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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Oct 12. 2019

투병기 2



20191011

2016년 6월, 재수학원 에어컨 바람을 쐬며 여름을 날 적. 나는 비문학 지문을 풀다가 내 생산성 없는 우울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글을 마주친다. 그 후로 내 삶은 "자족적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병기가 되었다. 아래에는 아주 우연하고 은근하게 내 삶에 전환점이 되었던 그 글을 첨부했다. 그 후로 줄줄 나열되는 글들은 내가 안으로 꼬여든 감정주의와의 싸움에서 가장 처참하게 패배하고 있었을 때 쓰였다.


201606XX

"김소월에게서 우리는 생에 대한 깊은 허주의를 발견한다. 이 허무주의는 소월이 보다 큰 시적 발전을 이루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허무주의는 그로 하여금 보다 넓은 데로 향하는 생의 에너지를 상실하게 하고, 그의 시로 하여금 한낱 자기탐닉의 도구로 떨어지게 한다. 소월의 슬픔은 말하자면 자족적인 것으로, 그것은 그것 자체의 해결이 된다. 슬픔의 표현은 그대로 슬픔의 해방이 되는 것이다. 시에서의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대개 이러한 일면을 갖는다. 그것은 자기연민의 감미로움과 체념의 평화로써 우리를 위로해 준다.


소월의 부정적 감정주의의 잘못은 그것이 부정적이라는 사실보다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안으로 꼬여든 감정주의의 결과는 시적인 몽롱함이다. 밖에 있는 세계나 정신적 실체의 세계는 분명한 현상으로 파악되지 아니한다. 모든 것은 감정의 안개 속에 흐릿한 모습을 띠게 될 뿐이다.


(그러나)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게 본다는 것이며, 여기서 바르게 본다는 것은 가치의 질서 속에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는 거죽으로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신념을 전제로 가지고 있다.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는 바로 이 '보려는' 에너지와 표리일체를 이룬다."


20180613

커버를 씌우지도 않은 토퍼 위에서 온종일 잤다. 허벅지가 쓸릴 때마다 쓰라리다고 생각하면서 베개에 얼굴을 쳐박았다. 추상적인 삶의 무게가 날 짓누를 때면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자고... 언젠가 김영하의 말을 듣고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가 금방 사소하고 소득 없는 생각들로 머리를 괴롭혔다. 살을 뺄려면 친구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한심한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면 그리고 외로워서 못나지지 않으려면. 같은 끝맺음 없는 생각들.


20180616

"나에게 고유한 슬픔일지라도 언어화하면 구차한 슬픔으로 일반화된다는 게"

그래서 염주처럼 지겹게 손에 굴리고 굴려 때가 탄 생각들이 문득 역겹고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 아니 길고 긴 문장으로 써내려갈 것도 없이 요즘 나는 질려 있는 것이다.


아직도 토퍼에 커버를 씌우지 않았다. 깨끗이 빨래를 하고 햇빛에 말린 이불을 먼지 투성이 바닥에 굴려놓은지가 며칠 째. 생리를 해서 아랫배가 아프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많이 많이 먹고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끌린 듯이 황량하게 껍질 벗겨진 침대 토퍼 위에 엎드린다.


이럴 때 나 패배감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이불을 빨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수월하게 실행에 옮겼었는데.


20180619

예쁜 글을 써낼 수 있는 다정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자질이 길러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어떤 것을 견디고 외면할 필요 없이 그냥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랑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지도 못했고, 그것을 제것처럼 익힐 시기도 놓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20180702

    수상한 밤들이 계속되던 날. 뉴욕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돈이 모자라다는 조급함이 들었고, 여행 전에 가족에게 들러서 돈을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와 아빠를 떠올리면 돈을 주긴 줄지, 준다면 얼마를 줄지, 그런 계산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든다는 게 죄책감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렇게 된 게 내 탓인가 하는 반항감 역시 옆자리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양쪽의 감정 사이 갈팡질팡하는 새에 이미 마음은 가라앉았다. 어쩌자는 걸까 참. 내가 나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다 보면 맥이 풀린다. 그래 이미 마음은 가라앉아 버렸는데.


    아까 전화했을 때 엄마는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랬다. 할아버지가 이 덥고 습한 여름을 더 버티시기는 힘드시겠지. 할아버지가 말그대로 "죽을만큼" 아픈 지는 오래 됐는데 그래서 사실 나 그 말을 듣고 새삼 놀라거나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며칠 내로 돌아가신다면 다가오는 여행에 어떤 차질을 빚게 되는 걸까 불안했다.


    당연히... 그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내가 이미 12시간 비행을 거쳐 뉴욕에 도착한 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나 장례식 갈 거다. 놀러 다니는 게 더 중요해서 아버지 장례식에도 안 간 애로 평생을 살 수는 없으니까. 왜냐하면, 왜냐하면 고모들의 은근한 경멸과 질책 같은 거를 버틸 재간이 없다. 쟤는 늘 저렇게 자기 밖에 모르고 철이 없었지. 날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싶지는 않은 거다. 또 아빠가 내가 아빠를 공경하지 않는다고 울컥 화를 내다가 "너란 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하는 말을 꺼내 내 입을 꾹 틀어막을 상황도 끔찍하다. 나도 이미 아는데. 알아도 내가 아닌 남의 입으로 나에게 그런 상처를 낼 수는 없다. 몇 배로 고통과 수치가 오래 가니까. (아닌가 착각인가 나 이미 고통과 수치 속에 살고 있나) 그런 숭고하지 않은 싸가지 없는 이유로 나는 누가 말린 대도 꾸역꾸역 비행기 편을 미루거나 취소시킬 거다. 장례식에서 난 아마 멍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어른들의 괜찮냐는 물음에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참고 참겠지...


    내가 누군가의 인생의 끝을 이렇게나 건조하게 관망한다는 게 울컥 무섭다. 그것도 나를 아주 사랑해준 사람의 죽음인데.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맨날 핀잔을 주고 우리 엄마를 자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었지만. 당신 자식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해서, 옛날 시대 사람으로서 그가 했던 실수들이 있기야 하지만. 그래도 나를 참 많이 사랑했는데. 나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 쌌을 때 나 업고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할아버지가. 나 엄마를 견디지 못하겠어서 할아버지네 집으로 쫄래쫄래 도망 왔을 때 며칠 살다가 가도 아무 말 안 했는데. 내가 분을 못 이기고 빼액 울어버리면 다들 지겨워할 때 할아버진 삐쩍 마른 몸으로 나 그래도 안아줬는데. 내가 지금 이따위인 걸 보니까 아무래도 내게 뭔가가 고장난 것 같다 아님 처음부터 잘못된 것 같다. 아빠가 노발대발 어떻게 그런 눈빛으로 사람을 쳐다볼 수 있냐고 나한테 너 기분 나쁜 년이라고 지랄했던 거가 왜 지금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건 내 기분만 더 최악으로 만드는데. 근데 나도 마음 어딘가로는 이미 아는 거다. 나도 내가 참 기분 나쁘다.


    엄마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내심 내가 여행을 기꺼이 취소시키길 바랐을까? 나처럼 인정머리 없고 가족을 돈줄로만 보는 애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까? 나는 아마 내일 집에 가서 할머니와 아빠가 용돈을 쥐어주지 않으면 내심 아쉬워할 거고, 나아가 원망할 거고... 용돈을 준다면 냉큼 받아서 허영을 부리는 데 펑펑 써버릴 거다. 그러면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서 괜히 나보다 수빈이가 돈이 많아서 기분이 나쁘다고, 너는 이런 고민 안 하겠지 하며 속으로 걔를 함부로 탓해댈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고, 뉴욕에 가서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과시할 만한 그림을 찾아댈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짜증이 나서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도 영영 보일 수 없는 글을 썼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이 글이 싫은 이유 중에 또 하나는 뭐냐면 문장이 길다는 것. 단순하고 건강하게 생각하자고 어제 유승이랑 얘기하면서 속으로 몇번씩 다짐해놓았는데 말이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줄줄줄 길고 지저분한 문장을 쏟는다. 사실 나 오늘 하루 그렇게 혼란하고 우울하지 않았는데, 생각없이 글을 쓰다 보니 또 다시 이런 글에 봉착한다. 끔찍하다느니 역겹다느니. 이건 진심이기보단 습관일 거다.


201807XX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회상하면서. 묻히기에는 너무 아깝더라, 참 소중한 분이셨어, 했다. 저 편 창고 방에는 오줌 시트랑 기저귀랑 영양액 호스랑 오트밀죽 통조림이 아직 한가득 있는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가 집에서 누워 있던 침대에는 차곡차곡 이불이 정리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거죠? 할아버지가 정말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을 때, 아줌마랑 할머니도 그날 오후 전화를 받은 나랑 같은 마음으로 이불을 갰을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믿지 않는 마음으로.


    2018년 7월 6일 오후 1시 58분 의사가 우리 할아버지 김석영의 사망을 선고했다.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내 동생 상태 메세지는 그 후로 줄곧 20180706이다, 할아버지 죽음이 너한테는 어떤 의민지. 나는 발인식 때 얼굴이 뜨겁게 울었는데 사실 슬픈 건지 상처 받은 건지 잘 모르겠어 나한테는 할아버지가 없다는 게 어떤 의민지. 사실 나 괜찮은 거 같아서 그게 제일 무섭다. 13살 적부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의미 없어지고 잊혀지는 게 싫어서. 그 생각이 맞았다는 걸 증거하 듯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무감한 것 같은 내 마음이 무섭다.


20180809

    술을 마시고 실없는 소리를 하면 우울해도 우울한지도 모를 줄 알았다. 나는 왜 내 생각을 떠벌대는 걸 멈추지를 못하는데. 친구들의 배려를 담뿍 받으며 나는 계속 몽롱하게 고여 있는 내 생각을 툭툭 배설하다 돌아왔는데. 오늘 같은 날은 새삼스럽게 내가 외로워질까봐 아님 이미 외로운 것일까봐 걱정이 돼.


    마음이 좁아서 배려 못하고 유쾌하지 못한 내가 싫어. 이렇게까지 남 눈치 보고 강박적인 사람이면서 성격이 둥글게 변하지 않는 게 나도 내가 신기해. 내가 정말 이상하고 야 이러다간 아무도 너를 좋아해줄 수 없어 라는 엄마의 비명. 그게 여태껏 너무 아픈데 왜냐하면 정확히 그 지점이 난 항상 너무 불안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을 상담사처럼 샌드백처럼 쓰기 싫어. 내가 환자인 거라면 이 좆같은 성격이 병증인 거라면 의사에게 치료받고 나아지고 싶어. 인이 박힌 불량하고 이기적인 태도 같은 거를 의사가 약품이, 나 말고 아무나가 고쳐줬으면 좋겠어.


20181211

    잠이 부쩍 많아진 요즘의 나를 걱정하면서.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충동은 내 안의 연료를 남김 없이 태우고 나는 다시 숨을 꾹 참다가 휴우우우우우 바람빠진 풍선인간처럼. 하루 중간 중간 허물어진다.


    가까운 친구 하나는 나를 두고 열없이 넌 참 독립적이여 보인다고 하고 내가 자주 무시했던 누군가는 내가 재수없어 죽겠는지 나를 칭찬해야 할 때 애써 그런다. 너는 뭐든 잘하니까. 근데 가장 괴로울 때 그런 말 밖에 듣지 못하는 건, 늘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던 내 잘못일 거야.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는 기분이 드느니 그냥 재수없어 보이고 싶었어 나는 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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