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Holy land로! 갈 수 있을까?

이스라엘, 치유의 기억

올해는 한 달 넘게 이어진 장마가 사람들을 괴롭혔고 여전히 태풍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이스라엘로 향하던 첫날도 비바람이 몰아쳤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태풍 링링과 함께 '이상한 순례길'이 다시 한번 시작되고 있었다. 출발 전 인천공항 성당에서 순례단이 함께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오전 11시에 만나기로 약속되어있었다. 아침을 먹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도 창밖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게 되는 날씨였다. '태풍으로 순례가 취소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나뭇가지들이 꺾일 듯이 흔들거렸다. 초조해하면서 준비를 마쳤는데도 취소되었다는 말은 없었다. 부모님은 또다시 "날씨가 이런데 꼭 가야겠니?!" 하셨다. 이번에도 참 심상치 않게 시작되는 순례길 같다는 생각에 황당한 웃음을 삼키며 말없이 짐을 챙겼다. 부모님은 그래도 공항까지 데려다주시겠다며 함께 몸을 일으키셨다.


연휴가 시작되던 토요일 아침,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도 험난했다. 영종대교를 건너는데 차가 바람에 흔들리며 앞으로 잘 나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비행기가 못 뜰 것 같은데 진짜 출발하는 게 맞는지 다시 확인해보라며 재촉받는 사이 출국장 앞에 도착했다. "이따가 출국 못하게 되면 지하철 타고 집에 갈게. 걱정 마" 하며 차문을 여는데 엄청난 바람으로 문이 완전히 젖혀졌다. 겨우 문을 붙잡아 닫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 내렸는데 순식간에 캐리어 바퀴가 바람에 밀려 저절로 굴러가다 바닥에 쓰러졌다. 손잡이를 다시 잡고 끄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자꾸 깁스하고 산티아고 길을 떠나던 '이상한 순례길'의 첫날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그래 참 나 다운 출발이다' 생각하며 공항으로 들어섰다. 뒤죽박죽 얼굴을 덮어버린 머리칼들을 정리하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순례단 사람들 대부분이 자리를 잡고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걱정과 설렘, 공항까지 오던 각자의 고단함이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행을 함께할 가이드님과 인사를 나누고 우선 미사를 드리기 위해 공항에 있는 성당으로 이동했다. 구름다리 같은 연결통로를 지나 소박하고 아늑한 성당에 다 함께 자리를 잡았다.  

인천공항 성당

성당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의자의 나무 냄새가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다만 일주일 넘는 휴가기간을 위해 새 회사에 적응할 틈도 없이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야근을 한 탓에 몸이 물을 잔뜩 머금은 솜같이 무거웠다. 분주히 미사를 준비하는 순례단 사람들의 모습이 신경 쓰이고 미안했지만 몸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있는 사이 미사가 시작되었다.


신부님은 여행자의 수호성인 '크리스토퍼(Christopher)'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성인은 3세기경의 순교자로 키도 크고 힘이 세서 물살이 센 강을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도우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다 어린 예수님까지 강을 건너도록 도왔다는 전승이 있으며 크리스토포로스(Christophoros)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어깨에 메고 가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인은 성화나 조각에서 아기 예수를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간직한 자'라고도 해석된다는데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이 길에 꼭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할 때의 마음속에는 혼란이 가득했지만 돌아올 때는 예수님만 가득 채워 올 수 있길 기도했다.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게, 당신의 길 위에 있도록 도와주세요.' 바보처럼 또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른 노랫말처럼 '외롭고 힘든 그 길에서 나를 찾고 당신을 찾아' 그리스도 향기 가득한 꽃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율찬(율동과 찬양)까지 다 함께 하며 미사가 끝이 났다. 나의 눈물범벅 미사는 이제 시작이었다.


"누군가 이스라엘 순례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난 "미사"라 답할 정도로 순례 여정의 모든 미사가 좋았다. 9일간의 일정 동안 매일 드렸던 미사는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었기에 의미가 컸지만, 여기에 더해 매일의 기도와 묵상, 강론, 찬양 속에서 꼭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시는 그분의 섬세한 손길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미사를 마치면 난 늘 눈물범벅이었는데 슬퍼서라기 보다는 감사함, 가슴 벅참, 위로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그때의 나를 덮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마다 이상한 순례길로 프랑스 루르드에 갔을 때 함께했던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 율리안나가 눈물의 은총을 받았구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자꾸 우는지 물어보아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울 수 있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쏟아내고 나면 그만큼 속이 후련하게 비워지고 평온함이 가득 차곤 했다.  


첫 번째 글 이후 거의 두 달 만이네요. 그사이 코로나로 올해 이스라엘 순례는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운이 좋았구나.'싶지만 이번에 가려고 준비하던 친구들과 코로나로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분들을 보면 함께 속상해집니다. 내년에는 어디든 꼭 떠날 수 있길 희망하면서 부족한 글솜씨이지만 먼저 저와 함께 '이스라엘 랜선 여행, 랜선 순례' 함께 하는 것 어떨까요?! 이번에도 함께 걸어보아요! 좋아요와 구독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여기'서 꺼내보는 '이스라엘, 치유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