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면?

꿈과 계획을 세울 때에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by 이준봉
해야 할 일이 하나 끝났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몇 가지 일이, 심하면 수십 개 넘는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하루 종일 이전에 세워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렇게 오늘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결국 'To Do List'는 점점 더 쌓여간다. 내일도 같은 루틴의 반복이다.


"오후 3시. 3시다. 이 시간은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항상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 - 사르트르, <구토>


'할 일 없음'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혹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고 있는가?매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말이다. 아마 누군가는 분명 뜨끔하였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화를 넘어서 이제는 지식이 너무 많다 못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네트워크가 최고조로 발달해 그 누구와도 즉시 연결되는 사회. 이런 시공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할 일 없음'이라는 상태는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든다. 꿈을 설정하고, 기간과 단계별로 계획을 세운다. '언제는 무엇을 하고, 그 다음에는 어떤 걸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이러한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 꼭 필요한 자세이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습관이다. 그런데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꿈과 계획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버킷리스트에 대하여


혹시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해본 적이 있는가?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의미하는 용어다. 영화화되거나 각종 매체를 통하여 알려지면서 근래에 화두가 되기도 하였다. 대개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대략 50~100가지의 일을 적는다. 야망이 큰 사람이라면 100개가 넘는 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자. 혹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데, 한 4~5개만 적고 끝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최소 30가지라도 작성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때 가능한 많은 목표를 적어내려는 심정은, 시 바삐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인생이 마치 미덕인 양 치부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었다고 치자. 이제 99가지의 버킷리스트가 남았다. 목표를 달성했으니 보람은 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은 리스트를 보니까 숨이 탁 막힌다. '이걸 언제 다하지?' 만에 하나 계획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그 좌절과 실망은 더욱 커진다. 버킷리스트는 우리에게 행복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도구로써 작용하지만, '이상'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저해제가 되기도 한다.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Then what is solution?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우리에게 내릴 수 있는 처방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본인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지금 계획하고 꿈꾸는 일이 정말 나에게 중요한 일인지 반문하여 보라. 나도 모르게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그게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턱대고 덜컥 시작하는 것과 여러 번 생각한 후에 시작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만든다. '그렇게 너무 재다가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비판은 기우일 뿐이다. 계획의 홍수인 시대에는 변별력 있는 계획만이 살 길이다. 마치 정보가 그러하듯이.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곧 방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르는 데서 온다." - 파스칼, <팡세>


성경이 주는 교훈


주일이기에, 오전에 군교회로 가서 설교를 들었다. 성경 본문은 누가복음 12장이었다. 성구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내 가슴에 턱하니 박힌 구절이 하나 있었다.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12:26) 설교의 주된 내용은 이러하였다. '걱정한다고 해서 염려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십니다. 염려를 책임져주십니다.'


비록 기독교적 메시지이긴 하지만, 같은 요지로 누구에게나 통찰을 주기 충분한 대목이라고 본다. 마치 글쓴이가 지하철역을 지나가는 도중, 승려가 쓴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여러 계획들을 세우며 인생을 아무리 염려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크게 없다. 오히려 더 불안해질 뿐이다. 그럴 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인생의 모습인가?', '나의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 David Fokos


불변의 진리


어렸을 적부터 흔히 들어왔던 말이 있다. 아마도 부모님 혹은 선생님, 교과서에서라도 한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뭐, 다 아는 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논어를 끝까지 읽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공자는 논어의 내용을 비로소 행할 때에야 읽은 것으로 보았다.



이제 나 자신과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다.


이 글을 다 읽고, 브런치앱을 나가서 페북이나 인스타에 들어가기 전에, 할 일을 다시 하려고 의자에 앉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라. '내가 지금 걸어가는 길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우리 인생이 뒤바뀌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잠깐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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