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건너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광식 Nov 06. 2024

지을 수 없는 제목

가정동, 2021

어제 새벽에 잠깐 세차게 비가 내렸다고 한다.

무심코 던진 그 말을 지우개로 제압하고 햇살을 칭송했다.

부모님 댁으로 가는 도로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차량이 많아졌다고 도토리 떨어지듯 혼잣말이 툭!


인천대로(경인고속도로)는 새 단장을 위해 3년간 공사에 들어간다.

기존 제한속도 100km/h에서 60km/h로 낮췄다가 원성을 듣더니

70km/h로 유지하는데, 곧 50km/h로 낮춘다고 한다.

여전히 인천의 남북 방향의 동맥인 인천대로는

동맥경화가 일어날 판국이 불 보듯 뻔하다.

도로를 데굴거리는 차가운 각얼음 덩어리들.


부모님께 영양제 드리고 국산 들기름 한 병 받아 오는 길.

(나올 무렵 아버지의 전화가 울렸다.)

다시 들어선 인천대로는 한산했으나 퇴근이 가까워지자 밀려드는 차들 성미가 급해진다.

겨울을 나르는 바람이 도착한 듯했다.

검암역 부근에는 500살이 넘은 상수리나무가 있는데, 당제를 지내는 모양이다.

요새 일몰 시간도 빨라졌고 바람도 거칠어졌길래

3시 행사를 다음 해부터는 2시에 열면 어떨지 혼잣말을 툭!

집 앞에는 주문한 현미 10킬로그램 하나가 네모반듯한 상자에 담겨 도착했다.

어디서 왔는가 보니 멀리 논산에서 생산된 삼광 품종이었다.

그날 저녁, 국수를 허겁지겁 밀어 넣은 뒤 잠에 들었다.


아침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다.

평생 도로 위에서 일해 딸 넷을 키워 보낸, 논산 하면 고유명사이던 논산 작은아버지가

어느 차디찬 도로(하늘)로 나섰다는 이야기.

나는 잠시 이 상황의 제목을 지을 수 없다. 아니 밥을 지을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와 어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