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나, 일이니까 하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즐기면서 해”
“좋아서 하나, 일이니까 하지”
평소에 이런 말을 자주 듣는데, 이런 말들 속에 일은 기본적으로 즐길 수 없다는 인식이 깔린 것 같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 다르지 않을까?
난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 속에서 2-30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다니던 나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 삼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일할 때 항상 열정적이고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자신이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는 게 즐거워 제빵 일을 시작했다는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그것 참 행운이 아니냐 물었다. 그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글쎄요, 좋아하는 것과 그게 일이 되는 것은 또 다르더라고요
가족들을 위해, 지인을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과 손익을 계산하고, 이익이 나는 수량을 맞추기 위해 분단위, 아니 초단위까지 따져가며 빵을 구워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했다.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와 기계적으로 숙달된 손놀림을 갖추지 못하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이익이 없다면 좋아하던 것이 자칫 괴로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지인은 대가 없이 포트폴리오를 위해 작업할 때는 즐겁고 신이 나지만, 고객에게 대가를 받고 진행한 작업은 하기 싫어서 처리하는 속도가 늘어진다고 했다. 대가를 받는 만큼 자신의 스타일이나 일정보다 고객의 요구를 맞춰야 하고, 이런 일은 대개 기한이 있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는 않는 큰 행운을 가진 사람 이다. 하지만 일은 책임과 성과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에 기본적으로 부담스럽고 힘든 면이 있다. 난 좋아하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할 땐 항상 죽을 맛이었고, 일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았다. 그러니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을 리도 없다.
사회생활 짬밥이 쌓이고, 조금은 어른이 된 내가 과거를 돌아보며 드는 생각... 일에 대해 좋아하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일에 대해 어떤 가치관과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먼저 정리해 보는 것이 중요하구나.
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다 포장했지만, 사실은 일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멋지게 드러내고 싶었고 기왕이면 인정받고 잘하고 싶었다. 그게 충족이 되지 않으니 화가 났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서 열정을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변명하고 있었다.
물론 잘 맞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일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분야에서 일했다 해서 내가 더 열정적이고 열심히 일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요즘은 내게 일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 이제까지 정리한 바로는, 일은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 세상에 좀 더 이롭고 유용한 영향을 미치는 것. 당연히 나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야 많겠지만,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남과 비교하고 인정받으려 노력하기보다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더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포크 제작자라 한다면, 세상에 나보다 더 고급스럽고 비싼 포크를 디자인해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평범한 포크 제작자로서 흉기로 변할 수 있는 포크가 아닌 안전하고 쓰기 편한 포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