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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세 Oct 14. 2023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걸러내는 법

어렸을 적에는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소화시키는 게 서툴렀다. 슬픔, 분노, 두려움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부정적이었다. 촘촘한 체로 거르고 걸러 좋은 감정만 바깥에 보여주려 애썼다. 가늘고 날카로운 감정은 체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구멍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오도 가도 못했다. 


제대로 들여보지 않았으니 감정의 뿌리를 알 수 없었다. 어찌저찌 원인을 찾더라도 마땅한 해결책을 구하기보다는 모른 척 외면할 뿐이었다. 볼썽사납고 뾰족한 나뭇가지 같은 감정이 마음을 찌르도록 둘 수밖에 없었다. 체의 구멍이 하나둘 막혔다. 


소화시키지 못한 감정은 몸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가운 감정은 명치에 덜컥 내려앉아 어떤 음식도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없었다. 쉽게 체했고,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요즘엔 체하는 일이 드물다. 감정을 마주했을 때의 격동이 줄은 탓도 있지만, 이제는 비단 슬픔, 분노, 두려움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이 크다. 슬픔에 침잠할 수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수 있다. 막막한 상황에 발을 내딛기 무서울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감정을 마주했을 때 나의 자세다. 


서툴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연습한다. 촘촘한 체는 엉성한 체로 바꾼다. 날이 선 감정은 체를 통과하기 전 다듬는다.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더 사랑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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