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군생활로부터 배우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

by 이준봉

걱정의 시작: 입대


때는 바야흐로 필자가 입대하기 전이었다. 입영통지서를 출력하고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날 점심으로는 부모님께서 갈비를 사주셨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무슨 맛이었는지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이제부터는 이런 음식을 자유롭게 먹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함 뿐. 그렇다. 걱정이 됐다. 나는 과연 군대에 들어가서 잘할 수 있을지 말이다.


사회의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고, 모든 조건과 소유가 동등한 상태가 되었다. '나'를 구별할 수 있게 만드는 인식의 표지는 단 두 개. 157번 훈련병이라는 명찰과 18-********가 적힌 군번줄, 그게 다였다. 여러 훈련들을 차례로 받으며 나름 튀어보이려고 애를 썼다. 덕분에 상점을 받아서 남들보다 5~10분 더 통화를 했다. 하지만 긴장의 연속이었다. 끝까지 수료할 수 있을까? 다치지 않고 훈련을 마칠 수 있겠지? 그렇게 신병수료식이 지나갔다.



다음 걱정: 야수교


운전병으로 지원했던 나는 후반기 교육을 받아야 했다. 제3야전수송교육단(이하 야수교)이라는 곳에서 운전 교육과 기초적인 정비 교육을 받아야 군면허를 취득하고 운전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 도착하자마자 어떤 조교가 소리를 '꽥' 질렀다. 고된 훈련병 생활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이젠 '교육생'이 되었다. 또다시 통제받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야수교에서 있을 땐 내내 가슴 졸이며 지냈던 것 같다. 우선 운전 교육을 받으러 갈 때마다 조교들이 우릴 죽이려 들었다. 조금이라도 잘못 운전하면 엄청난 소리로 '야', '뭐하냐'를 연발하며 씨*, 새*, *같네, 개** 등의 욕설도 심심치 않게 외쳤다. 기능 시험을 치고, 영외 운전 교육을 나가며, 조교 선발 면접을 3번 치러서, 자대 배치 결과를 듣는 순간까지 떨림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본인은 야수교 운전 조교에 지원했었다. 운전 기량 평가와 몇 번의 면접을 통해 최종 후보 3명을 선발했다. 그중에서 난수를 돌려 단 한 명만이 조교로 최종 합격이 되었다. 대형 프로젝터의 스크롤이 내려가면서 나의 배치 결과는 '제3야전수송교육단'이 아닌 '제3보병사단'이었다. 아뿔싸, 말로만 듣던 강원도 철원! 그곳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필자는 백골이 훤하게 맞이하는 곳으로 수송되었다. 자대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며 새로운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이제 내가 그곳에서 가장 막내(후임)가 되는구나. 선임들한테 잘 보여야 할 텐데...' 상념을 품은 채, 커다란 의류백을 짊어지고 자대에 도착했다.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맨 자화상>


다다음 걱정: 자대


이등병 시절에는 하루하루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마냥 지냈다. 행정반에서 내 이름을 언제 부를까 노심초사하였고, 혹여라도 근무자 교육과 암구호를 까먹지 않도록 몇 번이고 계속 확인했다. 운전을 할 때나 작업을 할 때도 실수하면 절대 안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혹시라도 선임들 눈 밖에 나면 어쩌지라는 염려가 가시질 않았다. 무엇을 하더라도 눈치를 보았으며, 혼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다다음 걱정: 짬 좀 찼더니


시간이 흘러 현재 내 계급은 상병이다. 이제 내 위에 선임은 거의 없다. 혹여나 있더라도 대부분 말을 놓은 상태라서, 누구도 어렵지 않다. 그만큼 생활이 편해졌고 여유로워졌다.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누구 하나 건드는 사람이 없다. 다만 간부의 눈치만 잘 살피면 된다. 그런데 이제 다른 곳에서 걱정이 침입해온다. 이병과 일병 때에는 뭘 해도 건강했던 몸이, 요즘은 조금만 까딱해도 아픈 게 느껴진다. 계급에 따라 체력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텐데, 아마도 집중하는 대상이 달라져서 그런 모양이다.



N번째 걱정: 전역 후에는?


아픈 곳이 다 나아서 건강해지면, 이젠 '전역하고 앞으론 어떻하지?'라는 걱정이 든다. 이런, 제기랄! 도대체 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전역하는 날에도 걱정할 것 같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돌이켜보니, 그간 스쳐갔던 걱정들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했나 싶었다.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걱정하고 염려했던 일이 그렇게 중대한 일이었는지 상기해보았다. 누구나가 겪는 일이었고, 자연스럽게 지나갈 일들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괜한 걱정을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非無安居也
我無安心也
非無足財也
我無足心也

편안한 거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며
충분한 재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 묵자, <묵자>
안견, <사시팔경도>


걱정의 유익, 그러나 아쉬움


그렇다고 걱정이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는 말도 아니다. 걱정은 내게 많은 유익을 안겨주었다. 적절한 긴장은 특별히 운전병인 나에게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선. 후임과의 관계를 더 원만하게 해주는 요소도 되었으며, 끊임없이 생각하게끔 만드는 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다만, 내가 아쉬운 것은 주위를 좀 더 둘러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간 군생활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였던 것 같다. 너무 인생이 팍팍했던 느낌이랄까.



이제부터는


좀 더 여유를 갖고 나의 상황을 바라보려고 한다. 조금 걱정되는 일이 있다고, '나 이러다 평생 ~하면 어떻하지?'라는 마음가짐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나만 겪어본 일이겠어?'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무언의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해도, 너무 심각하게는 받아들이지 않고자 한다. 결국 걱정을 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거나 사라진다. 이별뿐만 아니라 걱정에도 시간이 약임을 깨달았다.


글을 맺기 전에 노래 한 소절을 소개하고 싶다. 군대에서 재미있게 시청한 '고등래퍼2'에 나온 음악이다. 나는 이 곡을 참 좋아하는데, 리듬뿐만 아니라 가사까지도 무척이나 감명 깊기 때문이다. 기회가 될 때 한번 들어보면 좋겠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 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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