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떻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느냐고? 요즘에는 일과시간 이후, 개인정비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게 해준다. 그때만큼은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이용하여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이 꽤나 소중한 시간에 작성되었다는 것만 알아두면 좋겠다.
군에 입대한 이후로 여러 일들을 겪었다. 각각의 일들을 통해 많은 가르침도 얻었다. 이번 글에는 내가 그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크게 깨달았던 점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센스(Sense)
센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력. '감각', '눈치', '분별', '분별력'으로 순화 <표준국어대사전>
하.. 이 껌 아시는 분 손?
센스. 내가 군대 와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껌이 바로 센스민트다. 사과맛 진짜 좋아했는데 단종되었다고 한다. 근데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센스다. 군대도 일종의 사회라고 한다.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는 군대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센스 있다'는 표현은 다양하게 정의내릴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첫째,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것
둘째,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미리 하는 것
자대에 막 전입 온 이등병 때 일이었다. 처음 자대에 오면, 소위 '2주 대기 기간'을 갖는다. 물론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그때는 철저하게 지켜졌다. 그래서 나는 2주 동안 항상 선임들과 함께 다녔다. 같이 밥 먹으러 가고, PX 가고, 싸지방 가고, 헬스장 가고..
그러던 중, 하루는 선임의 생일인 날이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기에, 선임 생활관에 찾아가서 PX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같이 내려가서 PX에 갔다. 딱히 내가 필요한 것은 없어서, 선임한테 줄 선물로 비타민? (긴가민가하다) 몇 개를 샀다. 그리고 PX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주었다.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극구 반대했는데, 그냥 주려고 샀다고 하면서 계속 주니까 결국 받았다. 무척 고마워한 걸로 기억한다. 선임은 원래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관계가 나빠진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병 때였다. 저녁 점호를 하기 전에 매일 청소를 한다. 그때 분리수거도 하는데, 처부에서 나온 쓰레기는 처부 인원이 알아서 버려야 한다. 나는 수송부의 가장 막내였으므로, 당연히 분리수거는 내가 했었다. 원래는 선임이 어떻게 분리수거를 하는지 알려주고 나서부터 시작을 한다. 그런데 분리수거하는 법을 깜빡하고 알려주지 않았다.
군대 청소 - 분리수거 VS 화장실 당신의 선택은?
나는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하기로 마음먹고 했다. 처음 분리수거를 해보니까 위치도 잘 몰라서 타 처부 선임들한테 물어보면서 했다. 다행히 그 선임들은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분리수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원래 이병 짬찌-군 생활을 얼마 안 한 사람을 일컫는 용어-는 얼타다가 잘못하면 털릴-혼날- 수도 있다.ㄱ-;)
다음 날, 선임이 분리수거를 알려주지 못했는데 누가 했냐고 물어봤다. 그때 내가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선임이 갑자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하더니, 나를 "씹A급"이라고 지칭했다. 그때의 기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군 생활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2. 여유(Composure)
이등병과 병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걸음걸이다. 이등병은 뛰어다닌다. 조금만 늦으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행동을 한다. 그렇다면 병장은 어떻게 걸을까? 하루 종일 어슬렁거린다. 걷는 모습도 차이가 난다. 이등병의 걷는 모양은 올바르다. 허리를 쫙 펴고 군인처럼 걷는다. 간부나 선임을 만나기라도 하면 크게 경례를 한다.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허리는 굽어지고, 발걸음은 벌어진다. 경례했던 손은 이미 주머니에 들어간 지 오래다.
무엇이 이와 같은 차이를 만들었을까? 바로 '여유'다. 군대에서는 여유를 잃어버릴수록 다치기 쉽다. 헐레벌떡 뛰어가다가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등병이 병장처럼 설렁설렁 다녀야 한다는 건 아니다. 행동은 빠릿빠릿해도 마음만큼은 여유로워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보직은 차량 운전이다. 운전병이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또한 '여유'다.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절대 안 된다. 가끔씩 발생하는 사고들을 보면, 대부분 서두르다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기 일쑤이다. 신중하고 평온하게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단 서두른다는 것 자체가 첫 단추를 잘못 꿰매는 일이다.
한때 내 전용차였던 돈반이..^^
3. 말 한마디(A word)
군대에서 지내다 보면, 아주 가끔씩 싸움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요즘에는 선후임 간에 싸움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싸우기 전에 마음의 편지에 찔려 보직변경이 되거나, 전출을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동기들 간의 싸움을 더 많이 본다. 싸움의 발단은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이다. 근데 그 싸움이 서로 쌍욕을 하고 치고받고 싸우기까지로 번진다. 원인은 바로 '말 한마디' 때문이다.
그냥 한 사람이 넘어가면 끝나는데, 반드시 말 한마디 아니꼽게 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걸 들은 상대방은 화나서 또 한 마디 쏘아붙인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반대편 사람은 다시 한 마디를 한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다 보면, 결국 큰 싸움(Big fight)이 된다. 그럼 진술서 쓰고, 징계받고, 휴가 짤리는 거다.
언중유골(言中有骨): 말에는 뼈가 있다.
한편, 말 한마디가 빛을 발할 때도 있다. 모든 군대에는 나름의 경례구호와 인사말이 있다. 그럼 동기를 제외한 선후임 간에는 마주칠 때마다 경례 혹은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보통은 그렇게 의례화 된 말만을 하면서 지낸다. 그런데 가끔씩 형식적인 경례나 인사를 한 뒤에, 말 한마디를 더 던지는 선. 후임이 있다. 그때부터 같은 처부(소대)든, 다른 처부든 말의 물꼬가 트이는 거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으면 어느새 친해지게 된다.
내가 후임이었을 때 선임들이 나보고 말 몇 마디를 걸어주면 큰 힘이 되었다. 하나라도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격려나 걱정을 해주면 무척 감사하였다. 뿌듯함과 보람차다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선임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나도 후임들한테 말 한마디 더 건네보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환하게 웃는 이들을 보면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이렇게 지금까지 내가 군 생활을 하면서 느낀 세 가지 키워드를 정리하여 보았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되뇌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적용될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상적인 깨달음이라고 본다. 가뜩이나 월급도 적은데 배우는 것이라도 있어야 속이 편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군대에서 배운 가르침은 가슴 더욱 깊이 각인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