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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Jun 09. 2023

싱가포르 리버스원더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책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동물원에 갔다. 

싱가포르 동물원 티켓은 크게 네 개로 나뉘어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 우리가 "동물원" 하면 생각하는 동물이 있는 곳 

리버스원더: 아쿠아리움과 수족 동물이 있는 곳

나이트사파리: 밤에 동물원을 방문하는 티켓이다

벌드파라다이스: 새들이 있는 공간


이 중에서 나는 싱가포르 동물원과 리버스원더가 가고 싶었다. 

둘 다 보면 좋으련만 한 곳만 보는데도 넉넉 잡아 4시간 정도는 걸려서 

리버스원더를 골랐다. 


물고기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족 생물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닌데도 

리버스 원더를 고른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었다. 

바로 판다였다. 레서 판다와 자이언트 판다가 모두 리버스 원더에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의 판다들이 내실에 들어가 있어서

아빠 판다와 레서 판다 한 마리 둘 다 자고 있는 것만 보고 나왔다. 

그래도 생애 첫 판다를 보는 경험이었다.


너무너무 귀여운 판다


물고기는 정말 종류가 다양했다. 

뱀장어처럼 매끈한 애도 있었고, 

뾰족뾰족한 뿔이 난 물고기도 있었고, 

통통하고 귀여운 매니티도 있었다. 

해초를 얌얌얌얌얌 먹고 있던 매너티
놀란 것처럼 보인다 
진짜 컸다. 정말 머리통만한 두께였다. 
색깔이 예뻤다
등에 있는 지느러미가 파도처럼 흔들렸다




리버스원더를 걷는 내내 최근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바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책에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산산이 부수어주는 새로운 관점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도 고착화되고, 좋은 게 좋은 거고 

익숙한 게 최고인 그런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걸 굳이 찾아서 알고 싶지도 않고, 

새로운 상황에 설레고 즐겁다기보단 피곤함과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새로운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충격, 나의 생각의 지평이 넓혀지는 경험의 개수가 줄었다. 




그래서 더더욱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가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읽기 시작해서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스포일러 주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룰루 밀러 작가의 자신의 작가의 삶이 담긴 에세이이자 

스탠퍼드 1대 학장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담은 책이다.


룰루 밀러는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 

또는 자신의 어떤 삶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답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 속에서 배우려고 한다. 




중반부까지는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조나단 의 삶을 깊게 파고드는 과정에

어떤 팬심(?)을 느껴졌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굳건한 마음, 의지가 

혼돈만 가득한 삶에 어떤 힌트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뛰어난 학문적인 성취와 다르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주의자였다. 

우생학은 유전적으로 우등한 객체와 열등한 구분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학문이다. 


열혈 우생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를 가지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평생 자신의 삶을 괴롭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어떻게 보면 우상처럼 생각하고 깊게 파헤쳤던 인물의 다른 이면을 알게 되자 

룰루 밀러는 크게 충격을 받는다. 


룰루 밀러는 그의 이론에 반박하기 위해 이론의 허점을 꼬집는 증거를 찾는다. 

그 증거는 분류학적인 시점으로 보았을 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물속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류'로 분류하는 것이 

분류학적으로 과학적이지 않는다는 견해였다. 




산에 있는 사는 생명들을 모두 다 꼬집어서 산 생명체, 산류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 


아래 세 생명체 중 가장 거리가 먼 생명체는?

연어

폐어(lungfish)

소 


답은 연어다. 연어랑 폐어 모두 물속에서 살지만, 

폐어랑 소가 해부학적으로 더 비슷하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서 연구해 온 어류,

그 자체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반박한다.


통쾌한, 과학적인 복수다. 




싱가포르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들을 보고 있잖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물고기들은 나한테 "물고기"로 뭉그러졌지만, 

자세히 보니 정말 물고기들의 생김새도 다르고, 

행동 양식도 다르고 많은 게 달랐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는 그저 물고기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내가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세계관을 넓히는 것 

이 두 가지를 생각하더라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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