 시간표도 알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채비하던 차에 '지금 시간이면 버스가 끊겼을 수 있고 택시도 잡기 힘들 텐데 어떻게 갈 거냐'는 말을 들었다.
M과 나는 우선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거나 택시 잡기가 쉽겠지 했다. 천천히 내려가는데 M이 히치하이킹을 하자고 했다. 나는 좀 싫었다. 그냥 고생해서 더 걷고 돈을 내고 택시를 타지 싶었다. 남이랑 같이 차를 공유하는 것도 불편하고 모르는 사람 차에 타는 건 더더욱 꺼려졌다.
그런데 M은 어색함을 조금만 견디면 한 시간은 아낀다면서 차가 올 때마다 엄지 손가락을 들고는 손을 흔들어 댔다. M은 나도 손을 흔들어야지 사람들이 차를 세운다고 하면서 내게도 손을 흔들라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따봉 손가락을 하고흔드는 데 M은 자꾸 적극적을 하라고 했다. 얼굴에 어색함이 가득하면 아무도 차를 세워주지 않는다며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확신하도록 인상을 펴야 한다고 했다.
한 세 번 차가 그냥 지나쳤다. 첫 번째에 쌩하고 지나갔을 때는 좀 어색하고 무안했는데 두 번, 세 번째부터 익숙해졌다. 네 번째 차가 멈춰서 우리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우리가 가는 방법과 달라서 승산 없이 떠났고 그다음에 온 다섯 번째 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히치하이킹은 절과 산에 많이 다니는 부부였다. 절에 갔다가 서산 시내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서산 시내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해서 서산 시내까지만 가도 훨씬 편했다.
히치하이킹은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어색할까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부부는 M을 데리고 갈만한 절과 산을 몇 군데 추천해주었고 나는 M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등을 간단히 말했다.
부부는 가려던 곳과 조금 더 먼 우리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렸다. 한국에 히치하이킹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고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 감사했다. 어색함을 이기고 새로운 경험을 한 것도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