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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Aug 24. 2024

최영은 작가 <밝은 밤> - 어둡지만 밝은 밤

다정한 사람들, 다정한 이야기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갈증이 없었다. 예전에는 내 안에서 이야기가 속삭이고 꿈틀거렸다면 요즘은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했다. 한때는 내 삶의 원동력이었던 글쓰기를 쉬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허세겠지만, 한편으론 좋다. 예전에 내 글쓰기 원동력은 분노, 불안과 같이 활활 타오르는 강렬한 감정이었으니까.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었다는 건 내 마음이 무거운 추처럼 자리 잡았는 말이 터이니 말이다. 


글쓰기의 공석을 공부와 독서로 채웠다. 글쓰기와 독서는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며 다른 작가의 잘 쓴 글을 읽으면 절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다시 회계 공부를 시작하였으니 글 쓸 시간이 부족한 건 심리적인 요인뿐 아니라 물리적인 요인, 절대적으로 글을 쓸 시간이 줄었다는 점도 찾을 수 있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는 건 기록하고 싶어서다. 이전의 글은 내 감정을 배출하는 목적이 컸다. 분노, 불안과 같이 내 안에서 꿈틀대는 감정을 글로 배출하고 해소하고 망각하고 싶었다. 오늘은 다르다. 기억하고 싶어서 쉬이 잊고 싶지 않아서 간직하고 싶어서 쓴다. 좋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최은영의 <밝은 밤>을 읽었다. 호치민의 한 소고기 쌀국숫집에서 한 그릇 나오길 기다리며 읽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고래 같은 비텍스코 건물 앞에 있는 쌀국숫집으로 직장 동료가 추천해 준 곳이었다. 친구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곳'이라 말했는데, 어련하게도 에어컨이 있고 깔끔한 곳이었다. 식당의 특선인 볶은 소고기를 올린 쌀국수와 함께 아이스티(Tra Da)에 얼음을 빼서 시킨 후 책을 읽었다. 


이미 한 번 읽은 책이었다. 새로운 충격과 흥미진진한 호기심보다는 음식을 먹기 전에 무료함을 가실 만한, 익숙한 애피타이저 같은 책을 원했으므로 고른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 선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쌀국수가 나왔다. 스마트폰이든, 노트북이든 티브이든 화면을 보면서 먹으면 나도 모르게 빨리 먹게 된다. 그래서 밥 먹을 땐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왼손으로 전자책 화면을 꾹꾹 누르면서 오른손으로 쌀국수를 먹으면서 읽었다. 그러다 중간에 끌 수밖에 없었다. 


무슨 감정일까? 슬픈 건 아닌데, 눈물이 났다. 마음 속 가장 여린 부분을 탁, 하고 건드린 느낌이었다. 윽박지르는 사람 앞에서는 되려 오기와 반발심이 생겨 두 눈 부릅뜨고 맞서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해지고 눈물이 나는, 딱 그런 마음이었다. 책에서 나오는 다정한 사람들, 캄캄한 밤처럼 어둡고 무거운 상황에서도 은은히 빛나는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앞에 테이블에는 4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와 부모가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명랑한 아이는 음식점의 노래를 경쾌하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 단란한 가족의 저녁 식사의 분위기를 와해하지 않을까 싶은 자의식을 갖고 눈물을 흘리며 계속 읽는 대신 화면을 끄는 것을 택했다. 


카타르시스.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 집으로 돌아와서 허겁지겁 <밝은 밤>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오랜만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슬픈 것은 아니었다. 인물의 고통에 대한 동정은 더욱이 아니었다. 그들의 강함에, 그들의 약함에, 그들의 다정함, 어쩔 수 없었던 비겁함에 그리고 그 순수함에 마음이 갔다. 왜 눈물이 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다정함 때문인 것 같지만 눈물이 날 때 딱 하나의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만두었다. 


소설의 미덕은 잠시나마 다른 이들의 삶을 내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소설을 읽으면 환기하는 느낌이 든다. 내 삶의 문제가 모든 걸 삼켜버릴 것 같을 때,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을 때 잠깐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그 안에서 위로와 용기 또는 어떤 해결책을 얻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소설을 읽는 묘미다. 


요새 내 삶은 명료한 법무 어휘, 깔끔한 회계 개념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오랜만에 잔잔한 다정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밝은 밤>을 읽어서, 지연과 미선과 영옥과 정선을 만날 있어서 마음속 단단한 힘을 얻은 기분이다. 


어머니는 일평생 그런 식이었죠.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무서워서 떨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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