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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Aug 15. 2021

너에게서 내가 보여

복학생을 좋아했던 그녀2

[지난 이야기]
복학생인 나에게 커피를 건네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그녀, 쪽지에 자신의 번호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캠퍼스 안 공원을 걸으면서 그 번호를 저장하고 카톡 프로필을 확인하게 되는 데...




그녀의 사진은 실물만큼 예뻤다. 하지만 문제는 이름이었다. 나와 거의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내 이름은 필명이다.(앗, 혹시 모르셨나요.) 그래서 그녀의 본명을 제대로 밝힐 수는 없지만 굳이 필명과 견주어보자면 그녀의 이름은...


강숩


내 이름도 흔한 편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 이름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분명 그녀를 "숩아!"라고 부르게 될 터이다. 상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이름 때문에 연락을 못 드릴 것 같아요, 라는 찌질한 이유를 들이밀 순 없었다. 게다가 그런 여성이 나에게 언제 또 관심을 보일지는 앞으로 살면서 미지수였다. 참 소설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잡생각 속에 헤엄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녀에게 연락했다. 우리는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빙빙 돌리다가 그녀에게 혹시 내 이름을 아셨냐고 물어봤다. 그랬다고 한다. 교수님께선 앞자리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내 이름을 자주 호명하셨던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자기와 이름이 비슷해서 더 관심이 갔다고 말이다. 참... 그녀는 마음도 선했다. 똑같은 현상인데 숩은 그 점을 좋게 받아들였고, 숲은 그것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그릇의 차이가 아닐까?



다음 날 저녁 숩과 숲은 숩의 기숙사 앞에 있는 야외 음악당에 앉아서 숲이 가지고 온 캔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시험기간이었기에 근사한 식사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하기로 했다. 나는 보통 친해지기 전까지는 내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질문폭탄을 쏟는 편이다.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취조병이 있어서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때도 습관에 따라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라는 망령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쿡쿡 찔러댔다. 대화에 집중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 생각이 튀어나 나를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최대한 그 불편함을 숨기며 그녀와 얘기했다. 숩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숲을 점점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이 되고 우리는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보고 얘기할 때는 상대방 얼굴만 보였는데 노란색 화면 속에서 대화를 할 때면 그녀의 이름이 고정되어있어 내 무의식을 자극했다.



강숲 : 너 점심 뭐 먹었어?(숩아,라고 직접 부르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너'라는 말을 애용했다.)

강숩 : 저는 동아리방에서 친구들이랑 짜장면 배달시켜먹었어요. 오빠는요?

강숲 : 나는 학생식당에서 동기들이랑 같이 먹었지. 나는 그곳이 좋더라.

강숩 : 그래요? 제 입맛에는 안 맞아서 자주 안 가긴 해요. 그런데 오빠랑은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강숲 : 그래, 좋지! 시험기간 중에 한 번 가자 ㅎㅎ

강숩 : 좋아요. 오빠.(그녀에게는 '오빠'라는 좋은 대체제가 있었다. 부러웠다. 게다가 애초에 이름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 다시 한번 부러웠다.)



으아아아아아, 나는 왜 하필 이름에 꽂혀서 그녀를 그녀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인가. 친구에게 그 고민을 전하니 배가 불러 터졌단다. 차라리 배가 뻥하고 터져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으면 했다. 증상은 계속 심해져 그녀와의 대화가 점점 나와의 독백처럼 느껴졌다. 그녀 뒤에 내가 붕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얄미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어느덧 시험기간이 끝나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숩과 숲은 함께 대학가의 연극을 보러 갔다. 밖에서 그녀를 본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청순 청순한 옷을 차려 입고 왔다. 학교에서 봤을 때보다 더 예뻤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그녀로 보였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웃고 떠들었다. 막이 내리고 우리는 극장을 나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왜 잡았을까? 그녀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름만 제외한다면 그녀는 내게 분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살짝 놀라더니 한 손은 꼭 잡은 채 다른 팔로는 내게 팔짱을 꼈다.



사귀자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는 거의 연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가 한없이 쏟아내는 눈물의 가해자가 되었다.



 

- 다음화에 계속-




[입구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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