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꿀꿀했던 날씨. 10월 되면 하루 종일 흐리고 눈만 온다던데, 정말 겨울이 오나보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일찍 기상을 했다. 언니가 7시 30분에 수업하러 나가야 돼서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찌뿌둥한 몸을 뭉그적 대며 일어났다.
언니는 나가고 나는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나 혼자 있었는데, 주말이고 혼자 있고, 날씨고 꿀꿀하다 보니 축-축~ 늘어졌던 것 같다. 좋았던 점도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다른 날보다 영어 공부를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소리 내서 외어야 잘 외워지는데 언니가 집에 있을 때는 의식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리도 가늘고 작아진다. 오늘은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자신감 있게 큰 목소리로 문장들을 외웠다. 새로운 어휘도 공부하고 기특하게도 기초 인강까지 들었다.
사실 영어 공부는 하면 할수록 막막하긴 하다. ‘나는 언제쯤 영어를 능숙하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답답하기도 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짜증도 난다. 생각해 보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무의식 중에 핸드폰에 손이 가곤 했던 것 같다. 오늘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기에 ‘이러면 안 된다.’ 생각하곤 바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아빠와 한 컷
언니는 오늘 하루 종일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키를 나에게 맡기고 나갔다.(엄청 큰 열쇠, 하나뿐이다.) 키를 들고, 처음 혼자 외출하는 거라 문을 열고 잠그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와 현희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70년 정도 된 아파트인데 열쇠가 정말 중세 영화에서만 봄직한 크고 기다란 모양이다. 자물쇠 구멍도 쑥 넣으면 있는 게 아니라 그 맞는 구멍을 찾아야 한다. 오늘은 거짓말 조금 보태 30분 정도 헤매다가 겨우겨우 외출할 수 있었다.
오늘의 외출 목표는 외국인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 처음에는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커피를 시키려면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할 것 같았다(이 쫌보~). 내가 홀로 폴란드 독립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 외국인이 득실거리는 카페에 가서 주문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조금 무서워서 발걸음을 마트로 돌렸다. 빵과 음료수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한 말이라고는 ‘땡큐’ 두 마디가 다였지만, 정말 홀가분하고 왠지 무엇인가 해낸 기분이었다. 별거 아닌 대화였다. 유치원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다만, 나 혼자서 외국인을 처음 마주 대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을 뚫고 마트에서 내 힘으로 물건을 구매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여기는 폴란드라고~~~~) 정말 엄청난 무언가를 해낸 기분이었다. 스스로 쓰담쓰담!! 며칠만 지나 생각해면 정말 시덥잖은 일이이 분명하다.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오늘의 나는 큰 성취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20분 정도의 짧은 외출이었지만 물건도 처음 사고 거리를 걸으면서 폴란드를 느낄 수 있었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따라왔지만, 평소그랬다는 듯 그 시선을 오히려 느끼며 당당히 걸었다. 잠깐의 산책으로 갑자기 삶의 질이 올라가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외국인과 얼굴을 마주 대한 것만으로도 영어의 동기부여가 팍! 팍! 되는 기분이다. 이제는 유튜브로 다른 영상을 무의식 적으로 찾아보지 말고, 영어 공부에 더더욱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폴란드 사람들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빠 엄마와 여행을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회화 실력에 못 미치는 사람들도 꽤나 만났다. 오늘의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오히려 소통이 안 되는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폴란드에서의 첫 나 홀로 외출이었다.
체코의 어느 시골 길에서 사랑이와 쑈!쑈!쑈!
아침에 성경 읽고, 영어 공부하고, 쉬다가 산책 다녀와서 지금 자리에 앉아 아빠의 영상편지를 보고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 않은가! 다음 주에는 혼자 대중교통과 지도를 이용해서 주변의 공원이나, 도서관에도 다녀와야겠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은 생각보다 큰 일인 것 같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폴란드에서의 독립 여행 기간은 더욱 그렇다. 책임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태도로 직결된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인다. 오늘의 내가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엄청난 책임감을 가진 건 아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내가 나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무도 나의 일상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려다가도 스스로 ‘정신 차려!’ 이러면서 나를 다독이게 된다.
또 하나 변한 것이 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에게 조금 더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폴란드에서의 나 홀로 독립 여행 4일 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붙잡아 줄 분은 하나님뿐이 없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성경 속 신앙의 선조와 오늘 우리의 삶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문제와 그로 인한 걱정이 있는 것처럼 그 시대에도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런 그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아빠가 오늘 영상 편지에서 읽어 주셨던 <비전을 디자인하라>의 본문에서도 신앙의 선조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민감하라고 나왔다. 어제, 오늘 창세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설마 이거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착각이겠지!”
나의 생각이 틀렸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던 것이 맞았다. 본향 땅을 떠나 새롭게 시작하고, 일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을 그 땅으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를 축복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다독이시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셨다. 한국을 떠나 폴란드에 나와 있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요 며칠 매일 든다.
지금 나에게는 수많은 닮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는 더욱 많을 것이다. 살아가며 그 사람들의 경험을 보고 배우고 시행착오를 하며 성장해 갈 것이다. 그때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나에게 유일한 가장 확실한 멘토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오늘도 나를 폴란드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염려를 맡긴다. 내일도 나 홀로 처음 맞이하는 폴란드에서의 주일, 감사의 날, 행복한 주일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