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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맘 Jun 09. 2024

암환자의 원예치유 - 모내기

암환자가 되어서야 해보는 모내기

아주 오래전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첫여름방학에 힘든 시간을 함께 보냈던 화실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을 따라 여행을 했다.  아마도 7월이나 8월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척이나 더웠다.


"꼭 벼같이 생겼다"

월출산을 오르기 전 근처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민박집을 가는 길은 참 예뻤다.  길 옆은 넓게 초록색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초록초록한 식물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가 생긴 게 "꼭 벼같이 생겼다"고 했고, 친구들도 "그러게 참 예쁘다"라고 했다.  지나가던 주민이 나의 말을 듣고는 우리에게 " 학생들은 벼도 몰라요?"라고 하며 혀를 차며 지나가셨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사실 같이 있던 친구들 모두  황금색으로 익기 전의 초록색의 벼는 처음 보았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벼는 노랗게 익은 모습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았기에 고개를 이제 막 숙이기 시작한 초록초록한 벼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부터 떠오르는 벼는 황금색보다 초록초록한 고개를 막 숙인 벼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모내기를 잘 하고 온 날 남편이 그려준 그림이다.


내 삶의 첫 모내기를 했다.

원예치유수업을 하게 되면서 수업일정을 받아보고 모내기가 있어 놀랐다. 정말 도시 한가운데, 국립암센터에서 모내기를 한다는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너무 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원예치유수업을 받길 잘했다 생각했다.


9시가 조금 지나 국립암센터에 도착했다. 모내기를 하는 논은 1층이라고 했다.  15명의 미니텃밭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논은 없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물이 채워진 작은 독특한 논에서 강사님이 논바닥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15명의 암환자와 암경험자의 모내기

15명의 암환자, 암경험자는 모두 모내기에 적당한 복장을 하고 왔다. 나도 모자를 쓰고 긴팔옷을 입었다. 햇살이 강하다. 모내기를 하는 날이 눈부시다.  우리는 장화를 신고, 농업기술원에서 나오신 분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모내기를 시작했다.


"손가락을 모아 손끝으로 힘을 주어 깊숙이 모를 심어주세요"

모줄을 잡는 사람과 논에서 모를 심는 사람들로 나누어 열심히 모내기를 했다. 암환자와 암경험자들이 하는 모내기라 뜨거워진 날씨도 걱정이고 너무 힘들까도 걱정인 관계자분들이 여러분이다. 모두의 정성 어린 배려와 도움으로 모내기를 잘 마쳤다.


"모내기 너무 잘하시는데요"

모내기를 하는 나에게 국립암센터의 담당자가 건넨 말이다.

"그러게요. 제가 농부체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었어요"

작은 논이라 모내기가 힘들지는 않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햇살이 뜨거운 날이라 많은 분들이 많이 신경을 썼던 모내기였다. 정말 감사한 하루고 고마운 날이었다. 벼가 황금색으로 익게 되면 벼베기도  해야 한다.

정말 기대된다.

내가 모내기를 해보다니, 암을 만나고 이렇게 특별하고 행복한 일들이 나에게 하나씩 찾아온다.

암을 만나  어쩌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오늘도 참 좋은 날이었다.





나의 텃밭에 '정성을 다해'라는 작고 귀여운 팻말을 만들어 줬다. 정성껏 돌보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강사님이 만드신 장미청으로 시원한 장미청음료를 만들어 주셨다. 모내기가 끝나고 예쁜향과 빛깔의 장미를 함께 마셨다.
몆주전에 심어둔 작은 텃밭도 둘러보고 살피고 물도 줬다. 일주일 사이 무척 많이 자랐다.
모내기를 하고 모자를 만들었다. 나의 텃밭이 생기면 쓸 모자다.   
예쁜 모자를 만들고 모내기를 마친 작은 우리들의 논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내기를 준비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내기를 한날의 일상기록

https://www.instagram.com/reel/C7g64CIRzeE/?igsh=MXN1Z2k4cnRtdDJw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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