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Sep 18. 2021

이번 팬데믹은 장기전

백신 접종 70% 달성이 끝이 아니다


1. 시작


제가 백신 접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습니다. 작년 11월쯤, 화이자 백신이 임상에서 기대 이상의 효능을 보이면서 계약을 서두른 미국-영국 등이 곧 접종을 시작할 거란 말이 나왔습니다. 느긋하게 백신 개발 추이를 지켜보던 우리나라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국책연구원을 동원해 상황 파악에 나섰습니다. 육대주 각국 지역실을 갖춘 우리 연구원은, 경제정책을 맡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주요국 백신 확보 현황 조사에 나섰습니다. 백신 접종은 경제 회복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업무의 일환이었습니다.


코로나19 보고서를 몇 편 썼다는 이유로 입사한 지 6개월이 채 안 된 제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요청이 떨어진 지 며칠 내에 50페이지 넘는 보고서를 하나 작성해 청와대에 올려 보냈습니다(이 보고서 때문에 안 하던 야근을 해서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죠).


당시 주요국 백신 현황을 살펴본 결과 대략 세 가지 중요한 결론이 나왔습니다.


(1)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백신 확보(계약 or 구매확정)량이 많다.

(2) 소득이 높은 나라 중에서 감염 상황이 나쁘지 않은 곳은 계약이 비교적 늦고 접종 개시도 늦다.

(3) 초기 생산량 제약으로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곤 백신 접종 속도가 빠르게 안 오른다.


우리 언론은 우리나라가 백신 확보에 제일 뒤처졌다고 당장 백신을 가져와라 난리였지만, 제가 보기에 그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의 제약을 인정한 채로 조심스럽게 유행 상황을 통제하며 차근히 접종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었지요. 올 겨울 전까지만 인구 대다수가 접종한다면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2. 그릇된 기대에서 나온 절망


물론 저는 소수의견에 가까웠습니다(No wonder!). 현 정권에 부정적인 보수언론과 야권 정치인, 심지어 전문가들까지도 '백신 거지' 운운하며 우리 정부가 대단히 큰 실책을 저지른 것처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신이 차근차근 들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보했다던 백신은 어디 갔냐"는 조롱을 해댔습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보다 상황이 별로 낫지 않은 영국, 이스라엘, 미국 등이 "백신의 축복" 때문에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고 포장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영영 백신이 안 들어올 것처럼 비관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이 부지기수였고, 그 영향인지 11월 70% 접종 목표가 새빨간 거짓말인 것처럼 믿는 주변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조금만 상황을 살피면 하반기에 수급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점과, 계약 물량이 인구수 2배 가까운 데다가 접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시민들의 접종 의향까지 높은 우리나라는 금방 접종률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의도가 뻔한 특정 언론들은 그렇다 치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 부화뇌동하여 부정확한 정보를 유통하는 건 정말 봐주기가 힘들었습니다. 급기야 접종 간격이 긴 AZ 위주 접종 탓에 2차 접종이 늦어진 그 찰나를 포착해 "접종 완료율 OECD 꼴찌"라는 자극적인 보도를 만들어낸 한 언론사, 그리고 그걸 여기저기 퍼 나르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 순간에도 접종은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지만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예상 못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9월까지 1차 접종 70% 목표는 추석 전 조기 도달했고, 11월 전 2차 접종 70% 도달도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수고해주시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결말이 저에겐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만, 최근까지도 우리나라는 영영 백신이 모자랄 것이라 생각하신 분들도 계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불과 6일 전에도 그런 뉴스를 봤습니다). 그분들이 태생적으로 비관론자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올바른 판단을 못 내리게 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해는 갑니다. 팬데믹 시대가 너무 고통스럽고, 백신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백신의 부재가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고비", "터널의 끝", "희망의 봄" 같은 언사로 그릇된 기대를 부추긴 당국의 미스커뮤니케이션도 한몫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백신은 만능이 아닙니다. 백신 면역은 점차 감소하고 유행이 통제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한 변이가 또 다른 유행을 주도합니다. 백신 접종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도리어 더 큰 확산과 피해로 이어지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관찰됩니다. 여전히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종과 거리두기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애초에 장기전이라는 걸 예상하고 대비했으면 백신을 둘러싼 혼란도 훨씬 덜했을 것입니다. 거리두기의 짐도 균등히 분배되었을 것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팬데믹은 장기전입니다. 쉬운 답도 없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대응 전략을 짜야합니다. 백신 접종 70퍼센트가 함께 축하하고 격려할 대단한 성과이지만, 정확히 위와 같은 이유로 여기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3. 지금 할 일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 정도 과제를 생각해봤습니다.


(1) 접종률은 높을수록 좋다.


현재 우리 1차 이상 접종률은 70퍼센트, 접종 완료는 43퍼센트입니다(아래 그림). 현재 접종이 끝나지 않은 20~40대의 예약률을 고려하면 75퍼센트까진 무난히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미접종 인구는 성인 미접종자 500만 명과 아동청소년 700만명을 합쳐 약 1200만 명 정도가 남습니다.



접종률은 높을수록 좋습니다. 아동 등 접종을 못하는 인구는 집단면역 수준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접종률이 높으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느슨하게 할 여지도 커집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개인에게도 접종의 이득이 큽니다.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내부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접종을 통해 나와 이웃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은 계속해서 강조되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가 접종을 마친 지금 내부적 동기에 의한 접종은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부작용이 적은 방식으로 잘 설계해야 합니다. 모임인원 제한에서 제외하거나 특정 장소 출입을 허용하는 것은 접종자의 감염 또는 감염 전파 위험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조치입니다. 다만 어쩔수 없이 접종을 못 받는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대안도 함께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과, 백신에 대한 접근성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접종을 독려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전 보고서(링크)에 자세히 담았고 방송(링크) 등에서 여러차례 이야기한 내용이니 여기선 생략합니다.  


(2) 고위험군 접종률 제고가 최우선순위


그중에서도 고위험군인 60세 이상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미접종자 중 약 100만 명 가량이 60세 이상입니다. 이분들은 감염시 중증 및 사망 가능성이 가장 높아서 본인이 위험할 뿐 아니라 의료체계에 가장 큰 부담이 됩니다. 고위험군에 미접종자가 많이 남아있으면 소위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도 어려워집니다.


마침 한차례 예약이 돌아서 10월부터는 60세 이상도 mRNA 백신(화이자 또는 모더나) 접종이 가능합니다. AZ 백신에 거부감이 있던 분들께서 접종을 더 하실 수 있는 기회니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내일부터 예약 가능합니다). 여기서도 역시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고 안심시키는 노력이 함께 가야합니다.


또한 고령층에 맞는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종교 행사를  더 원활하게 참가하게 한다든지, 노인시설, 양로원, 요양원 면회 등과 연동한다든지, 필요하면 현금성 지원까지 고려해봐야 합니다. 고령층 접종은 젊은 층에 비해 비용 대비 효과가 명백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조치도 용인될 것이라 봅니다.


(3) 남는 물량 활용


현재 계획을 보면 올 9월까지 도입되는 물량으로도 우리 인구 80%가 두번씩 맞기 충분합니다. 계약상 4분기에는 약 9천만회분의 백신이 더 들어올 예정입니다. 아직 승인이 나지 않은 노바백스와 꼭 받지 않아도 되는 코백스 물량을 제외해도 물량이 남습니다. 부스터샷을 시행한다 해도 대부분은 내년 계약분(화이자 3천만+3천만 회분)으로도 소화가 가능합니다.


남는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제가 계속 강조해왔듯 글로벌 백시네이션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현재도 고소득국가 위주로 남는 물량을 코백스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혹은 비축물량을 백신 미접종 입국 외국인력에 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신을 나누는 것이 곧 우리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4. 긴호흡으로 차근히



70% 접종으로는 유행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게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간 비교적 작은 규모의 유행만 경험한 우리나라는 백신 이후에 그 이상 더 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긴 호흡으로 장기전을 준비할 때입니다. 곧 이겨낸다는 희망도 좋지만 현실에 기반해 위험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고안해야 합니다.


이게 고통의 총량을 최소화하는 길이란 생각에 제 짧은 생각을 나눕니다. 언제나처럼 피드백 환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명과 생계 사이 균형을 위한 ‘가늘고 길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