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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어느 평화로운 주말 오후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3일 차,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여유 있게 잡아둔 일정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다. 이렇게 다음날 동선을 고민하거나 시간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선물 같이 느껴졌다. 느긋하게 일어나 어젯밤 숙소에 들어오면서 사온 과일과 빵들로 허기를 달랬다.


 '순례길 메이트, 침낭' 덕분에 코가 간질간질하던 '고양이 방'도 어느새 적응이 되어 견딜만하게 느껴졌다. 여러 명이 함께 자야 하는 도미토리에서 찬물 샤워하면서도 지냈는데 내 방이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다. 하나하나 감사할 거리들을 발견해내고 감사하며 일부러 더 느릿느릿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급하게 인사를 나눴던 야고보 성인에게 '다시 인사를 가볼까'하며 산티아고 대성당 쪽으로 향했다.


| 야고보 성인과 찐~한 문안인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안과 밖

웬일인지 대성당 앞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옆문 쪽도 어제에 비해 훨씬 한산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줄은커녕 성당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줄 서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어제 야고보 성인과 만난 그곳으로 한걸음에 갈 수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반짝반짝 빛나는 성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고 손을 얹고 기도드렸다. '그냥 다 감사하다'고 '지금, 여기,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조용히 중얼거리며 기도를 했다. 주책맞게 또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에야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랫동안 줄을 서서 단 몇 초 머물다 끝나버리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충분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분위기를 허락해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지하 유해실도 들렀다가 밖으로 나왔다. 파란 하늘과 구름들이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감사했다.  


| 감사하고 감사받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뒤편 광장

한껏 충만해진 마음으로 여기저기 천천히 걸어 다니다 다시 순례자 사무실 근처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큰 나무 밑에서 중년의 한국 아저씨가 큰 소리로 "아이고~ 왔네 왔어~! 어디 갔다 왔어요?!~ 한참 기다렸어요~ 금방 온다더니~ 이거 받아가요~"하시면서 나에게 순례 완주증서를 내미셨다. 그러다 곧 '응?!...' 내 놀란 표정을 보더니 "아?! 아닌가?!... 아니에요?!... 아니네..." 하셨다. 


아저씨는 기다리던 사람으로 착각했다며 사과하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들어보니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 완주증서를 발급할 때 개별적으로 도착하는 사람보다 그룹으로 온 사람들을 좀 더 빨리 처리해준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끼리도 서로 잘 모르지만 즉석으로 팀을 만들어 발급 신청을 하는데 아저씨도 여기 도착해서 만난 동년배 남자분 한 명, 내 또래의 여자분 두 명과 함께 신청을 하셨단다. 

대성당 앞 광장서 순례자 사무소로 가는 골목

다른 남자분은 함께 기다렸다가 바로 받아가셨는데 내 또래 여자분들이 '발급에 시간이 걸릴 테니 다른데 좀 다녀오겠다'며 가서 몇 시간째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다. 아저씨도 예약해놓은 이동 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제 더 이상은 지체하기가 어렵다고 불안해하셨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순례자협회 등을 통해 찾아주는 방법'이 어떨지 말씀드렸다. 아저씨는 그렇게 해야겠다며 나에게 긴 하소연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계속 인사를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있는데 드디어 그 여자분들이 돌아왔다. 


아저씨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저씨는 그분들께 나를 소개하며 '둘 중 한 명으로 착각을 했고 이분이 얘기를 들어줘서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이제 빨리 가봐야 한다'고 '이분께 고맙다고 인사드리라'고 하셨다. 그 여자분들은 아저씨께 죄송하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순례자 사무소 앞에서 몇 분 동안이나 고개 숙이며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데 이를 본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사진을 찍어갔다. 순례길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이 하는 특별한 의식이라고 생각한 걸 지도 모르겠다. 뭐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 산티아고 원데이 트립?!

숙소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순례자 사무실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 맞은편에는 작은 여행사가 있었다. 어제도 그 앞을 수십 번 지났을 텐데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한국 일행들과의 감사인사 릴레이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묵시아, 피스테라, One Day Trips'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더니 주말이라 그런지 여직원 한 명이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았고 나는 35유로, 우리 돈 4만 5천 원이 안 되는 가격에 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묵시아, 피스테라'에 다녀오는 '원데이 트립'을 신청하게 되었다. '묵시아(Muxia)와 피스테라(Finisterre)'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으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온 순례자들이 대서양이 보이는 대륙의 끝까지 더 걸어가 순례를 완전히 마치고 신발을 태우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하루 이틀 만에 넓지 않은 콤포스텔라의 풍경이 익숙해져서 내일 정도에는 혼자 묵시아나 피스테라에 버스를 타고 다녀올까 했었는데 주말이라 버스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아서 포기하고 '내일은 뭐하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마침 눈에 띈 여행사와 합리적인 가격, 친절한 직원까지, 야고보 성인에게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또 한 번 감사하며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여행사를 나섰다.  


| 오늘의 '일용할 양식'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수도원 기행

스패니쉬 오믈렛과 카페 콘 레체

콤포스텔라 대성당 뒤편으로 골목마다 이곳 갈리시아(Galicia; 스페인의 북서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주도(主都))지역 음식을 파는 크고 작은 레스토랑들이 많았다. 두세 바퀴를 돌다 결국 브런치로 선택한 메뉴는 '스패니시 오믈렛(Spanish Omellett)', 감자, 양파들을 잘게 썰어 달걀과 함께 부쳐낸 음식이었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함께하는 곳이었는데 주방은 아직 오픈 전이라고 했다. 돌아서려는데 서버가 붙잡았다. 주방장이 특별히 내 요리부터 해주겠다고 말했단다. 짭쪼롬한 오믈렛과 따끈한 빵에 카페 콘 레체 한 모금이 입안에서 조화로운 맛을 냈다. 테라스 자리에 앉아 천천히 음식을 즐기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식사를 마칠 때쯤에는 가게가 만석이 되었다. 괜스레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거리를 향했다.


#폰세카의 학교/ 대저택(Colegio/Pazo de Fonseca)

Pazo of Fonseca 내외부

우선 식사하던 레스토랑 바로 앞 건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였는데 유럽연합, 스페인 국기 등이 꽂혀있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안으로 쏙 들어가면 그 옛날 수도원으로 순간 이동한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회랑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 다시 시끌벅적한 거리로 나왔다.  

'Colegio de Fonseca(폰세카의 학교)'는 'Pazo of Fonseca(폰세카의 대저택)으로도 불린다. 폰세카 대주교에 의해 16세기부터 교육을 위한 공간을 짓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완성되었다. 이후 고등학교, 수도원, 호스텔 등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학교 도서관 등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 회랑과 안뜰을 돌아볼 수 있으며 폰세카(Alonso de Fonseca) 주교의 동상이 있다. 


#San Paio de Antealtares 수도원 성당

San Paio de Antealtares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둘러싸고 수많은 수도원과 성당들이 함께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어서 입구만 서성이다 지나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San Paio de Antealtares 수도원 성당은 알폰소(Alfonso) 2세 왕, 830년에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설립되어 산티아고 성인의 유물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베네딕토회가 나가면서 대학으로 활용되다가 15세기 말부터 베네딕토 수녀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코르도바에서 순교한 갈리시아인 '파이오 성인(San Paio)'에 봉헌되었고 18세기 무렵 현재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뒤편 광장(Plaza de Quintana) 한쪽 벽을 이룬다.

시간을 잘 맞추면 내부에도 들어가 볼 수 있다. 미술관도 있고 수녀님들이 만든 케이크도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San Martin Pinario 수도원 성당

San Martin Pinario 수도원 성당
San Martine Pinario 수도원은 마드리드 San Lorenzo de El Escorial 수도원에 이어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9세기 후반, 현재 바로 옆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일부 남아있는 'Corticela 예배당' 근처 Pignario라는 곳에서 사도의 유적을 발견하고 정착한 베네딕토회 수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11세기 처음 예배당을 짓던 자리에 있던 소나무(Pine)에서 유래해 Pinario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 12세기에는 다른 수도원으로 대체되었다가 15세기 말 부흥기를 맞으며 16세기부터 18세기 후반까지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19세기에 수도원은 문을 닫고 현재는 산티아고 대교구의 신학교, 순례자 숙소, 세미나 장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역시 박물관과 가이드 투어가 있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엄청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곳들로 가득했다. 그건 구시가지를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San Domingos de Bonaval 수도원 성당 

San Domingos de Bonaval 수도원과 성당은 갈리시아 사람인 도미니코 수도회 설립자 Domingo de Guzman 성인이 1220년 산티아고 순례를 와서 지었다. 17세기에 교회 건축가 Domingo de Andrade가 개보수 및 확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판테온과 나선형 계단이 유명하다. 1912년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갈리시아 박물관(Museo del Pueblo Gallego)으로 활용되고 있고 작은 공원을 끼고 있다. 또 옆에는 현대미술관(Galicia Contemporary Art Center)도 있어 둘러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Santa Clara 수도원 성당과

그 밖에 다른 많은 성당들 

성 클라라 수도원/ 성 베드로 성당
산타 클라라 수도원(Convento de Santa Clara)은 13세기 알폰소(Alfonso) 10 세왕 때 콤포스텔라 지역의 기부금과 왕비의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갈리시아 지역 최초의 성 클라라 수녀원이다. 16세기부터 개보수가 이루어져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현재 모습이 완성되었다. 1940년에 국가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도 수녀님들이 생활하고 있다.

클라라(Clara) 성인은 이탈리아 아시시(Assisi) 귀족 가문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에 감동을 받아 수도자의 삶을 선택했다. 성 프란치스코의 도움으로 가난과 기도의 삶을 실천하는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를 설립했다.

내부는 미사 전후에만 공개되지만 입구까지는 들어가 볼 수 있다. 큰 길가인데도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조용한 수도원 분위기에 압도된다. 클라라 수도원 건너편에는 18세기에 세워진 갈리시아 지역 최초의 가르멜 수도원(Carmelitas Descalzas)이 위치해있다. 


길을 따라 걷다 언덕을 올라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12세기 수도원(Monastery of San Pedro de Fóra) 자리를 지키고 있는 18세기 예배당(Iglesia de San Pedro Apostol; Capela de San Pedro)을 만날 수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수세기 전의 수도원과 성당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Belvis 수도원 성당

Belvis 전망대

Belvis길 끝에도 어김없이 Belvis 수도원과 성당이 나왔고 그 앞으로는 시원하게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전망대가 나 있었다. 정면에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첨탑들까지 보였다. 

Belvis 수도원은 14세기에 Teresa González에 의해 설립되었고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의해 재건되었다. 특히 봉쇄 수녀원은(Enclosed convent of Santa Maria de Belvis) 근처 Bonaval 수도원의 도미니코 수사들에 의해 14세기에 설립된 갈리시아 지역 최초의 도미니코 수녀원이다. 당시에는 주로 부르주아 계급의 딸들이 입회했다고 한다. 18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수많은 수도원과 성당을 지나왔지만 들어가 볼 수 있는 곳들이 제한되어 있어서 이곳 Belvis도 그 속까지 보여줄지 알 수 없었다.  

Belvis 수도원 성당

기웃거리다가 안뜰 같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건물로 들어가는 문이 살짝 열려있어서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더니 성당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직 성당 안에는 촛불 몇 개만 밝혀져 있어 어두웠고 작은 예배당 끝에는 어떤 아저씨 가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홀로 기도하고 계셨다. 그 뒤로 철창 안쪽에서 수녀님 두 분이 청소도구를 챙기고 계셨는데 키가 작고 넉넉하게 생긴 할머니 수녀님이 나를 보더니 미소 지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제대 뒤 편 성모상이 루르드의 시간들을 떠오르게 해서 그 앞에 앉아 가만히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조용한 성당 안의 평화가 내 마음속까지 퍼져왔다.


수녀님들은 제대 주변과 성모상 앞에 있는 꽃에 정성껏 물을 주고 먼지를 털고 깨끗하게 하셨다. '화려해 보이기만 하던 성당 안의 장식들도 누군가의 노력이 더해져 빛났던 것이구나' 생각했다. 할머니 수녀님이 내 크로스백에 달린 순례자 표식 조가비를 보시더니 "Pilgrim Pilgrim(순례자)" 하셨다.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녀님은 맑고 환한 모습으로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씀하시다가 내가 못 알아듣는 눈치니까 다시 한번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지나가셨다. 


내가 밖으로 나오고 나서 관광객 몇이 들락날락하는 것 같더니 이내 성당 문이 닫혔다.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수도원 밑으로는 공원이 아주 넓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구시가지 안 쪽에 비하면 한적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기 딱이었다. 초록 카펫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 나무가 넓게 뻗은 가지들, 초록 잎들이 햇빛을 적당히 가려주었다. 오래된 벽들까지 뒤덮은 초록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내려다 보이는 진한 벽돌색 지붕들이 운치를 더했다. 알 수 없는 새소리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들은 아주 적당했다. 아예 자리를 펴고 누워서 초록 초록한 공기를 한껏 들이쉬고 내쉬었다. "감사하다" 소리가 절로 났다.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언덕 위 아지트. 바라고 또 바라던 목적지에 이르렀던 지난밤에는 너무나 감사하고 흥분되는 마음에 대성당 앞에서 펑펑 울어 버렸다. 엄연히 말하면 순례길을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했고 마지막에는 비행기로 왔는데도 말이다.

깁스를 하고 10kg에 가까운 배낭과 짐들을 챙겨 파리로 들어왔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황당하고 웃음이 났었지. 어제 너무 걸어서인지 또다시 온몸이 아프지만, 첫날의 그 막막함과 두려움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인생의 어느 순간, 다시 잔뜩 움추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온몸에 새겨진 이 경험은 분명 큰 힘이 될 거다. 떼제 수녀님 말씀대로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을 거다.

스페니시 오믈렛, 카페 콘레체, 조용한 곳, 루르드부터 보던 노란 부리 검은 새,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순례자 미사, 10년 만에 신에게 받은 이번 휴가는 정말 놀라움과 감사함의 연속이다. 문득 이 모든 것들을 꼭 책으로 엮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 이번만큼은 꼭 실천하자.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꽤 오랜 시간 눕거나 앉아서 몸과 마음의 평화를 즐겼다. '지금, 여기' 그분도 함께하심이 느껴졌다. 

알베르게(Albergue Seminario Menor)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와도 놀다가 과일도 까먹다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수다도 떨다가 메모도 좀 하고 멍하니 앉아있기도 하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공원 끝까지 가보려 길을 나섰다. 


또다시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켜왔을 것 같은 건물과 초록 지붕이 덮인 터널이 눈에 들어왔다. 배낭을 메고 헉헉대며 언덕을 올라온 사람, 택시를 타고 와서 캐리어를 내리는 사람도 보였다. 15세기에 신학교로 세워진 건물이라는데 현재는 공립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Emparrado del Parque de Belvis

그 앞으로 펼쳐진 긴 초록 터널 안으로는 연보랏빛 등나무 꽃이 활짝 피어서 달달한 향이 진하게 퍼졌다.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에 기분 좋아지는 향기까지 가득해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게 심호흡하며 눈을 감고 향을 즐기기도 하고 잔디밭에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기도 했다. 성서에 나오는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감사하고 감사한 은총 충만한 시간이었다. 

'다시 예전의 해맑은 미소를 찾아 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이루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왜 일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일하니까 일해오던 그 무력했던 시간들 속에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갔던, 그렇게 어두워졌던 내 얼굴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적당히 조용한 곳을 좋아하지만 또 너무 조용하면 무서워하는 나, 자연과 특히 동물친구들을 사랑하지만 개털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체력이 안 좋아서 쉽게 지치는 나,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걸 즐기지만 행동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한 나, 어두운 실내보다는 적당한 그늘이 있는 야외를 좋아하는 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서 멍 때리며 글 쓰는 시간이 꼭 필요한 나, 이런 모순덩어리이지만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나. 진짜 나를 찾아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Belvis 공원은 느긋한 토요일 오후를 보내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풀, 조경이 멋졌다. 박물관과 조각들도 보였고 가장 낮은 곳에는 내 키를 훨씬 넘는 나무들로 '미로정원'을 꾸며놓기도 했다.

미로 같아 보이는 정원, 저 안에 갇히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 빙빙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을 때. 출구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 그럴 땐 꽉 막힌 것 같은 내 바로 앞의 길들보다는 하늘을 올려다보기. '난 분명 끝이 있는 작은 미로에 서 있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좀 더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미로 찾기를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미로를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향했다. 모든 게 새롭고 새로웠지만 두렵거나 막막하지 않았다. 그저 감사했다. 


집으로 가는 길
Compania de Maria Santiago

현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공립학교 및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18세기에 Raxoi 대주교에 의해 지어진 귀족 여학교였다. 세기에 걸쳐 아이들을 키워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Igrexa de San Fiz de Solovio

다시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왔고 여전히 처음 보는 오래된 건물들과 마주친다. San Fiz de Solovio 성당 앞의 작은 광장과 오랜 세월을 버틴 것 같은 돌 십자가 기둥이 인상적이다. 한쪽 면에는 예수님이 못 박혀 있고 반대쪽에는 성모님으로 보이는 여성이 두 손을 모으고 서서 기도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San Fiz de Solovio 성당은 원래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알려진 '수도자 Paio'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10세기에 파괴되었다가 12세기 Diego Xelmírez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18세기에 Simón Rodríguez에 의해 확장되고 종탑 부분까지 추가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성당 앞에서 본 Church of San Fructuoso 외경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의 광장(Praza do Obradoiro) 끝에서 보이는 풍경, 그 바로 밑에는 성당(San Fructuoso)이 하나 더 있었는데 항상 문이 닫혀있었다. 

Church of San Fructuoso 내부

감사하게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18세기 성당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작지만 화려했다. 중앙에 제대 너머로 피에타 상이 눈길을 끌었고 무릎을 꿇고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는 상투머리 남자가 한참을 있었다. 나는 맨 뒤에 앉아 쉬며 성당 안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마트를 들러 빵과 우유, 과일, 간식거리, 오늘 저녁과 내일까지도 먹을 만큼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갔다. 여행사에서 받았던 지도를 살펴보니 웬만한 곳은 다 다녀온 것 같았다. 특히 구시가지 안은 하루에도 몇 바퀴씩 도는 바람에 길이 훤했다. 내일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다녀오면 여기서도 '다 하였다'하고 가겠구나 싶었다. 

내 발이 하루하루 잘 버텨주니 감사하고, 우연인지 신의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보고 싶었던 곳, 거기다 서비스로 늘 좀 더 경험할 수 있음에 오늘 하루도 감사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까 하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집을 나섰다. 

불 켜진 바(bar)에는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TV를 보며 응원을 하고 차량이 통제된 차도에도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번호를 단 사람들의 무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마라톤 경기였다. 구시가지를 돌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으로 들어오는 코스였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중계되는 전광판을 보며 추운 밤바람 속에서 선수들이 결승선을 끊어내길 기다렸다. 

기원전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된 마라톤의 결승선이 있는 곳, 중세부터 시작된 순례의 결승선이 있는 곳. 사람들은 이곳에서 온 힘을 다해 달려올 선수들을, 온 힘을 다해 걸어온 자신을 응원하고 축하하고 있었다.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이곳을 향해 전 세계에서 출발한 수많은 순례자들이 오늘도 걷고 있다. 한 성인의 무덤을 향해 오는 길 위에서 우리는 함께 걷는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없는 꽃과 풀, 동물, 자연의 풍광들을 통해 말을 걸어오는 신을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걸어온 이 길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인생의 끝을 향한 순례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었다.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던 그 지난한 길도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좀 더 힘차게 살아낼 힘을 얻어가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오늘도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마라토너이니까. 그저 기쁨과 슬픔이 뒤죽박죽 뒤섞여 오묘하게 아름다운 빛을 내는 이 길을 오늘도 걸어낼 뿐인 거다. 그 길 위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하며 치열하게 걷고 있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따로 또 같이, 그렇게 한걸음 한 걸음씩 걸어낼 뿐인 거다.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보낸 4박 5일간의 이야기, 세상의 끝 '묵시아와 피스테라'도 함께 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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