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광복절 축사에서 10월까지 전국민 70%에 대한 백신 접종을 완료(2차 기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최근 모더나 사가 8월 도입 예정 물량의 절반밖에 못 준다고 했고 40대 이하 백신 예약률이 저조하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과연 약속이 지켜질까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 전엔 우리나라 백신 접종 완료율이OECD 38개국 중 꼴찌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예상하기에, 코로나19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깔더라도 문 대통령의 공언은 지켜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수급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올해 백신 계약 물량은 총 1억 7,200만 회분입니다(코백스 및 공여 물량 제외. 아래 그림 참고). 그중 8월 15일까지 약 4,000만 회분이 도입되었고 9월 말까지 5,000만 회분 이상의 백신이 더 도입될 예정입니다. 모더나 사의 공급 물량이 얼마나 빠질지가 관건이지만 다른 백신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접종은 현재 1차 약 2,200만 회분, 2차 약 960만 회분이 진행되었습니다. 60세 이상 820만 명의 2차 접종이 지난 12일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3~4주간 접종 완료율이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큰 의미는 없지만 더이상 꼴찌가 아닙니다). 아울러 50세 이상 1차 접종은 내일부터, 50세 미만 1차 접종은 8월 26일부터 시작됩니다. 현재까지 접종 추이나 참여도로 볼 때 9월 말까지 국민 70% 1차 접종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50대 이하는 접종 간격이 짧은 mRNA 백신(화이자, 모더나) 위주로 맞기 때문에 10월 말까지 2차 접종 70%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공급 측면에서 백신이 충분해도 수요 측면에서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면 목표 달성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민의 약 74%가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아래 그림 참고). 절대 안 맞겠다고 답변한 인구의 비중은 1%에 불과합니다. 접종 의향이 있는 인구와, 확신이 없는 사람들 중 일부가 접종한다면 전국민 80% 정도까지도 접종이 가능합니다. 최근 젊은 층 접종이 낮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저는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10부제로진행되는 사전예약 특성상 현재 개별 접종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였고, 앞으로 몇 차례 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문제는소통
문 대통령의 공언이 실제 달성 가능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간의 실책과 현재 암울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신 공급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깔고 갑니다.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 생산량 증가 속도도 느리기 때문입니다. 원료 수급이나 생산 공정의 문제 등 컨트롤할 수 없는 이슈도 고려해야 합니다. '확보'만 강조하고 공급 일정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수급 부진은 계속 정부의 신뢰를 낮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집단면역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집단면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간 정부와 정치권, 보건 당국에서 관성적으로 사용해온 '접종 70% = 집단면역' 공식 때문인지 언론은 일제히 "집단면역 목표를 10월로 앞당겼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불과 1주일 전 문 대통령이 직접 "집단면역 목표 시기를 앞당기겠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무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외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70% 접종이 곧 집단면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델타 변이의 높은 전파력으로 인해 집단면역 문턱값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어느 순간 갑자기 달성되는 집단면역은 신기루에 가까웠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집단면역 같은 모호한 개념보다 "접종률 70%" 같이 달성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목표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해왔지만정부의 워딩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목표가 일반 시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 외에도 일관성이 없는 정책이 이어졌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 권고 연령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65세 이상에게 접종을 보류했다가 재개하면서 혼란이 있었습니다. 희귀 혈전증 논란이 생기면서 60세 미만, 30세 미만, 50세 미만이 차례로 접종 제외 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30세 이상은 다 맞을 수 있도록 변경되었습니다. 각각의 결정마다 이유가 있었지만, 너무 잦은 권고 변경은 신뢰를 잃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그 귀중한 백신이 남아서 버려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백신 접종 인센티브도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야외 마스크 의무화 해제, 인원 제한 제외 등 접종자에게 약속되었던 혜택이 7월 유행 이후 다 사라졌습니다. 애초에 과학을 근거로 만들어진 정책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철회가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델타 변이의 핑계를 대기엔 이미 인센티브가 시행되기 전부터 변이의 위협은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감안하여 정책을 만들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팬데믹 시대에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모든 게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확신하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부정하면서 소통한 부분은 명백한 실책입니다. 안 좋은 시나리오가 펼쳐졌을 때 정부와 방역 당국이 나서서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고 플랜 비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총리가 나서서 사과하고 설득하기는커녕 다른 나라보다 잘하고 있다, 상황이 안정적이다, 조금만 더 참자 등 여전히 희망고문에 가까운 언설만 나옵니다. 방역과 백신 접종에 있어 당국에 대한 신뢰가 결정적인 요소인데, 이런 식이면 계속 점수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3. 지금 해야 할 일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라도 잘해야 합니다. 위에 지적한 사항을 바탕으로 세가지 정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잃어버린 정부에 대한 신뢰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불확실성을 감안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델타 변이 유행으로 인해 백신 접종 70%만으로 유행을 통제하기 어려우며 일정 수준의 거리두기 조치가 계속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집단면역 달성'하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식의 약속보다, 접종률을 높이는 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 앞으로 우리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여러 시나리오와 그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그간 일관성이 없었던 정책에 대해 해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연령이 계속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접종 연령을 바꿀 때 사용한 과학적 근거는 무엇인지, 접종 연령을 바꾸면서 당국이 기대했던 효과는 무엇인지 설명해야 합니다. 당국이 30세 이상 50세 이하에게 아스트라제네카를 맞히기 원한다면 그에 대한 이득과 위험은 무엇인지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접종자 인센티브를 왜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지, 접종을 유도하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센티브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인센티브로 높인 접종 의향은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바로 낮아집니다.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수입니다.
마지막으로 백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접종을 확신하지 못하는 인구가 더러 있고접종 의향 인구 비중과 실제 예약률/접종률에 차이가 있습니다. 신념에 의해 맞지 않는 사람은 1% 정도에 불과하여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접종을 원하지만 정보가 부족하거나, 휴가를 못 내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신분이 불안정하거나 하는 이유로 접종을 못 받는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접종을 권고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제도의 개선도 필요합니다. 지금은 안 맞지만 백신 선택권이 주어지면 맞겠다는 사람도 상당합니다. 9월까지 희망자에 대한 1차 접종을 마친 후 미접종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현재로선 겨울이 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입니다.
돌파감염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그래도 백신의 유익은 여전히 큽니다. 감염의 확률을 줄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증과 사망을 예방합니다. 내가 안 걸리면 상대에게 전파할 확률도 감소합니다. 나와 내 이웃의 안전을 위해 백신은 꼭 필요하므로, 계속해서 백신 접종을 독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접종률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은 제가 지난 6월 작성한 보고서에 자세히 담아두었습니다(아래 링크). 접종 예약을 위한 정보도 아래 같이 붙여놓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방역 당국이 '신뢰'라는 자산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선 정부의 일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신중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더이상의 실책이 없기를 바라며 몇자 적습니다. 언제나처럼 피드백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