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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Jul 20. 2021

못된 오리 새끼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미운아기오리





옛날 옛적 어느 아름다운 시골이 있었다. 들판과 초원 주위로 너른 숲이 우거지고 한가운데에는 깊은 호수가 여러 개 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오리 농장이 있었다. 호수 주변 빽빽한 우엉 잎들 사이로 오리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앉아 새끼 오리를 낳고 있었다. 마침내 알이 하나씩 하나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린것들이 깨어나 울어대며 고개를 내밀었다. 새끼들은 모두 종종거리며 나와서 우엉 잎 아래 초록 세상을 보았다.


“모두 다 알에서 나왔지?”

어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 아직 아니네. 제일 큰 알이 아직 남아 있구나. 얼마나 걸리려나? 난 정말이지 몹시 피곤한데.”

한참이 지나 마침내 그 큰 알을 깨고 아기가 나왔다.

“삑.”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 나왔는데 엄청나게 크고 괴상하게 생겼다.



오리 가족은 농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아주 많은 오리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 좀 봐요! 또 새끼들이 태어났나 보네. 여기 오리가 부족한 줄 아나? 게다가, 저런! 뭐 저렇게나 못생긴 오리가 다 있지! 못 봐주겠군.”

어떤 오리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서더니 회색 오리의 목을 콱 물었다.   

  

어미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얘들아 모두들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러자 목을 물었던 오리가 말했다.

“너무 크고 이상하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호되게 맞아야 된다고요.”     

잠시 후 어미가 이웃 수컷 새들과 수다떨기 위해 호수 쪽으로 갔다.


회색 오리는 자신의 목을 물었던 오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야 너 방금 내 목 물었냐?”

“그래, 어쩔 건데?”

회색 오리는 아기오리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꽉 깨물었다.

“꽥꽥꽥, 살려줘.” 회색 오리가 한참을 물어서 그 오리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장면을 본 다른 오리들은 공포에 벌벌 떨었다. 날쌘 오리가 다가가 회색 오리에게 큰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덩치만 크고 못생긴 주제에 왜 다른 오리들을 괴롭혀?”

“쟤가 먼저 나를 물었어.”

“그건 네가 이상하게 생겼기 때문이야.”

그 말을 들은 회색 오리는 날쌘 오리에게 뛰어들어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댔다. 한참을 두들겨 맞은 날쌘 오리는 울면서 회색 오리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어미가 곧 돌아왔다.

“우리 예쁜 오리가 왜 쓰러져 있니?” 어미가 다른 오리들을 쳐다봤으나 다들 말이 없었다. 모두들 회색 오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날쌘 오리가 말했다.

“갑자기 검은 고양이가 우리를 습격했어요. 고양이를 말리려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어머 어떡하니?” 어미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투였다.     



곧 다들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걸 깨달은 회색 오리는 우쭐해져서 작은 오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못된 오리는 농장의 왕이 되었다. 눈치가 빠른 간신배 오리는 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색 오리 형님, 제가 남들 몰래 지렁이 몇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한 입 드셔 보시죠.”     

“그래, 역시 너는 농장 생활을 잘하는구나. 저기 지푸라기에서 30분 동안 쉬어.”

“감사합니다. 형님!”

다른 오리들은 가만히 쉴 수 없었다. 끊임없이 농장 밖으로 나가 먹이를 구해 와서 못된 오리에게 바쳐야 했다.


어미 오리는 항상 호숫가에서 다른 수컷 새들과 놀러 다니느라고 자신의 오리들을 내팽개쳤다. 가끔은 일주일에 한 번, 어쩔 땐 한 달에 한 번씩 농장을 찾아왔다. 그러다 어느샌가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못된 오리는 그곳에서 아주 편안한 농장 생활을 누렸다.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다른 오리들은 매 번 먹이를 구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날렵해졌다. 하지만 못된 오리는 푹신푹신한 지푸라기 위에 앉아 그들이 주는 음식들만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기에 살만 뒤룩뒤룩 쪄갔다. 나중엔 거의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졌다. 그 사실을 눈치챈 간신배 오리가 농장 밖으로 오리들을 불러 모아서 말했다.

     

“우리가 저 못된 오리를 몰아내고 자유로운 농장을 만들자!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농장 말이야.”     

처음에 오리들은 못된 오리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하지만 며칠에 걸친 간신배 오리의 설득으로 오리들은 그를 몰아내기로 합심했다.


다음 날 오리 5마리가 낡은 헝겊을 부리에 물고 못된 오리를 찾아왔다.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시간이잖아? 누구 마음대로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오래?” 못된 오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뒤뚱뒤뚱했으나 도저히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이게 오늘 우리가 할 일이야. 너는 그동안 우리를 너무 괴롭혔어.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가 왔어.” 간신배 오리가 다른 오리들에게 명령했고 그들을 헝겊을 못된 오리에게 덮어 씌우고 온 힘을 다해 밟았다.

“꽥꽥꽥꽥”   

  

며칠 후 모든 오리들이 농장에서 서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단 한 마리의 오리만 빼고 말이다. 못된 오리는 몸이 탱탱 부은 상태로 구석에서 울었다. 옆을 지나가던 작은 오리가 소리쳤다.

“조용히 안 해? 네가 울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부리로 못된 오리 얼굴을 두 방 쪼고 키득키득 거리며 지나갔다.    


  

곧 오리들은 새로운 대표를 뽑기 위해 모였다. 그중에 간신배 오리가 자신이 세운 공에 대해 으스대면서 자신이 이 농장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정의로운 오리가 간신배 오리의 가식을 다른 오리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간신배보다 목소리가 작았기에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저 간신배 오리가 대표가 되면 못된 오리 시절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정의로운 오리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간신배 오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용감함을 자랑했고 대표가 되면 모두에게 지렁이 5마리를 준다고 했다. 며칠 뒤 간신배 오리는 선거에서 이겼다. 그는 다른 오리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몇 마리의 부하들을 데리고 못된 오리를 찾아갔다. 그러고는 그를 농장 바깥으로 끌고 갔다.  한참을 걸어 숲 한가운데 그를 던지고 침을 뱉었다. 부하들이 옆 나무에서 쉬고 있을 때 간신배 오리가 못된 오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시대는 끝났어. 무식하게 힘만으로 모두를 아우를 수는 없어. 나처럼 지혜가 있어야지. 대놓고 괴롭히는 건 너처럼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저 멍청한 오리들을 조종하는 거지. 그게 진짜 농장에서 왕이 되는 비결이야.” 그렇게 말하고 간신배 오리는 깔깔 웃으면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떠났다.      



회색 오리는 한참을 울면서 자신이 그동안 했던 일에 대해 반성했다. 다른 모든 오리들에게 몹시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부지런해지고 날렵해져서 농장에 있는 다른 오리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자기의 못된 행동 때문에 다른 오리들이 돌아선 것이었다. 회색 오리는 그날부터 숲 속에서 매일 열심히 뛰어다니며 다시 농장에 돌아갈 날만을 기약했다.



그렇게 다시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찾아왔다. 회색 오리는 훨씬 더 늠름해지고 날렵해졌다. 그러다 주변 호수에서 한 무리의 백조 무리를 만나게 된다. 회색 오리는 그들을 통해 자신이 사실 백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정말 힘든 일을 많이 겪었구나. 그래도 이제는 우리랑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저기 따뜻한 북쪽의 나라로 가지 않을래?”

“고마워. 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내가 괴롭혔던 오리들에게 빚을 갚아야 해.”

그의 말을 들은 백조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너는 정말 착한 백조야.”

     

잠시 후 백조들은 커다란 날개를 펼쳐서 북쪽의 나라로 날아갔다. 홀로 남겨진 회색 백조는 열심히 날갯짓을 연습했다. 며칠 뒤 그는 드디어 하늘을 활활 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숲에 돌아와 다시 농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정의로운 오리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울면서 농장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백조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리들이 간신배 오리에게 매일 충성하면서 하루에 10시간씩 일을 한다는 것이다. 오리들은 그를 ‘오리신’님이라고 불렀으며 그에게 영원한 충성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지렁이는 매일 줄어들었으며 노동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정의로운 오리가 그의 부조리함을 알리려고 애썼지만 오리들은 그런 그를 오히려 역적으로 몰았다고 했다.   

   

얼마 후 그 소식이 간신배 오리에게 들어가게 되고 정의로운 오리는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뒤 이렇게 숲으로 쫓겨났다고 했다. 그 말을 마친 가엾은 오리가 쓰러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백조는 불쌍한 그를 연못 옆 땅에다 묻어주었다.

      

백조는 눈물을 머금고 날개를 펼쳐 농장을 향해 힘껏 날아올랐다. 그는 금세 농장에 다다랐다. 열린 창문으로 날아온 백조는, 누워서 탐스럽게 지렁이를 먹고 있던 간신배 오리의 목덜미를 물고 반대편 창으로 날아갔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오리들은 다들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백조는 하늘 높은 곳에서 날갯짓을 하며 말했다.

“네가 농장을 망치고 있어. 너는 어떻게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고 그런 착취를 할 수 있지?”

애초에 모두를 괴롭힌 게 누군데 그래. 네가 제일 먼저 오리들을 못 살게 굴었잖아.”

“나도 내가 한 일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내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너 같은 못된 오리에게서 그들을 해방시켜주려고 하는 거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간신배 오리는 백조에게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빌었다.     


한참을 날아 아주 외딴 숲 연못에 간신배를 떨어뜨렸다. 그는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부리가 닳도록 조아렸다. 백조는 그런 그를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다시 날개를 펴 농장을 향해 날아갔다. 백조는 드디어 열린 창문을 통해 오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 역겨운 못된 오리야, 네가 감히 우리 오리 신님을 납치해가다니. 당장 그분을 다시 모셔오란 말이야!”

수 십 마리의 오리들이 순식간에 백조에게로 달려가서 헝겊을 덮어 그를 한없이 짓밟고 쪼아댔다. 백조는 그 속에서 서러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공격이 수그러들었을 때를 틈타 헝겊을 치워내고 날개를 펼쳐 남은 힘을 다해 날았다.      

아아, 너무도 슬프다 슬퍼. 오리들이 모두 간신배 오리의 간사한 술책에 넘어갔어. 그들은 모두 이상해졌어.” 그렇게 한없이 울면서 백조는 북쪽의 나라로 향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회색 백조는 다른 백조들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저 멀리서 자신이 떠나온 농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 잠시만 밑에 내려갔다 올게요!”


회색 백조는 옛 추억에 잠겨 농장을 향해 날았다. 창문 밖 난간에 살포시 앉아 농장 안을 훔쳐봤다. 앞쪽에 커다란 단상이 있고 그곳엔 부리 위에 검은 수염이 난 오리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는 정말 못되게 생겼다. 그 앞에는 몇 백 마리의 오리가 빽빽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꽥꽥, 꽥꽥꽥,  꽥꽥꽥꽥!”

그 못된 오리가 정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너무 괴상하고 큰 소리라 백조는 귀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자 순간 거기 있던 모든 오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얀, 오리는, 위대하다!”

“하얀, 오리는, 위대하다!”

“하얀, 오리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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