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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Sep 13. 2021

노래와 우울과 나

  우울에 관한 글은 흔하다. 서점에서 우울이니 불안이니 죽고 싶다느니 하는 제목을 가진 책들을 자꾸 마주치다 보면 글과 우울에는 분명 진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한 친구 하나는 ‘책 읽기’를 청소년에게 금지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한마디를 남기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정신병이 생긴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깔깔깔 웃었다. 


  나는 우울에 관한 책이 자꾸 나오는 세태를 진부하다며 실컷 비웃는 입장에 있고 싶었다. 어느 날에는 그래서 거만한 태도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우울말고는 콘텐츠가 없어서 그래. 글을 쓰고는 싶은데 자기 우울 말고는 깊이 생각해본 대상이 없는 거지.”

  그러므로 그런 글, 우울에 대한 글은 흔하고 비슷하고 천하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그런데 책을 내고 싶다고 본격적인 다짐을 하자마자 내 머릿속에도 어김없이 우울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왜냐하면 나도 글은 쓰고 싶은데, 내가 가진 우울 말고는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그런 사람이니까.

  생각이 많은 사람이 우울하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생각 에너지를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시작할 때 사람은 미친다.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을 아직 난 본 적이 없다. 자기탐구를 활기차고 긍정적인 액션으로 만들 수가 있나, 과연. 그런 가능성을 아직 난 확인한 바 없다.

  아무튼 난 책이 쓰고 싶고, 그런데 하필 우울 말고는 손에 쥔 것이 없다. 남이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러려면 남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 내가 할 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것인 우울을 파헤치느라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을 세상을 또렷이 보는 데는 시간과 노력을 쓰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단계에서 쓸 수 있는 글은 내가 앞서 흔하고 비슷하고 천하다고 규정했던 글뿐이다. 아마 남이 읽기에는 어쩌라고 싶을 그런 글.


  우울과 불안을 오래 앓은 사람들이라면 그 감정이 찾아올 때 대처할 방법을 마련해놓는다(그 방법이 늘 성공적이고 건강하지는 않더라도). 나도 우울을 기피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론이 있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보기도 하고 과하게 맛있고 비싼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방법은 취침약을 먹고 까무룩 잠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함께한 것은 작은 음량으로 깔리는 노래였다. 잠이 오라는 주문을 걸어주면서 뭉게뭉게 일어나는 생각을 흩어놓는 노래 덕분에 나는 우울로부터 잠시 간 도망칠 수 있었다.

  나는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라 이 노래들이 나를 ‘살렸다’고 말하려니 무례할 만큼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산다’는 것을 ‘죽는다’의 반대말로 놓는 대신 그 의미 자체에 집중하면 이 노래들이 나를 살게 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이 노래들 덕분에 하루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내일도 어김없이 찾아올 삶에 대한 부담을 잠시 잊을 수 있게 된다. 틈마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질문하는 대신 그런 질문 따위 필요 없다고 어딘가로 잠시 미뤄둘 수 있는 건강한 바보가 된다.


  나는 노래에 대해 설명하거나 분석하는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고 솔직히 말하면 음악 감상이라는 행위에 높은 가치를 두지도 않는다. 머리 속을 엉망진창으로 제멋대로 휘둘러줄 무언가를 찾다 보니 도착하게 된 곳이 이 노래들일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들이 나와 내 우울과 만난 것은 더 운명적인 행사가 되기도 한다. 여기 쓰인 것들은 다양한 음악을 찾아듣지도, 어느 때고 음악을 즐겨듣지도 않는 나에게 침투해 내 시간과 감정을 가져가버린 노래들이다. 음악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 나는 그런 방식으로 노래의 힘을 실감해왔다. 

  내 우울을 (어쩔 수 없이) 글로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 글에는 꼭 이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래’가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그런 욕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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