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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Jul 30. 2021

불행은 행복의 필수조건

쇼펜하우어의 말 <철학 한 모금>





저는 개인적으로 철학책을 참 좋아합니다. 옛 철학자들의 말씀을 들을 때면 머리가 찌릿해지는 순간들이 많아요. 오늘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에세이를 읽다가 가슴에 와닿는 구절을 발견해서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졌습니다. 이 글을 계기로 앞으로 가끔씩 <철학 한 모금>이라는 주제로 철학책에서 제가 감명 깊게 읽었던 구절들을 전해보려고 합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염세주의 철학자로 유명하고 니체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현대의 관점에서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도 꽤나 있지만, 그런 것들을 거르고 본다면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심하게 툭툭 뱉은 듯한 그의 문장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서 제 마음을 쿡쿡 찌르곤 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저의 아침잠을 깨워준 그 구절을 이 밑에 옮겨볼까 합니다.




   간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없다는 것은 느끼지 못한다. 또 걱정은 하지만 걱정이 없다는 것은 못 느낀다. 두려움은 느끼지만 안전은 못 느끼며, 갈증이나 욕망이나 희망은 느끼지만 그것을 손에 쥐게 되면 금세 흥미를 잃는다.


   심한 갈증으로 허겁지겁 물을 마신 후에 남은 물은 버리는 것처럼 욕망도 충족되면 손에서 놓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세 가지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과 젊음과 자유조차도 그것을 누리고 있는 동안에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아프지 않은데 병원에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젊음은 너무 당연한 얘기고, 자유로울 때는 자유 그 자체가 없다. 그러나 범죄로 파출소 철창에 들어가는 순간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즉시 느끼게 된다.


   인간은 행복할 때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불행해져야 그때가 행복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내게 현재의 행복이란 없고, 행복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한다는 얘기다.


   향락과 쾌락에 대한 실감도 그것이 강할수록 감퇴되며 습관이 되면 없는 것과 똑같아진다. 그러다가 쾌락의 습관조차 끝나면 괴로움만 남게 된다. 권태는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쾌락은 시간관념조차 없애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다. 물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극단의 갈증이 필요한 것처럼 고통스러운 병고는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고, 늙었다는 것은 젊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극단의 구속은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그토록 싫어하고 피해왔던 불행들이란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죽음 직전에 살아나야만 삶의 기쁨을 크게 맛볼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불행과 고통을 어찌 마다할 수가 있겠는가.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며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과거의 힘든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훈련소에서 처음 행군을 마치고 마셨던 시원한 물 한 모금의 달달함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의 말이 혹여나 '그래서 고통을 겪어야 돼!!'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고통과 불행의 순간조차 긍정할 수 있는 일종의 관점 전환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팍 치고 말았죠. 불행은 행복의 씨앗이며, 나아가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라는 역설을 까먹지 않고 산다면 변화 가득한 세상을 조금은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구 사진] : 위키피디아

[참고 도서] : 사랑은 없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에세이, 이동진 옮김, 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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