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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Jul 19. 2021

인면어 공주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인어공주

  




“할머니 잠이 안 와요.”

귀여운 손자가 울면서 할머니 방으로 달려왔다.

“왜 그러니?”

“꽈과광하는 소리가 들리고 비가 억수같이 내려요.”

“태풍이라고 하는 거란다. 여름마다 찾아오지.”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어요. 오늘 밤 할머니방에서 자면 안 돼요?”

“그럼, 되고말고!

“야호! 할머니 옛날 얘기해주세요.”

“어디 보자꾸나. 이런 날씨만 되면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단다.”      






아주 먼 옛날, 에메랄드 빛 바닷가 근처에 커다란 성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힘센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왕위를 이을 왕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몹시 심술궂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해변을 내리쬐던 어느 날, 주변 신하들을 괴롭히는데 실증을 느낀 왕자가 하얀색 대리석 계단을 내려와 고운 모래사장에 앉아있었다.

“다들 재미없어.”     

왕자는 깨끗한 유리만큼 투명한 바닷가를 보았다. 저 멀리서 커다란 물고기가 수면 위를 여러 번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는 신발을 벗고 바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세히 보니 사람 같기도 하고 물고기 같기도 했다.

 

“너 누구야?” 왕자는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누구냐고!” 왕자는 다시 한번 외쳤다.

“인면어 공주예요!” 저기 멀리서 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뭐야?”

“저는 사람을 닮은 물고기랍니다.”

순간 인면어 공주가 있는 꼬리에 힘을 주어 수면 위로 높게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왕자는 깜짝 놀랐다. 딱 자신만 한 크기에 아주 못생긴 물고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못난 부분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네가 공주라고?” 왕자는 배꼽을 부여잡고 한참을 깔깔거렸다.

“네, 공주예요! 저쪽 수심이 깊은 바다엔 인면어 왕국이 있어요. 저는 그곳의 6번째 공주예요. 15살이 되면 아버님의 허락을 받아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일주일 동안 구경할 수 있어요. 수심이 얕은 이 물속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말이죠. 언니들은 모두 바깥세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이곳에 나온 거예요. 바깥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갑자기 인면어 공주 위로 주먹만 한 돌이 날아왔다. 깜짝 놀란 공주가 몸을 재빨리 움직여 피했다.


“나는 저 성의 왕자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왕자는 해변에 있는 큰 바위 주변으로 가서 손에 잡히는 돌들을 모았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마구마구 던졌다.

“너는 이곳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걸 산산조각 내주겠어. 인간세상 아주 무서운 .”

돌들이 마구잡이로 날아왔다. 그중 하나가 인면어 공주의 몸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 모습을 본 왕자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웃어댔다.     


인면어 공주는 왕자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인면어 공주가 있는 물속 오두막 쪽으로 많은 돌이 날아왔다. 공주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나와서 나랑 놀자.” 왕자는 혼자 키득 키득댔다.     



‘왕자가 너무 싫어. 정말 못됐어.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

인면어 공주는 분한 마음에 우거진 물속 해초들을 지나 마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 왕자에게 저주를 내리고 싶어요.”

“그런 약은 쉽게 만들 수 있지.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따르지.”

“어떤 대가인가요?”

“일단 이 약을 먹으면 너는 삼일 동안 사람으로 살 수 있어. 그것도 바깥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가 될 수 있지. 하지만 네가 할 일이 있어. 왕자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너를 더 좋아하게 만들어야 해. 그렇게 된다면 네 심장이  갑자기 두근거리게 될 거야. 그리고 그다음 날 왕자는 심장이 멈추게 될 테지. 너는 계속 인간으로 살다가 원하면 언제든지 인면어로 변해서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 만약 그 기간 동안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왕자 대신 너의 심장이 멈추게 될 거야.”

“좋아요! 그 약을 어서 만들어주세요. 저는 인간이 되어서 바깥세상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꼭 확인하고 싶어요. 왕자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너무 슬프잖아요.”     


인면어 공주는 마녀에게서 약을 받아 해변으로 헤엄쳐 갔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왕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항상 햇볕이 쨍쨍한 오후에만 그곳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공주는 마녀가 준 쓰디쓴 약을 꿀꺽 삼켰다. 약은 양날의 칼처럼 가녀린 몸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 공주는 정신을 잃고 죽은 듯이 그곳에 쓰러졌다. 태양이 바다 위에 떠오르자 찌를 듯한 고통을 느끼며 깨어났다.


공주 바로 앞에 왕자가 뚫어져라 공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주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꼬리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그 자리에 얇은 두 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발가벗은 채였기에, 자신의 긴 머리로 몸을 감쌌다.     


왕자는 누구냐고, 이곳에 어찌하여 왔냐고 물었다. 공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득 왕자는 공주의 손을 잡고 성 안으로 이끌어 주었다. 공주를 본 모두가 그녀의 미모에 감탄했다.  


‘당신은 벌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공주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왕자를 유혹했다. 매일 왕자 곁에 있으며 그를 챙겼다. 그들이 함께 있는 곳은 어디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고 착해요. 어디에 있다 지금 나타난 거예요?” 왕자는 황홀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저는 예전에도 당신 가까이 있었어요. 왜 저를 몰라보시나요.”

“꿈에서 뵀던 거 같긴 해요.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라니. 오, 나의 여신님!”     

왕자는 공주에게 진심을 다해 잘해주었다. 매일 그녀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갈수록 자신의 마음이 터질 듯이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와 공주는 저녁 만찬이 끝나고 별들이 가장 많이 보이는 성탑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왕자는 그녀에게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스콜피오, 바르고, 리브라, 타우르스, 아쿠아리우스. 어느덧 공주는 그가 해주는 로맨틱한 별자리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순간 그녀의 심장이 쿵쿵쿵거렸다. 공주는 헷갈렸다. 자신이 왕자에게 사랑이 빠진 건지 아니면 왕자가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게 된 건지.


공주는 둘 다 사실이라는 걸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마녀의 말이 떠올라 슬퍼졌다. 해가 밝으면 왕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그가 떠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마녀에게 그런 부탁을 했던 자기 자신이 무척 어리석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나의 경이로운 공주님.”

“네.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제 방에 들어가 쉬어야 할 거 같아요.”

왕자는 공주를 몹시 걱정했다.


곧 그녀는 방에 들어와 달님이 은은하게 빛을 내리쬐는 창가 위에 앉아서 흐느꼈다.

“참으로 가혹한 세상이야. 가장 원망했던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니.”     

공주는 침대 밑에 있던 비상용 단검을 꺼냈다. 그러고는 달빛 아래서 그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곧 그녀의 몸 부글부글 끓더니 거품으로 변했고 창문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공주는 바람이 되었다. 그녀는 날개도 없이, 어디든지 가볍게 떠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왕자님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날 수 없었다. 성 주변을 떠다니며 그를 지켜보았다.


     

공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하루 종일 상심에 빠졌다. 그에 안타까움을 느낀 왕은 다음날 옆 나라에서 아름다운 미모로 소문난 공주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왕자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해가 쨍쨍한 여름의 한가운데,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이 모든 걸 지켜본 바람 공주는 온 세상을 향해 울분의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물과 분노가 하늘 위로 올라가 엄청난 크기의 먹구름들을 만들어 냈다. 공주의 슬픔을 아는 하늘 친구들이 함께 지상에 벌을 내리기 시작했다.


“신랑은 평생 신부만을 아끼고 사랑하기를 하늘에 대고 맹세하십니까?”

"네! 맹세합니다." 왕자는 확신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곧 하늘에서 비바람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고 천둥과 번개가 우르르 쾅쾅, 반짝하고 울렸다. 아아, 공주의 노여움이 얼마나 컸던지 그 이후에도 여름이 올 때마다 천둥벼락과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게 되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것을 태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할머니 이게 무슨 동화예요? 너무 무섭잖아요.” 손자가 울먹거렸다.

“세상엔 행복한 동화만 있는 아니란다.”

"이런 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해주세요!"

"어디 보자꾸. 옛날 옛적에..." 할머니는 자신에게 꼭 안긴 귀여운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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