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보라에서는 무엇을 하며 놀까?
상상해보자.
아침에 눈을 뜨면 큰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태양빛에 살짝 물이 들어 영롱한 보랏빛을 띠고 그 앞의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는 마치 호수와 같이 잔잔하게 반짝이며 커다란 야자수 잎은 이에 맞춰 살랑거리며 춤추는 모습을.
이러한 곳에서 일주일간 지낸다면 무엇을 할까?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 그저 눈이 떠질 때까지 늘어지게 잔 후 느릿하게 일어나 강렬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달달한 카푸치노 한 잔에 조식을 푸짐하게 먹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스노클링을 하며 물속 친구들과 헤엄친 후 지칠 때쯤 야자수 그늘이 진 해변에 누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쭉 들이켠다. 그러다가 출출해지면 숙소로 돌아가 짭짤한 감자칩과 과일을 들고 나와 자리에 누워 책을 읽는다. 원한다면 커피도 곁들여서. 그러다가 노을을 보면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 앉아 피자 하나에 파스타 하나를 시켜 해가 지는 것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타히티 전통 음악이 신나게 들린다. 그러다가 배가 부르면 다시 숙소로 돌아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구경한 후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보라보라의 보통날이다. 이 보통의 날에 무엇을 하며 놀까?
'세계 최고의 바다환경'에 둘러싸인 보라보라에는 다양한 해양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 우리가 즐긴 것은 샤크 앤 레이 투어(Shark&Ray Encounter-Fullday with lunch). 말 그대로 상어와 가오리를 보는 투어다.
보라보라를 가기 전부터 매료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바로 바닷물 속에서 식사하는 이 모습.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이 바로 '모투투어(Motu Tour)'다. 모투투어는 보라보라 내 작은 섬인 모투를 투어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
다른 것은 몰라도 모투투어와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남편이 발가락을 다쳤기에 스킨스쿠버는 패스. 모투투어마저도 예약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보라보라로 가게 됐다.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저 이 환상의 섬을 즐기며 먹고 자고 쉬자는 생각이었다. 신혼여행이지 않는가. 그러다가 둘째 날 운명처럼 샤크 앤 레이 투어를 예약했다. 리조트 내를 구경하던 중 투어센터를 발견한 것. 다음 날 투어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예약한 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나는 조금 예민해졌다. 시간에 맞춰 투어를 가야 하는데 무언가가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 허둥지둥 숙소 앞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빌린 후 투어 시작하는 선착장으로 휠체어를 미친 듯이 밀며 달려갔다.
인상을 팍 쓰고 있어서 일까. 투어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No Stress"(스트레스받지 마)라고 말한 후 웃으며 본인의 우쿨렐레를 안겨주고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얼떨결에 우쿨렐레를 안고 사진을 찍었고 그의 밝음에 전염돼 나의 짜증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본인의 이름을 "큰 바다"라고 소개했다. 타히티 말로 큰 바다라는 뜻을 지녔다는 것. 시종일관 유쾌한 그의 말과 특히 다리를 다친 남편에게만 "My friend"(나의 친구)라며 더욱 친근감을 보인 그 따뜻한 배려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때때로 우쿨렐레로 타히티 전통 노래를 불렀다. 배에는 우리 부부 말고도 이탈리아 커플과 프랑스 노부부가 탑승했는데 모두 뜨거운 남태평양 태양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보라보라 바다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투어는 보라보라 본섬을 기점으로 아름다운 환초를 한 바퀴를 쭉 도는 것이었는데 모투 마다 다양한 라군을 형성하고 있어서 가는 곳곳마다 바다 색깔이 다채롭게 빛났다. 코스는 크게 상어에게 밥 주는 코스, 가오리를 직접 만지면서 밥 주는 코스, 열대어와 스노클링, 점심 및 바나나 잎 왕관 만들기 등으로 오전부터 오후까지 진행됐다.
배를 타고 한참 가니 상어 떼가 보였다. 아기 상어 떼에 먹이를 주고 구경하고 있으니 큰 바다 씨는 물에서 수영해도 좋다고 했다. 이 상어들은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는 '애완 상어'라는 것. 소심한 나는 가장 늦게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들었다. 그의 말대로 상어는 전혀 공격하지 않았고 우리는 점점 더 푸른 바다에 매료됐다.
다음 코스는 가오리. 파랗던 바다는 사라지고 맑은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졌다. 물도 얕아서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아 아까보다는 쉽게 물속에 들어갔다. 겁을 내는 나의 어색한 몸짓과 달리 가오리는 마치 강아지처럼 먹이를 받아먹고 꼬리를 휘감으면서 재롱을 부리기도 했다. 그 딱딱하면서도 물컹하고 거친 피부의 가오리 촉감은 잊지 못할 느낌이었다.
또다시 배를 타고 간 곳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앞서 우리는 리조트에서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 오리발 등을 빌렸는데 스노클링 장비 하나가 불량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유럽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구명조끼 하나 없이 오리발에 스노클링을 끼고 물에 뛰어들었고 앞서 물이 깊지 않았기에 괜찮나 보다 하면서 나 역시 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스노클링으로 본 바다는 정말 깊었다. 엄청난 수의 열대어가 형형색색으로 눈 앞에 펼쳐졌다. 세상에서 태어난 후 본 물고기보다 그 바다에서 본 물고기가 많다고 말해도 허풍이 아니다. 환상적인 그 자태에 매료돼 한참 스노클링을 하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뒤따라온 남편은 스노클링 장비에 물이 들어와 잘 보이지 않는다 했고 나는 내 것과 바꿔줬다. 그때부터 나는 스노클링 안경 속으로 물이 차오를 때 다시 벗고 물을 뺀 후 구경을 했는데 자꾸 물을 먹으면서 어느 순간 리듬이 깨졌다. 겁을 집어 먹은 순간부터 몸이 가라앉는 듯했다. 너무 놀라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구명조끼를 입은 남편은 나를 안심시키려고 왔는데 무서워서 인지 자꾸만 남편을 물속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이러다가 둘 다 죽겠다 싶어 큰 바다 씨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놀란 그는 우리를 구해줬다.
배에 올라타 그가 건넨 코코넛 주스를 먹는데 코와 입이 너무 짜고 매웠다. 놀란 심장을 달랜 후에 밀려오는 창피함이란. 그 평화로운 곳에서 혼자 살려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니 말이다.
이후에는 모래보다 더 부드럽지만 또 진흙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묘한 모래가 깔려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한차레 포토타임을 즐긴 후, 한 모투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큰 바다 씨는 뷔페 형식으로 차려진 안락한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메뉴는 쇠고기, 닭고기 바비큐와 차가운 파스타, 타로, 바나나 등 타히티 전통 음식. 이 메뉴들을 바나나 입사귀로 만든 그릇에 담은 후 "어디서 왔느냐" "다리는 왜 그렇게 됐느냐" “신혼여행이냐” 등의 정보를 교환했다.
한참 수다를 떤 후 큰 바다 씨는 휴식시간을 줬고 우리는 바다에서 사진도 찍고 물에 몸을 담그며 놀았다. 그러다가 큰 바다 씨는 모두 불러 모아 바나나 잎 왕관을 만드는 법과 코코넛 열매를 가르는 법을 알려줬다. 유쾌한 그의 몸짓과 유머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방금 배를 가른 코코넛 워터는 미지근하면서도 달달했다.
웃고 또 웃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 것이다.
☺보라보라 펄 비치 리조트 앤 스파에서 제공하는 투어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