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반찬
마음이 소란하고 머리가 복잡하면 글을 쓴다. 요즘 유독 글을 많이 쓰는 까닭은 필경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나를 무르게 만든 탓일 것이다. 물에 푹 젖은 스펀지처럼 습기를 가득 머금었다. 살짝 누르면 눈물이 삐죽 나오던 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손자국이 남았다.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엄마에게 오랜만에 내 글을 읽어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쓴 글들을 읽어줬다. 여러 번 퇴고를 거치느라 수도 없이 본 글이었는데 소리 내어 읽다 보니 눈에서 물줄기가 주룩 떨어졌다. 먹먹함에 구차한 변명을 덧붙였다. 엄마, 사실 내가 이렇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사람이야. 엄마, 사실 내가 이렇게 정이 많아. 엄마, 사실 내가…
쉽게 우는 나를 보고 아직 애라며 웃던 엄마가 내 글을 듣다가 울었다. 내 마음이 글에 잘 담겨서 좋다고 했다. 나는 문득 현호정 작가가 <연필 샌드위치>에서 언급한 영적인 탯줄이 떠올랐다. 엄마와 딸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탯줄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그 영적인 탯줄을 통해서 글을 쓸 때의 내 감정이 엄마한테 전달된 건 아닐까 싶었다. 결국 엄마를 울린 건 내가 쓴 글이 아니라 글을 쓰던 내가 아니었을까 하고.
자취생인 나를 위해 엄마는 종종 반찬을 싸준다. 이번에는 유독 많았다. 파란 이케아 장바구니가 꽉 차 생각보다 무거웠다. 전자레인지에 얼려둔 밥을 돌리고 반찬을 잔뜩 꺼낸다. 하나씩 먹으며 고요한 주말 아침 분주하게 반찬을 만들던 엄마를 떠올린다. 정처 없이 부유하던 생각의 먼지들이 가라앉는다. 답답하던 방의 공기가 깨끗해졌다. 마음이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